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독감보다 가벼우니, 함께 살자고?

[Dr 곽경훈의 세상보기] 부정확한 언어사용과 질병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영화 《가을의 전설》은 서부개척시대 끄트머리의 미국을 배경삼아 3형제를 중심으로 엮은 이야기이며 한 가문이 몰락하는 과정을 비장하고 아름답게 그려낸다. 국내에서는 1995년 개봉하여 큰 인기를 끌었고 특히 젊은 브래드 피트를 ‘낭만적이고 우수에 찬 남자배우의 대명사’로 만들었다.

그런데 ‘가을의 전설’이란 제목은 실제로는 오역이다. ‘Legends of the Fall’이란 영어제목에서 ‘Fall’에는 가을이란 뜻도 있으나 영화의 내용을 감안하면 몰락이 한층 적절한 해석이다. 따라서 ‘가을의 전설’이 아니라 ‘몰락의 전설’로 번역하는 것이 합당하다.

그러나 제목을 ‘몰락의 전설’이라 번역했다면 영화의 흥행에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가을의 전설’이란 제목에서 풍기는 낭만적이고 감성적인 분위기가 ‘몰락의 전설’에서는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가을의 전설’이란 제목과 브래드 피트의 잘 생긴 얼굴이 만든 상승작용이 ‘몰락의 전설’이란 단어로는 가능하지 않다. 이렇게 번역이 대중의 반응을 결정하는 사례는 영화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의학에서도 번역에서 사용한 단어가 해당 질병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좌우할 때가 종종 있다.

독감이 대표적인 사례다. 인플루엔자(Influenza)를 번역하며 ‘독감’이란 단어를 선택한 결과, ‘독한 감기’란 인식이 널리 퍼졌다. 실제로 기침, 인후통과 근육통 같은 초기 증상은 감기와 독감이 비슷하다. 그러나 각기 다른 바이러스가 일으키는 질병이며 중증으로 악화하는 사례가 극히 드문 감기와 달리 독감은 호흡곤란증후군(Respiratory distress syndrome)으로 악화하거나 패혈증 같은 심각한 합병증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역사를 살펴보면 20세기 최초의 대유행도 독감이 주인공이다. 1918년 발생한 스페인독감 대유행은 1차 대전으로 피폐한 세계를 휩쓸어 적어도 수천만의 희생자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 후에도 수차례에 걸쳐 유행이 발생했으며 2009년에도 이른바 신종플루(Novel influenza H1N1) 대유행을 일으켰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사람은 ‘독감’을 대수롭지 않은 질병, ‘조금 독한 감기’ 정도로 생각한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을 대수롭지 않은 질병으로 치부하는 주장도 ‘독감에도 미치지 못하는 사망자 숫자와 치사율’을 운운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정말 독감은 ‘조금 독한 감기’에 불과할까? 또, 코로나19 역시 ‘독감에도 미치지 못하는 사망자 숫자와 치사율’을 지닌 그저 그런 질병일까?

우선 독감부터 살펴보자.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2009년의 신종플루 대유행 당시 실시간 중합효소 연쇄반응(RT-PCR) 검사를 통해 바이러스를 확진한 사망자는 18,631명이다. RT-PCR로 바이러스를 확인하지 못한 사례도 적지 않아 미국의 질병관리본(CDC, 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의 연구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최소 15만1700명, 최다 57만5400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한다. 물론 2009년 신종플루 대유행 초기에 수백만의 사망자를 예상했던 것과 비교하면 적은 숫자이지만 전체 환자 숫자와 인공호흡기 치료를 받고 회복한 사례를 감안하면 ‘조금 독한 감기’라고 생각하기 어렵다.

그러면 코로나19 대유행은 어떨까? 세계 전체가 아니라 미국의 통계만 살펴봐도 지금까지 3700만 명의 환자가 발생했고 62만 명가량 사망했다. 세계 전체를 따지면 2억 명가량의 환자와 400만 명을 훌쩍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 따라서 코로나19는 2009년의 신종플루를 가볍게 압도하는 무시무시한 질병이며 ‘독감에도 미치지 못하는 대수롭지 않은 질병’과는 엄청난 거리가 있다.

다만 이런 내용을 “사망자 대부분은 대유행 초기에 발생했고 이제는 통제 가능한 질병에 불과하다”고 반박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보다 예방접종률이 높은 미국과 이스라엘에서도 확진자가 다시 증가하고 예방접종을 제대로 하지 않은 집단을 중심으로 중증환자와 사망자가 늘어나는 추세다.

따라서 아직 전체 국민의 절반도 예방접종을 완료하지 못한 상황에서 ‘코로나19의 치사율이 높지 않으니 방역을 완화하여 일상으로 복귀하자’는 주장은 너무 이르다. 아울러 “코로나19가 독감에도 미치지 못하는 질병이며 노인과 기저질환이 있는 사람이 아니면 걱정할 필요가 거의 없다”는 주장은 “예방접종이 필요하지 않다,” “코로나19로 사망할 위험보다 예방접종의 부작용으로 사망할 위험이 크다”와 같은 백신반대론을 강화할 수 있어 매우 무책임하다.

물론 코로나19 대유행의 빠른 종식이 가능하지 않은 상황에서 무턱대고 높은 수준의 방역을 지속할 수는 없다. 상황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계획을 세우는 논의가 꼭 필요하다. 다만, 그런 논의를 풀어갈 때, ‘위드 코로나’란 단어를 앞세운 지나친 낙관론과 “코로나19는 독감에도 미치지 못하는 질병이다,” “코로나19보다 예방접종 부작용이 무섭다” 등의 무책임한 주장 대신 신중하고 진지한 태도로 접근해야 하지 않을까? 특히 보건과 의료 분야의 전문가를 자처하는 사람에게는 그런 태도가 꼭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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