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암 걸렸어” 자유롭게 얘기할 수 없을까?

[조주희의 암&앎] 암밍아웃이 자연스러운 사회

최근 필자의 연구팀은 암진단이 직장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보기 위하여 전남대화순병원과 공동으로 진단 시 직장을 가진 건강한 암 생존자 433명을 조사하였다. 연구에 참여한 암 환자 중 24%가 암 진단 후 자발적으로 또는 타의에 따라 직장을 그만두었으며, 가장 충격적인 것은 그 중 절반이 암을 진단받는 과정에서, 치료를 시작하기 전에 직장을 그만두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배경에는 우리 사회의 암에 대한 편견 및 차별 경험이 깔려있다. 환자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직장을 그만 두는 이유가 암이 걸린 사실을 밝히고 싶지 않아서였다. 왜 밝히고 싶지 않은지 물으니 ‘중요업무 참여 및 능력 발휘 기회 상실’이 있었고, ‘단합·친목 활동 배제’ 또는 퇴직’ ‘승진 불이익’ 등의 사회적 편견과 차별을 토로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처음 진단을 받고 상담을 받으러 온 환자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제가 벌받아서 암에 걸렸 나봐요.” 또는 “제가 무엇을 잘못해서 암에 걸렸나요?”이다. 암이라는 질병의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것이 더 많으며, 무엇을 잘못해서 걸리는 질병이 아니다.

당뇨병, 심장병, 치매처럼 인간의 수명이 길어지고, 여러 사회, 환경적 요소의 작용으로 인하여 누구나 걸릴 수 있는 질병이다. 아직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암은 나와 상관없는 것이며, 암환자를 나와 상관없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다른 눈으로 본다.

하지만 누구가 건강하게 산다고 가정했을 때 3명 중에 1명이 암에 걸리는 요즘 사회에서, 암은 자연스러운 노화 현상 중 하나이고, 지금은 내가 젊고 건강하지만 ‘나중에는 암에 걸려 죽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으로 암에 대해 더 유연해질 때가 올 것이라 본다.

실제로 암을 ‘다른’, ‘나쁜’, ‘남의 이야기’가 아닌 내가 걸릴 수도 있는 하나의 질병으로 생각할 때, 암에 대한 편견도 없어지고 실제 본인에게 혹시 모를 상황이 닥쳤을 때 조금 더 유연한 대처가 가능할 것이다.

더 나아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암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이해와 관심으로 바꾸는 일이다.

가족이나 친구, 직장동료가 암을 진단받으면 세상 큰일이 난 것처럼 얘기하거나 비난하지 말고 암 치료를 받고 잘 극복할 수 있도록 든든한 지원자가 되어 주는 것이다. 직장 동료가 암을 진단받고 치료를 받고 있다면 먼저 다가가 따뜻한 차 한잔을 주면서 혹시 당직을 서야 하거나 스케줄을 바꿔야 할 일이 있다면 언제든지 말해 달라며 얘기해 주는 것이다.

그리고 암을 진단받고 치료받는 것이 힘들텐데 직장을 그만두지 않고 일해 주어서 너무 고맙다고 끝까지 잘 해보라고 용기를 주는 말을 전하는 것이다.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나쁜 사람 또는 부정적인 사건을 암을 비유하고 질병에 관한 편견을 만든다. 하지만 이 척박한 환경속에서도 최근 우리 사회에서 ‘암’이라는 질병의 편견에 맞서 당당하게 이름을 밝힌 ‘암밍아웃’하는 용기 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소셜네트워크 상에서 박피디와 황배우, 새벽, 직장이 없는 남자, 만자, 뽀삐님 등 최근 활발하게 본인들이 암경험과 자기 삶에 대한 일상을 나누는 이들이다.

그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가 있다. 병에 걸린 것이 죄도 아니고, 내가 무엇을 잘못한 것도 아닌데, 숨어 지내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그들은 ‘내가 원래 하던 일을 계속하고 싶었다’ 그리고 ‘암에 대한 편견을 바꾸고 싶었다’고 했다. 삶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병을 이겨내는 그들이 자신의 평범한 삶의 과정을 나누는 그 일은 어떤 열정적 과학자나 훌륭한 의사도 할 수 없는 사회의 변화를 만들어내는 힘이 될 것이다.

필자는 암경험자들의 이러한 당당한 활동이, 그리고 이들을 지지해주는 여러 사람들의 응원이 우리사회의 암에 대한 편견을 조금씩 바꾸어 주고 있다고 믿는다.

우리 모두의 노력으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암’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용기, 희망, 도전, 극복, 승리 이런 단어를 생각할 날이 왔으면 한다. 언젠가 우리나라에서도 항암치료를 받고 민머리를 하고 아침뉴스를 진행하는 아나운서, 암치료후에도 당당히 복직하여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군인, 암치료를 받으면서도 멋지게 드럼을 연주하는 음악가를 볼 날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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