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된 의료 예산, 어떻게 써야 할까?

[Dr 곽경훈의 세상보기] 희소질환 치료비와 보험수가 협상

프로스포츠, 특히 프로야구처럼 늦은 봄부터 가을까지 긴 정규시즌과 포스트시즌을 치르는 종목에서 우승하는 방법 자체는 의외로 간단하다. 올스타에 뽑힌 선수를 죄다 끌어 모으고 특히 선발투수는 리그의 1위부터 6위까지 싹쓸이하면 적어도 몇 년은 우승을 빼앗기지 않는 팀을 만들 수 있다.

그런데 그런 방법을 선택하는 팀은 거의 없다. 메이저리그에서 ‘악의 제국’이란 악명을 떨친 예전의 뉴욕 양키스 또는 최근의 LA 다저스 정도만 비슷한 정책을 펼칠 뿐이다.

그렇다면 대부분의 팀이 이런 간단하고 확실한 성공방식을 사용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유 역시 매우 간단하다. 팀마다 조금씩 액수의 차이가 있으나 사용할 수 있는 재정이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무한정 돈을 쓸 수 있다면 우수한 선수를 싹쓸이해서 무시무시한 팀을 꾸릴 수 있겠지만 ‘무제한의 돈 잔치’는 현실에서 벌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팀을 꾸리는 경영진은 한정된 재정으로 최대한 강한 전력을 구성하려고 온갖 방법을 사용한다. 브래드 피트가 주연한 ‘머니 볼’도 메이저리그에서 오클랜드 에슬레틱스를 이끈 빌리 빈의 실화를 기반으로 적은 돈으로 강팀을 만들려는 경영진의 고군분투를 그린 영화다.

그런 상황은 프로스포츠에 국한하지 않는다. 의료서비스도 마찬가지다. 환자를 치료할 때, 무한정의 자원을 사용할 수 있다면 고민하거나 갈등할 필요가 없을 것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정부는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해 최대한 많은 시민에게 우수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려 노력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다만 완전무결한 제도는 존재하지 않고 애초에 자원이 한정적이라 중요한 부분이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적지 않은 생명이 위기에 처할 때가 있다.

2017년 4월 소아 심장수술용 인공혈관을 생산하던 다국적기업이 한국에서 철수를 선언한 ‘고어사 사태’가 좋은 사례다. 한정된 자원으로 전체 국민에게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다 보니 인공혈관의 가격을 최대한 낮게 책정한 건강보험공단과 해당 가격으로는 이익을 남기기 힘든 기업의 입장이 충돌했고 자칫 많은 소아환자의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었던 사건이다.

고어사가 철수를 선언하며 설정한 2년의 유예기간이 끝나고 실제로 철수를 진행해서 소아환자의 수술을 시행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러서야 정부가 부랴부랴 해결했지만 비슷한 문제는 여전하다. 정부가 ‘희소·긴급도입 필요 의료기기 공급 등에 관한 규정’을 개정했지만, 예를 들어 심장수술에 사용하는 포사인판막도 3세대 판막은 국내에서 사용하기 어렵다. 소아 심장질환보다 훨씬 희귀한 질환에는 최근에 개발한 효과적인 치료제가 있어도 아예 구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물론 해결이 쉽지 않은 문제다. 의료서비스에 사용하는 한정적인 자원을 고려하면 무턱대고 기업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다. 그렇다고 ‘꼭 필요한 경우에는 기업의 특허권을 중지하여 국내에서 싼 가격에 해당 재료를 생산해서 공급하자’ 같은 극단적인 주장을 따르면 국민 정서를 후련하게 할 수는 있어도, 시간이 흐를수록 한국을 의학발전에서 소외되어 고립한 지역으로 만들 가능성이 크다. 아울러 ‘한정된 자원을 사용하여 시민 전체에게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상황에서 어떤 질환을 우선순위에 둘 것이냐?’는 본질적인 문제를 고민하지 않고 ‘고어사 사태’ 같은 사건이 터질 때마다 그때그때 대응하는 방식은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다.

문제는 이런 금쪽같은 돈이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엉뚱한데 쓰이거나 비효율적 운영예산에 투입되면서, 정작 필요한 데에는 쓰이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사회적 의제가 설정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환자와 그 가족, 해당 질환을 치료하는 의료진과 정부에만 문제를 맡겨둘 것이 아니라,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의료와 관련한 예산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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