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유행기에 누군가를 증오하지 않았나?

[Dr 곽경훈의 세상보기]‘위드 코로나’를 앞두고

“스무 명 넘는 사람이 살해당했으나 아무도 ‘그만 두라’고 말하지 않았다. 폭동이 계속되자 갑작스레 폭풍이 몰아쳤고, 그러자 유대인을 약탈하고 살육하던 폭도는 폭우와 번개가 두려워 떨었다. 그때 주님께서 폭도를 혼란스럽게 만든 틈을 이용하여 도시의 장로들이 살아남은 유대인을 구출했다. 그러나 폭우와 번개가 폭도를 혼란스럽게 하기 전에 그들이 외치기를 ‘열방 중에 그들을 멸하자!’, ‘앞으로는 아무도 이스라엘을 모르게 하자!’고 했다. 주님, 부디 선한 일에는 상을 주시고 스스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고통으로 심판하소서!”

“며칠 후, 세르베라에서도 폭동이 일어나 유대인 열여덟 명을 죽이고 약탈했다. 살아남은 사람은 도망쳐서 옷을 찢고 얼굴에 재를 바른 후, 금식하며 주님께 회개했다. 사흘 뒤, 고행의 날을 맞이하여 타레가에서도 폭동이 일어나 유대인 300명을 죽여 수로에 버렸고 약탈했다. 간신히 살아남은 사람은 유대인이 아닌 친구의 집으로 도망쳐 광기가 가라앉을 때까지 숨었다.”

윗글은 흑사병(Black Death)이 창궐하던 시기, 오늘날의 스페인에 속하는 카탈루니아 지역의 랍비 갈리파파(Hayyim Galipapa)가 연대기에 남긴 증언이다. 1347년부터 1350년까지, 시칠리아를 시작으로 유럽 전체를 뒤흔든 페스트 대유행으로 유럽에서만 2500만 명, 인구의 1/3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페스트의 원인 세균은 예르시나 폐스티스(Yersina pestis)로 평소에는 쥐벼룩의 위장관에 있다가 쥐벼룩이 설치류를 흡혈할 때, 감염을 일으킨다. 따라서 원래는 초원 같은 지역의 야생 설치류에서 유행하는 질병이지만 쥐벼룩은 야생 설치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포유동물을 흡혈할 수 있어 쥐(Rat)처럼 인간과 생활권을 공유하는 동물에서 유행이 발생하면 인간에게도 직접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

14세기의 흑사병은 그런 위협이 극대화한 사례이며 그 후에도 18세기 후반까지 유럽에서는 제법 큰 규모의 유행이 반복했다. 중국 남부와 만주, 미국의 서부 해안에서는 심지어 20세기 초반에도 심각한 유행이 발생했다. 페스트는 임상양상에 따라 크게 림프절페스트, 패혈성페스트, 폐페스트로 분류하며, 가장 흔한 림프절페스트도 치료하지 않으면 1주일 내에 60%의 환자가 사망하는 무시무시한 질병이다.

그런데 페스트의 이런 특징이 명확하게 알려진 것은 비교적 최근이다. 프랑스의 의학자 알렉상드르 예싱(Alexandre Yersin)이 홍콩에서 페스트의 원인 세균을 규명한 것도 1894년이다. 그러니 오랫동안 인류는 페스트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14세기 흑사병을 마주한 의사는 ‘나쁜 공기가 질병을 일으킨다’고 믿어 기다란 부리가 달린 가면과 커다란 망토를 착용하고 환자를 진료했으며 환기를 자주 하고 허브를 태워 공기를 정화하고자 했다. 하지만 질병의 전파에 큰 역할을 담당하는 쥐와 벼룩을 구제하는 것을 비롯한 ‘진짜 효과 있는 조치’는 제대로 시행하지 못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18세기 후반까지도 페스트가 창궐하면 질병이 스스로 물러날 때까지 기다리는 것 외에는 뾰족한 대책이 없었다. 그러면서 군중은 심각한 공포와 불안에 내몰렸고 곧 희생양을 찾아 공격하는 것으로 그런 스트레스에 대응했다. 그리하여 14세기의 흑사병부터 시작해서 18세기 후반까지 페스트가 유행할 때마다 유럽에서는 유대인에 대한 박해가 타올랐다.

사실 사회의 주류에 편입하지 못한 소수 집단을 박해하여 군중의 불안과 공포를 해소하는 것은 페스트 같은 전염병뿐만 아니라 지진, 홍수, 기근 같은 재난이 닥쳤을 때, 흔히 발생하는 비극이다. 1923년 일본에서 관동대지진이 발생했을 때도 불안과 공포에 짓눌린 군중은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넣었다’ 같은 유언비어를 앞세워 일본에 거주한 한국인을 학살했다. 집단의 불안을 어딘가 투사해서 불안을 해소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지난 2년에 가까운 시간을 돌아보면, 코로나19 대유행을 맞이한 우리도 그런 악습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흑사병 시대의 유럽인과 달리 우리는 코로나19의 원인과 전염경로를 빠른 시간에 파악했고 적절한 방역을 시행했으며 심지어 아주 빠른 시간에 효과적인 백신을 개발했음에도 소수 집단에 대한 증오를 선동하여 군중의 불안과 공포를 통제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대유행 초기부터 따져보면 중국동포를 비롯한 외국인, 신천지 교회, 대구에 거주하는 평범한 시민, 이성애가 아닌 성적 지향을 지닌 부류, 보수 성향의 기독교, 최근에는 시위에 나선 노동자까지 특정 집단을 과도하게 비난하고 증오하는 사례가 이어졌다. 이 가운데 이유가 분명한 분노도 있었지만, 비이성적 증오도 적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대유행을 적절히 통제하기 위해서 방역조치가 필요한 것은 틀림없지만 ‘공동체 전체의 안녕을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힘없는 집단에만 희생을 강요한 것도 부정하기 어렵다. 상류층과 안정적인 직업을 가진 중산층은 방역조치에도 상대적으로 평온한 일상을 영위할 수 있으나, 소상공인과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는 방역조치에 가장 크게 희생하면서도 그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코로나19 대유행이 2년에 가까워지고 ‘위드 코로나’란 상황이 현실에 성큼 다가온 지금, 지난 시간 동안 우리가 보인 성숙하지 못한 모습과 우리 사회가 미처 배려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 반성하는 시간이 모두에게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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