응급의사가 술 취한 ‘경증환자’를 볼 수 없다면…

[Dr 곽경훈의 세상보기] 응급실의 각자도생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컴퓨터단층촬영(CT)는 쉽게 설명하면 수백 장의 엑스선사진(X-ray)을 찍어 3차원에 가까운 영상을 얻는 기계다. 예를 들어, 복부 X-ray는 수직으로 한 장을 찍을 뿐이나 복부 CT는 수평으로 좁은 간격을 두고 수백 장을 찍는다. 그러면 복부장기를 3차원에 가깝게 살펴볼 수 있다. 다만 과거에는 기술적 제약으로 고작 수십 장만 찍을 수 있었고 방사선을 사용하는 만큼 피폭량도 작지 않았다. 그러나 기술이 발전하면서 요즘에는 작은 피폭량으로 수백 장의 사진을 찍어 정확한 영상을 얻을 수 있다.

자기공명영상촬영(MRI)도 좁은 간격으로 수백 장의 사진을 연속하여 찍어 ‘3차원에 가까운 영상’을 얻는 점에서 CT와 비슷하다. 그러나 방사능을 사용하는 CT와 달리 MRI는 자기장을 사용한다. 그래서 CT와 MRI는 서로 관찰할 수 있는 병변이 다르다. 예를 들어 머리 CT는 뇌출혈에, 머리 MRI는 뇌경색에 한층 적합하다. 그리고 MRI는 자기장을 사용하므로 일종의 강력한 자석이다. 따라서 MRI실에는 금속, 특히 자성을 띨 수 있는 금속을 절대 가지고 들어가면 안 된다. 강력한 자기장 때문에 금속물체가 MRI기계를 향해 날아가서 자칫 환자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경남 김해의 병원에서 발생한 사고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호흡곤란이 있는 환자에게 산소를 공급하고자 산소통을 갖고 MRI실에 들어갔고 MRI를 가동하자 10kg이 넘는 산소통이 환자에게 날아가서 그 충격에 환자가 사망한 사건이다. 물론 직접 상황을 목격하지 않고 의무기록도 읽지 않은 상태에서 ‘과실이 있는 의료사고’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MRI실 내부에 금속제 산소통을 가지고 들어가 그로 인해 환자가 사망한 사건은 명백하게 ‘과실이 있는 의료사고’다. 조그마한 가위조차 가지고 들어가지 못하도록, 엄격하게 통제하는 MRI실에 10kg이 넘는 금속제 산소통을 넣은 행위에 대해서는 어떤 설명도 그저 변명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런 경우, 누구에게 책임이 있을까? 당연히 MRI를 처방한 해당 임상과 의사와 영상의학과 의사에게 있다. 영상의학과 기사도 책임이 있겠지만, 영상의학과 의사에게 그 모든 사안을 감독할 책임이 있고 MRI를 처방한 해당 임상과 의사도 마찬가지다. 다른 사례에서도 비슷하다. 예를 들어, 응급실에서 간호사가 실수로 치명적인 약물을 잘못 투여하거나 혹은 약물의 용량을 지시한 것보다 너무 많이 투여해서 환자에게 피해가 발생하면 최종적으로는 응급의학과 의사의 책임이다. 응급의학과 의사가 환자의 신장 기능이 나빠 ‘조영제를 사용하지 않는 CT’를 처방했는데 영상의학과 기사가 실수로 ‘조영제를 사용하는 CT’를 촬영해서 급성신부전이 발생하면 역시 최종적으로는 응급의학과 의사에게 책임을 묻는다. 그러니까 응급실에서 벌어지는 모든 의료행위는 최종적으로 응급의학과 의사에게 책임이 있다(같은 이유로 내과 병동에서 벌어지는 모든 의료행위의 책임은 담당 내과의사에게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임상의사는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일과 감당하지 못하는 일의 경계를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예를 들어, 우리 응급실은 응급의학과 의사 1명과 간호사 3~4명이 근무 조를 이루고 2개의 격리실이 있다. 그래서 격리실 2곳에 수용한 환자가 모두 중환자인 상황에서는 다른 중환자를 감당하기 어렵다. 특히 격리실에 인공호흡기를 단 환자가 있으면 정신없이 바쁠 수밖에 없다. 이때 119 구급대가 술에 취해 맥주병을 휘두르다 깨진 유리에 손을 베인 환자를 데려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술에 취한 환자와 보호자는 빨리 치료하지 않는다며 난동을 부릴 가능성이 크고, 이런 경우엔 격리실에 있는 중환자의 생명이 위협받을 뿐만 아니라 일반구역에 있는 다른 환자의 안전도 위험하다. 더구나 우리 응급실이 위치한 도시에는 ‘술에 취한 문제 환자’를 전담하는, 경찰관이 24시간 상주하는 ‘주취자 전담 응급실’이 따로 있다. 그러니 그런 상황에서 119 구급대가 술에 취해 난동부리는 ‘경증 환자’를 데려오면 ‘주취자 전담 응급실로 가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 새로운 문제가 발생한다. 구급대원 입장에서는 야속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아가 ‘그냥 대충 받아서 치료하지,’ ‘응급의학과 전문의라고 꼴사납게 굴기는,’ ‘다른 곳은 대충 하는데 여기는 왜 이렇게 빡빡한가?’ 등의 불만을 품을 수 있다. 그러다가 우연히 병원간부를 만나면 “너희 응급실은 너무 깐깐해서 웬만하면 환자를 데려가지 않는다”고 불만을 표시할 것이다. 그러면 병원간부 입장에서는 ‘우리 병원 응급실의 진료수익이 감소한다’고 생각해서 압력(?)을 가할 지도 모른다.

물론 그런 이유로 진료수익이 감소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119 구급대가 싫어하는 병원에는 문제 있는 환자를 이송하고, 좋아하는 병원에는 수익을 크게 남길 수 있는 환자를 데려갈 리가 있을까? 혹시라도 그런 행동을 한다면 공무원으로 아주 심각한 일탈이다.

따지고 보면 병원, 특히 응급실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중증질환을 놓치지 않는 것’과 ‘과실이 있는 의료사고를 방지하는 것’이다. 이미 중환자를 수용하여 더 이상 환자를 감당할 여력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경증 환자 몇 명을 더 진료한다고 경영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그런 식으로 응급실을 운영하다가 중증질환을 놓치거나 과실이 있는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해당 의사뿐 만 아니라 환자와 병원에 큰 피해를 준다.

하지만 병원과 응급실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를 봐도 ‘무리수를 던져 조그마한 이익을 추구하는 것’에만 집중할 뿐, ‘심각한 사고를 방지하는 것’에는 무관심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 ‘각자도생(各自圖生)’이란 말이 널리 퍼진 것이 아닐까?

에디터 kormedimd@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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