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처럼…” 아토피-음식알레르기 치료 열정

[핫닥터] 삼성서울병원 소아청소년과 김지현 교수

해가 떨어질 무렵, 응급실에서 호출이 왔다. 확장성 심근병증 환자 아기가 심장이 멎은 채 실려 왔다. 전공의 최고참(Chief)으로서 가운이 휘날리게 달려가서 심폐소생술을 이끌었다. 겨우 아기의 숨을 돌려놓고 중환자실에 보냈지만, 자정 무렵 아기가 천국으로 떠났다는 비보(悲報)가 들려왔다. 눈물이 핑 돌고, 가슴이 먹먹할 때 배가 꿈틀꿈틀 요동쳤다. 아, 내가 임신 28주차인데….

삼성서울병원 소아청소년과 김지현 교수(44)는 15년 전 중앙대용산병원에서 전공의로 근무할 때 이처럼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생명을 살리려다 조산 진통이 왔다. 입원, 퇴원을 거듭하다 임신 35주 때 응급상황이 생겨 제왕절개술로 첫 아이를 낳았다. 그러나 미숙아 합병증 탓에 아기는 폐에 무리가 왔고 뇌출혈이 생겼다. 발달장애가 뒤따라 도리도리질도, 옹알이도 늦었다. 서는 것도, 걷는 것도, 말도 늦었다. 옹이에 마디라고, 영아 천식으로 쌕쌕거렸고 아토피 피부염 때문에 얼굴엔 진물이 마르지 않았다.

그때만 해도 첫 아이가 앓았던 아토피피부염과 천식 등 알레르기질환을 평생의 전공으로 삼게 될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김 교수는 첫 아이를 돌볼 때 애타던 엄마의 마음으로 전국에서 몰려오는 어린이 알레르기 환자들을 치료하고 있어, 환자 부모들로부터 “마치 자신의 아기처럼 돌봐준다”는 이야기를 듣는 의사다. 김 교수는 첫째가 고통을 이겨내고 마침내 정상적으로 자라는 것을 보면서 ‘알레르기 치료의 기다림’을 절절히 체감하기도 했다.

김 교수는 오른쪽 발가락이 6개인 채로 태어나서 어렸을 때부터 병원을 들락날락했다. 초등 4학년 때 1주일 입원하면서 병원과 의사, 환자에 대한 호기심이 가슴을 쿵쾅쿵쾅 울렸다. 수술실로 갈 때에도 무섭기 보다는 ‘내가 (마취돼) 잠들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 궁금해 견딜 수가 없었다. 어릴적부터 똘망똘망해서 암산대회, 주산대회를 휩쓸었고, 고교 내내 1등이었던 김 교수는 의대에 진학해서 부모를 기쁘게 했다.

김 교수는 중앙대 의대 본과 3학년 때 소아과 실습 중 아기가 완치돼 반짝반짝한 얼굴로 퇴원하는 것을 보며 자신의 눈도 반짝반짝 빛났다. “소아과가 내 전공이야!”

그는 인턴 때 동기와 순번을 바꿔 소아과부터 시작하면서, 선배들에게 자신의 꿈을 밝히고 일찌감치 소아과에 말뚝을 박았다. 전공의 2년차 때에는 임신 30주 미만의 조산아가 연거푸 3명 출산하자 신혼 초인데도 병원에 한 달씩 머무르며 아기를 반짝반짝하게 바꿔서 퇴원시켰다. 당시 병원에 신생아집중치료실이 없어서 내과 중환자실에 인큐베이터를 설치하고 그 앞에서 밤을 새웠고, 간호사와 함께 정맥영양제를 직접 만들어 투여했다.

중앙대병원이 기르고, 삼성서울병원이 키운 의사 

중앙대의 스승들은 열정적 제자를 두고 보고만 있지 않았다. 밤낮 잊고 아기들을 돌보는 제자를 불러서 “1년 동안 좀 더 큰 병원에서 전임의를 하고 복귀했으면 좋겠다”고 설득했고, 삼성서울병원의 이상일 교수에게 연락해서 “재목을 키워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삼성서울병원은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그야말로 중원(中原)이었다. 교과서에서만 봤던 난치병 환자가 수두룩했다. 전임의로 갔지만 그곳에서 쭉 힘든 병과 씨름하고 있던 전공의들보다 아는 것도, 경험도 없었다. 그렇다고 전공의들에게 이것저것 물을 수도 없어서 틈틈이 독학하면서 터득해야만 했다. 병원 부근으로 이사 와서, 발달장애를 이겨내고 있던 첫 아이를 수원의 친정어머니에게 맡기고 병원에서 밤낮 붙박이로 지냈다. 집에는 잠시 옷 갈아입거나 새벽에 잠깐 눈 붙이기 위해 들렀다. 소아청소년과 송년회 때 병원식당에서 식권으로 밥을 가장 많이 해결한 의사로 선정될 정도였다.

중앙대병원으로 되돌아갈 무렵 이상일 교수가 “주차장에서 잠시 얼굴 보자”고 해서 갔더니 “의사는 자신을 절실히 원하는 곳에서 일해야 한다”면서 “김 선생을 절실히 원하는 모교로 돌아가야겠지만 나도 절실히 원하니 절반은 이곳에서 일해달라”고 부탁했다.

김 교수는 1주일 가운데 사흘은 중앙대용산병원에서 진료조교수로서 어린 환자들을 돌봤고, 나흘은 중앙대와 삼성서울병원을 오가며 아토피 피부염의 환경요인에 대한 연구를 했다. 아토피 피부염 환자의 집 100여 곳을 방문해 집먼지진드기를 포집해서 이에 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 무렵 둘째를 낳았다. 중앙대의료원 최초로 비전임으로서 기업 과제를 수탁, 밤늦게 유산균과 아토피 피부염에 대한 연구 제안서를 쓰다가 조산 진통이 왔고 또 퇴원과 입원을 되풀이해야만 했다. 둘째 역시 아토피 피부염이었지만 다행이 일찍 나았다.

김 교수가 3년 가까이 두 살림을 하고 있을 때 삼성서울병원 안강모 교수가 병원 지하 커피숍에서 보자고 했다. 안 교수는 “내년 퇴임하는 이상일 교수 후임으로 와 줬으면 한다”고 제안했다. 김 교수는 “제가 갈 자리가 아닌 것 같다”고 완곡히 사양했고, 중앙대 교수들도 “곧 흑석동 새 병원에서 교수로 활약할 것인데…”하며 반대했다. 그나마 중앙대에선 예비 교수였지만, 삼성에서는 비전임 교원으로 데리고 가겠다는 것이었다. 노발대발하는 교수도 있었다. 이상일, 안강모 교수는 중앙대 교수들을 만나서 “큰물에서 세계적 의사로 잘 키울 테니 믿고 맡겨달라”고 고개 숙여 애원하며 설득했다.

김 교수는 삼성서울병원으로 옮기자마자 학계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아시아소아연구학회 젊은 연구자상,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 삼아학술상, 유럽알레르기임상면역학회 최고 발표상, 대한천식알레르기학회 알레고파마 학술상 등을 연거푸 받았으며 안강모 교수와 함께 포름알데히드가 아토피피부염의 증상을 악화시키는 직접 원인이라는 것을 밝혀내 《영국피부과학지》에 발표했다.

김 교수는 2017년 조교수를 건너뛰고 부교수로 곧바로 임명받았으며, 이듬해 미국 콜로라도 덴버의 NJH(National Jewish Health)로 연수 가서 아토피 피부염의 세계 최고 대가 도널드 륭 교수로부터 아토피 피부염과 음식알레르기의 연구와 치료에 대한 눈높이를 높이고 귀국했다. NJH 연구진과는 지금도 화상으로 공동연구 미팅을 하고 있다.

김 교수는 여러 스승 덕분에 자신이 아기들을 잘 치료할 수 있는 행복을 갖게 됐다고 믿는다. 첫 스승은 딸에 대한 아낌없는 사랑을 체험케 한 부모다. 엄마는 ‘육발이 딸’이 4살 때 수술을 위해 결혼반지를 팔았고, ‘딸 바보 아빠’는 ‘암산왕 딸’을 자전거에 태우고 ‘전장’을 다니며 딸에게 사랑과 자신감을 함께 심어줬다. 중앙대병원의 유병훈, 이동근, 임민석, 최은상 교수는 소아청소년과에 대한 눈을 열도록 가르쳐줬다. 삼성서울병원  이상일 교수는 “어려운 상황에서 모든 판단의 바탕에는 어린이가 있어야 한다”는 진료철학을 심어줬고, 안강모 교수는 ‘탐정’이라는 별명처럼 작은 실마리를 찾아서 난치병을 극복하는 방법과 차트 정리의 본보기를 보여줬다. NJH의 륭 교수는 세계 최고 대가로서 연구 방법을 가르쳐줬다. 김 교수는 자신의 두 딸, 전국에서 오는 어린 환자들과 부모들 역시 자신을 만든 스승이라고 여기고 있다.

김 교수는 소아 알레르기질환은 의료진-보호자-환자가 한 팀으로 극복하는 병이라는 신념으로, 아이의 부모와 함께 아이를 키운다는 심정으로 진료한다. 엄마는 아이를 보면서 어려웠던 점, 증상을 악화시키는 것들에 대해 의사에게 충분히 얘기해야 하고, 의사는 새 치료법을 비롯한 온갖 정보에 대해 엄마에게 터놓고 얘기해야 한다고 믿는다.

김 교수는 환자의 첫 진료 때 “그동안 많이 힘드셨죠? 그래도 잘 키우셨네요.”라고 엄마의 마음을 여는 것부터 시작하고, 엄마와 아이의 마음을 달래고 북돋우기 위해 자신이 아무리 힘들어도 미소와 따뜻한 말을 전하기 위해 노력한다. 어떤 보호자들은 “선생님은 정신과 치료도 함께 한다면서요?”하고 물어오기도 한다.

경구면역요법으로 ‘음식 알레르기 완전 해결’  

김 교수는 아토피 피부염의 맞춤 치료로도 유명하지만, 음식알레르기의 경구(經口)면역요법에서 독보적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음식을 아주 조금 먹이면서 면역계가 포용토록해서 결국 환자가 음식을 먹어도 되게끔 이끄는 치료법이다. 현재 200여명의 아이에게 적용했으며 40~50%는 무시무시한 음식 공포에서부터 벗어났다. 안강모 교수와 함께 “음식알레르기 환자 90%가 경구면역요법으로 음식을 자유롭게 먹게 됐다”는 연구결과를 최근 《알레르기 천식과 면역연구》지에 발표하기도 했다.

김 교수는 현재 코로나19 탓에 원격으로 환자 엄마와 음식스케줄을 조정하며 병을 관리한다. 대략 9개월 동안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음식의 양을 늘리고, 9~10개월에 완전히 먹도록 한다. 요즘에는 코로나19 탓에 원격으로 환자 엄마와 음식 스케줄을 조정하며 관리한다.

“아이들이 친구들과 분식점 가서 라면과 떡볶이 맘껏 먹을 수 있는 행복을 얘기할 때 입가가 저절로 벌어지지요.”

김 교수는 아이가 경구요법의 마지막 관문을 통과하면 환자 엄마에게 표창장을 주면서 아이와 함께 사진을 찍으며 축하한다. 다음 주면 표창장 수여자가 100명에 이른다. 내년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 아기와 함께 마음 졸였던 부모를 모시고 ‘힐링 콘서트’을 열어주려고 계획하고 있다. 그 날이 어서 와야 할 텐데….

    이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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