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발 재생 돕는 줄기세포, 죽지 않고 사라진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노화가 이뤄지면 머리카락과 털은 하얘지고 빠지기 시작한다. 왜 그럴까? 모발은 작은 터널 형태의 모낭이란 기관에서 자라나는데 모낭 안의 돌출부에 자리 잡은 줄기세포가 머리카락과 털의 형성을 돕는다. 노화가 발생하면 모낭의 아랫부분이 퇴화하면서 백모와 탈모가 발생한다. 여기까지는 과학자들이 발견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모낭이 퇴화하는 이유는 뭘까? 노화로 인해 줄기세포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다가 결국 죽음을 맞기 때문일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 가설이었다. 너무도 당연하다고 여긴 이런 줄기세포 노화설에 일격을 가하는 논문이 발표됐다.

4일(현지시간) 과학저널 《네이처 에이징(노화)》에 발표된 미국 노스웨스턴대 루이 이(Rui Yi) 교수팀의 논문은 놀랍게도 모낭이 노화돼 백모와 탈모 현상이 발생하면 그 안에 있던 줄기세포가 탈출을 감행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뉴욕타임스(NYT)는 같은 날 그 내용을 자세히 보도하며 자동차가 낡아서 더 이상 작동하지 않으면 자동차 수리공이 그 자동차를 버리고 떠나는 것을 연상시킨다고 전했다. 맥아더 장군이 남긴 말에 빗대 말하자면 “모낭줄기세포는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 이라고 해야할까나?

연구진은 조직 깊숙이 침투할 수 있는 장파장 레이저를 사용해 쥐의 귀에 있는 개별 모낭에 녹색 형광 단백질로 표식을 하고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현미경으로 계속 관찰했다. 놀랍게도 쥐가 늙어서 털이 하얘지고 빠지기 시작하자 줄기세포가 모낭 속 작은 집에서 빠져나와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둥근 형태를 띠던 줄기세포는 아메바처럼 긴 타원형으로 모양이 바뀌더니 모낭으로부터 튕겨져 나오면서 원래 형태를 되찾더니 쏜살같이 달아나는 게 관찰됐다.

모낭줄기세포의 모낭 탈출 순간. [사진=루이 이 노스웨스턴대 교수 제공 영상 챕처]
이 교수는 해당 줄기세포가 튕겨져 나간 거리는 세포적 관점에선 날아간 것이나 다름없다고 설명하면서 “내가 직접 보지 않았다면 믿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진은 줄기세포가 탈출하는 순간을 동영상으로도 촬영했다. 그렇게 사라진 줄기세포는 어떻게 됐을까?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면역체계에 의해 잡아 먹혔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연구진의 추론이다.

논문을 살펴본 미국 스탠포드대의 줄기세포 연구원인 찰스 찬 박사는 “충분히 오래 사용하고 부품을 교체하지 않으면 우리 몸도 마모되기 마련”이라면서 동물의 몸을 자동차에 비견했다. 줄기세포는 머리카락, 혈액, 뼈와 같은 조직의 부품을 끊임없이 새 것으로 교체해주는 자동차수리공 같은 역할을 수행하는데 머리카락의 노후화가 심해지면 더 이상의 수리를 포기하고 떠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연구진은 그 다음 단계로 줄기세포가 이렇게 탈출을 감행하는 유전적 메커니즘을 추적했다. 그들은 오래된 모낭 세포에서 FOXC1과 NFATC1라는 유전자가 덜 활성화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두 유전자의 역할은 모낭 속 돌출부에 줄기 세포를 가둬 두는 것이었다.

연구진은 이를 확인하기 위해 이들 유전자가 제거된 쥐를 실험실에서 키워봤다. 이들 쥐는 생후 4~5개월만에 모발이 빠지기 시작했고, 쥐의 연령으로 중년에 해당하는 16개월이 되자 대부분의 모발이 빠졌고 듬성듬성 남은 모발은 하얗게 돼 노화돼 보였다. FOXC1과 NFATC1의 결여가 모낭줄기세포의 탈출을 앞당겨 탈모와 백모의 속도를 앞당긴 것이 확인된 것이다. 연구진의 그 다음 목표는 노화된 쥐의 모낭줄기세포를 보존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를 보는 것이다.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 병리학과의 청밍 추옹 교수는 이번 논문이 노화에 대한 우리의 사고방식에 전환을 가져오게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자연이 우리에게 안겨줄 놀라움은 끊임이 없다”면서 “환상적 결과물을 기대해 봐도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건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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