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로 진료비 급증…적정 의료수가는?

[박창범의 닥터To닥터]

우리나라 건강보험은 행위별수가제이다. 여기서 행위별수가제란 의료기관에서 의료인이 제공하는 행위나 약제, 치료재료 등의 의료서비스에 대하여 서비스별로 가격을 정하여 사용량과 가격에 의해 진료비(요양급여비용)을 지불하는 제도이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이러한 행위별 수가제에서 각 의료행위에 대하여 가격을 정하는 기준이 바로 상대가치점수제도이다. 상대가치점수제도는 의약분업 직후 도입되어 2006년 전문과목별로 총점을 고정하고 과목내에서 점수를 결정하도록 개정되었다가 2017년 전문과목의 벽을 없애는 대신 수술, 처치, 기능검사, 검체검사, 영상검사 등의 유형별로 총점을 고정하고 점수를 결정하도록 개정되었다.

평가된 상대가치점수를 건강보험공단과 의약계대표와 협상으로 통한 계약으로 정하는 점수(상대가치점수에 변환지수를 적용한 값) 당 단가(환산지수)를 곱해 최종 진료수가가 정해지게 된다.

상대가치점수제도는 크게 진료비용, 의사의 업무량, 위험도의 세가지 요소에 따라 정해진다. 여기서 의사의 업무량이란 의료행위의 어려운 정도 및 의사의 업무량이 얼마나 더 많은지에 따라 결정되는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을 의료행위에서 주 시술자의 시간소모 정도와 강도이다. 예를 들어 같은 주사처치라고 하더라도 주사만 주입하고 끝나는 처치에 비하여 보조인력이 2시간 관찰하고 의사가 다시 확인을 해야 한다면 의사의 업무량은 증가하게 된다.

2020년 기준으로 상대가치점수에서 의사업무량이 차지하는 비율은 20%정도에 불과하다. 진료비용이란 임상인력의 인건비와 장비비, 재료비 등을 고려해서 선정한다. 위험도 비용은 각 의료행위점수에 위험도를 반영한 것으로 우리나라의 경우 실제 소송건이나 보상금액을 고려해 결정된다.

원칙적으로 이러한 상대가치점수제도를 통해 고난이도시술이나 수술은 더 높은 경제적인 보상을 하고 저난이도시술이나 수술은 낮은 보상을 통해 의료비용을 줄이고 병원들이 최신 기술에 빨리 적응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목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제도는 여러 문제점을 보이고 있다.

첫째, 우리나라의 상대가치점수제도는 총점고정제도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건강보험의 의료행위에 대한 비용을 그 난이도나 장비사용에 비례하여 ‘절대적’으로 정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의료행위와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정해지는 것이며 이와 함께 난이도 총량제도를 통해 각 유형별로 난이도의 총량은 같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에 A란 의료행위의 상대가치점수가 높아지면 다른 의료행위인 B나 C의 상대가치점수가 하락하게 되어 있다.

이와 같이 제도를 만든 이유는 의학기술과 기기가 점차적으로 계속 발전하고 있는 상황에서 의료계가 서로 견제하도록 하여 궁극적으로 건강보험재정을 예년과 같거나 유사한 수준에서 유지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러한 제도는 최고 난이도이지만 상대적으로 적게 시행되는 신기술의 행위료가 중등도-고 난이도 의료기술의 행위료보다 더 낮도록 유도된다. 선뜻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사정을 들여다보면 이해가 간다. 이러한 고난이도 시술은 최상급 상급종합병원에만 시행될 가능성이 높은데 비하여 중등도-고난이도 시술의 경우 상대적으로 많은 종합병원에서 시행되고 있다.

따라서 의료수가협상에 나서는 개별학회에서는 더 많은 병원에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중등도-고 난이도이지만 병원에서 이미 많이 시행되고 있는 의료기술의 의사

업무량은 높게 평가하고 최고난이도이지만 적게 시행되는 의료기술의 의사 업무량을 낮게 평가하도록 주장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러한 문제점으로 인하여 역설적으로 상대가치점수평가제도가 종합병원 및 상급종합병원 현실에 안주하면서 빈도수가 적은 최고난이도 의료기술들을 빨리 도입해야 할 이유를 감소시킨다.

둘째, 상대가치점수에서 의사행위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적게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상대가치점수에서 의사의 업무량은 20% 정도에 불과하다. 의사의 업무량을 낮게 평가하는 이유는 결국 의료비용의 증가를 최대한 억제하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의사의 업무량 즉 의사의 의료행위 및 처치결정과정은 의과대학, 전공의 혹은 전임의까지의 오랜 수련과 임상적인 경험을 거쳐 이루어진 고도의 판단력과 지식의 결정체이고, 값비싼 장비를 이용하는 사람은 바로 의사임에도 불구하고 의사의 업무량이 낮게 평가되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단지 의료장비가 비싸다는 이유만으로 장비를 가치를 의사의 경험과 기술보다 높게 평가하고 있는 현재의 제도는 지식이나 지적재산과 같은 무형의 자산에 더 높은 가치를 두는 4차산업혁명단계의 사회적 현실과 동떨어져 보인다. 이와 같은 사실은 이를 통해 의료비용을 높이기 위함이 아니다. 현재 상대가치점수에서 같은 비용의 수준이라고 하더라도 의사의 업무량은 좀 더 높게, 그리고 진료비용은 더 낮게 평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비용이 비싼 기기나 기구를 사용하는 경우 진료비용을 통해 상대가치점수를 높게 평가받는 현재의 방식은 가장 기본적이고 매우 중요하지만 값싼 기구나 기기를 사용하는 의료기술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하기 때문에 의사들과 의료기관들이 전통적이지만 상대적으로 값이 싼 기존의 기술을 사용하기 보다는 고가의 의료기기나 장비를 이용하도록 하는 인센티브로 작용하기에 충분하다. 개인적으로는 값비싼 장비를 사용하지 않고도 같거나 유사한 치료성과를 낼 수 있다면 이러한 의료행위를 한 의사에 대하여 경제적인 인센티브를 주는 것이 좀 더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새로 도입된 의료기술에 사용되는 고가의 장비나 기기들을 사용하는데 필요한 소모품의 경우 현재제도에서도 사용액을 보존을 해주고 있는 상황에서 상대가치점수에 진료비용을 통해 의료장비의 비용을 추가하는 것은 비싼 의료장비에 대한 이중적인 혜택이라고 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의 건강보험은 상대가치점수를 통해 총의료비용을 통제하고  있지만 고령화가 진행되고 값비싼 의료기기나 장비가 속속 도입됨에 따라 이미 총 진료비는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상대가치점수제도는 만든 목적을 충분히 수행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현재의 상대가치점수제도를 유지할지 아니면 수정할지에 대하여 앞으로 좀 더 많은 논의와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박창범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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