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의생’의 갈등과 코로나 방역현장의 소통

[Dr 곽경훈의 세상보기]

tvN에서 방영하는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한국에서 제작한 여느 의학드라마와 비교하면 꽤 독특하다. 다른 의학드라마와 달리 ‘악당’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껏 인기를 끈 대부분의 의학드라마에는 ‘탐욕스런 출세주의자’부터 ‘병원을 교묘히 악용하는 재벌’까지 다양한 악당이 등장했고, 그들과 주인공의 갈등이 이야기를 이끄는 큰 동력이었다. 심지어 일본소설을 리메이크한 ‘하얀 거탑’에서는 주인공도 악당에 해당해서 악당과 악당 사이의 갈등이 이야기를 중반까지 이끈다.

그러나 ‘슬기로운 의사생활’에는 그런 ‘사악한 악당’이 등장하지 않는다. 기껏해야 그저 ‘속물근성 가득한 평범한 꼰대’가 가장 큰 악당일 뿐이다. 그래서 전형적인 ‘악당과 영웅의 갈등’은 벌어지지 않는다. 다만 지난주에 방영한 시즌2의 4화에서는 작은 갈등이 나왔다. 드라마의 상황을 간략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악성종양 여부를 확인하려고 긴 바늘로 뇌조직 일부를 채취하는 시술을 받은 환자가 의식은 명료하지만 동공의 크기가 바뀌고 한쪽 팔의 힘이 떨어지는 증상을 보인다. 환자를 담당한 레지던트는 곧 전임의(전문의 자격을 획득하고 세부전공을 위해 수련하는 사람)에게 알린다. 그러나 전임의는 ‘시술 후에 나타날 수 있는 증상’이라며 시큰둥하게 반응한다. 하지만 환자의 상태는 점점 악화하여 레지던트가 다시 전임의에게 보고하지만 이번에도 반응은 비슷하다. 그러자 레지던트가 ‘환자가 잘못되면 선생님이 책임질 수 있느냐? 당장 교수님께 연락하겠다’고 소리친다.

다행히 응급수술로 환자는 위기를 넘긴다. 다만, 위계질서가 강한 대학병원에서 선임자인 전임의에게 소리를 지른 것 때문에 레지던트는 움츠러든다. 그런 레지던트에게 주인공에 해당하는 신경외과 교수는 ‘괜찮아, 네가 합리적으로 판단했다면 더 밀어붙여도 좋아’라고 따뜻하게 말한다.

그런 상황에서 레지던트를 격려하는 교수가 매우 드물다는 것만 제외하면 실제로 병원에서 종종 발생하는 사건이다. 응급실에서는 더욱 흔해서 환자를 처음부터 담당하여 직접 진단한 의사(응급의학과 레지던트 또는 전문의)와 환자에게 시술 혹은 수술을 시행할 임상과 의사의 의견이 다를 때가 적지 않다. 예를 들어 응급의학과에서는 심근경색 가능성이 있으니 심혈관조영술을 시행하자고 주장하고, 심장내과에서는 아직 조금 기다려야 확실히 판단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상황, 응급의학과에서는 아직 환자의 의식이 명료해도 경막하출혈의 양이 늘어날 가능성이 커서 수술이 필요하다고 연락했지만 정작 신경외과에서는 아직 수술보다는 약물치료가 우선이라 판단하여 서로 부딪힐 때 등이 그렇다. 물론 다행히 그런 상황이 비극으로 이어지는 사례는 드물다.

왜냐하면 의료진의 판단이 엇갈리는 경우, 실제 재앙이 닥쳤을 때 책임소재가 명확하기 때문이다. 심한 흉통을 호소하는 환자에게 심혈관조영술을 시행했지만 다행히 심근경색이 아닌 사례와 환자가 심한 흉통을 호소하지만 심근경색의 전형적인 증상이 아니라며 시술을 보류했다가 실제로 심근경색으로 밝혀지는 사례 가운데 어느 것이 한층 심각한 문제인지도 아주 명확하다. 그래서 병원, 특히 응급실에서는 최악의 상황을 피하는 쪽으로 결론이 모아질 때가 많아 확실하지 않아도 심근경색이 의심되면 심혈관조영술을 시행하고 아직 의식이 명료해도 뇌출혈이 악화할 가능성이 있으면 응급수술을 시행한다. 또 그런 상황에서 때로는 선임자 혹은 상급자의 의견을 반박해도 대개는 문제 삼지 않는다.

그러나 사회의 다른 부분에서는 선임자의 의견을 반박하는 것이 쉽지 않다. 병원처럼 책임소재가 명확한 상황도 드물고 잘못된 판단이 당장 비극과 재앙으로 이어지는 사례도 흔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공무원 조직은 그런 성향이 한층 강해서 관료제 특유의 경직성이 도드라져 전문가의 의견을 고위층이 묵살할 때가 적지 않다.

안타깝게도 코로나19 대유행을 맞이한 상황에도 관료제 특유의 그런 문제가 종종 드러나는 듯하다. 백신을 신속하고 충분하게 확보하지 못한 것부터 시작하여 ‘백신보다는 치료제가 게임체인저다’ 같은 주장을 펼친 것과 늘 조금씩 늦은 방역단계 설정, ‘태극기부대’의 광화문집회와 민주노총의 집회에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다’는 식으로 대응한 것까지 모두 그런 사례에 해당할 가능성이 크다.

물론, 과거의 실수를 물고 늘어지며 정부가 하는 일이면 사사건건 반대하는 것은 옳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고위층도 우리에게 닥친 코로나19 대유행이란 고난을 슬기롭게 극복하기 위해서 이제 현장의 전문가가 전하는 말을 보다 경청해야 할 것이다. 또 방역 일선의 공무원도 고위층의 눈치만 볼 것이 아니라, 현장 실무자로서 자신의 목소리를 보다 뚜렷이 내고, 고위층을 설득해야 할 것이다.

에디터 kormedimd@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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