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진료하며 스포츠 진흥시킨 의사들

[유승흠의 대한민국의료실록] ⑯스포츠계의 의사

제40회 유한철배 전국 일반부 아이스하키대회 대명과 하이원의 경기. 사진=대한아이스하키협회

도쿄 올림픽에 이어서 패럴림픽이 감동의 여운을 전하고 있다. 스포츠는 승패 이상의 의미를 갖는, 세계 시민의 뜨거운 무대라는 것을 생생히 보여주며…. 그런데 우리나라 체육의 발전에 의사들이 선수들을 치료하는 조연뿐 아니라 스포츠 계를 이끈 주연으로서도 역할을 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은 듯하다.

해방 후 의사 스포츠인의 첫 주자(走者)로 유한철(1917~1980)을 들 수가 있다. 초, 중, 고, 대학, 실업 팀 선수들이 모두 참여하는 국내 유일한 아이스하키 대회 ‘유한철배 아이스하키대회’가 바로 그를 기린 대회다.

유한철은 한마디로 팔방미인이었다. 그는 황해도 평산 출신으로 1938년 세브란스의전(연세대 의대)를 졸업했는데 학생 때부터 음악, 연극, 아이스하키를 즐겼다. 의사로서 서울 동대문구 신설동에 자신의 의원을 개원했지만 병원 일보다는 체육활동과 음악, 연극, 영화에 더 열성적이었다.

그는 체육인으로서 1948년 런던올림픽에 의무 담당 본부임원, 1964년 도쿄올림픽에 섭외담당 본부임원 등으로 참여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지만 특히 아이스하키 발전에 크게 기여해서 1968년 대한아이스하키협회 명예회장에 추대됐다. 1964년 제18회 도쿄올림픽대회에는 섭외담당 본부임원으로 참가했고 대한올림픽위원회 문화위원(1969), 대한체육회 이사 겸 전국체전위원장(1971) 등을 역임했다.

유한철은 6.25 전쟁 중 서울 수복 후 안양촬영소 창립과 운영을 도우면서 시나리오 및 영화평론의 세계에 들어섰다. 1958년 시나리오 ‘낭만열차’를 발표했고, ‘재생’, ‘푸른 하늘 은하수’ 등 여러 편의 시나리오를 만들었다. 매우 바쁜 시나리오 작가 중 한사람으로서 1965년 한국시나리오작가협회 부회장으로 추대됐다. 우리나라 시나리오사의 기념비적인 책 《유한철시나리오전집》을 비롯해, 《한국영화를 말한다》 《미스코리아》 《대한체육회사》 등의 책을 저술하기도 했다.

음악에도 재주가 있어 좋아해서 신문과 잡지에 음악 평론을 부지런히 써 주었다. 1973년 방송윤리위원으로 위촉됐고, 가요심의위원장으로서 우리나라 가요의 건전화에 기여했다. 1976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으로 선임됐다.

그는 말을 잘하고 술자리도 좋아해서 친구가 많았으며 일과 사교로 바쁘게 생활하면서도, 약속이나 약속 시간을 한 차례도 어긴 적이 없는 삶을 살았다. 아쉽게도 1980년 연말 62세에 불의의 교통사고로 서거하였는데, 장례식은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예술인장으로 치렀다.

유한철이 스포츠 계에 활력을 넣은 의사라면 김집은 가히 국민체육 진흥의 선구자라고도 할 수 있다.

김집은 1926년 경북 상주에서 출생했고, 1938년 상경해 경기공립중학교(현 경기고)를 졸업하고 경북대 의대에 진학했다. 1948년 의대를 졸업하고 계명대 동산병원 소아과에서 근무했다. 1957년 미국으로 가서 전공의 과정을 마치고 미국 소아과 전문의가 됐다. 한국 의사로 미국 소아과 전문의를 받은 첫 두 명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에모리 대학과 피츠버그 대학에서 석사를 받고 열심히 연구해서 업적을 남겼으며 일본 요코하마 국립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김집은 키가 당시로서는 보기 힘든 거구였던 187㎝로 중학생 시절에 육상, 축구, 탁구의 학교 대표선수였으며 의과대학 재학 중에도 육상 선수로 활약했다. 그는 1970년 소아과의원을 개원하면서 사회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체육회에 남다른 관심을 가졌으며, 경북체육회 이사, 경북체육회 부회장, 대한올림픽위원회(Korea Olympic Committee) 부회장, 대학체육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1981년 체육계를 대표하여 전국구 국회의원에 피선됐으며, 국민체육진흥법을 전면 개정하여 의원입법으로 통과시켰기에 오늘날 체육진흥이 되도록 만들었다. 86아시아경기대회 및 88올림픽대회 특별지원법을 의원입법으로 발의하여 조직위원회가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제12대 국회에서도 전국구의원으로 재선되었다.

서울올림픽 역도에서 금메달을 딴 전병관 선수와 역도 대표팀. 전 선수의 오른쪽이 김집 선수단장. 사진=e영상역사관

김집은 동산병원 교육과장, 소아과 과장 및 모교인 경북대 의대 외래교수로서 숱한 의사들을 교육하는 동시에 체육인을 육성하는 데에도 공헌하였다. 86아시아경기대회. 88올림픽 때 태릉선수촌장(당시 명칭 훈련원장)을 맡았고, 88올림픽 때에는 한국대표선수단의 단장으로 올림픽의 성공에 기여했다. 2002년 월드컵조직위원회 조직위원도 맡았으니 가히 대한민국 현대 스포츠사의 산증인이자 선구자라고 할 만하다.

1983년 대한스포츠의학협회를 창립해 초대회장이 됐으며, 1988년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이끈 뒤 체육부 장관을 맡았다. 체육부 장관으로서는 조기축구, 배드민턴, 등산 등 생활체육을 장려하면서 시도별로 국민 생활관을 짓고 체육관, 수영장을 넣도록 했다. 그는 의사로서 활동도 펼치면서 국제라이온스클럽 총재, 한국청소년연맹 총재 등을 맡으며 사회활동에 기여한 바도 크다.

에디터 kormedimd@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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