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 분석으로 ‘내 반쪽’ 찾을 수 있다고?

[김명신의 유전자이야기] 과학적 절차와 상업적 적용

얼마 전 BBC 뉴스에 ‘유전자 분석으로 운명의 상대를 찾을 수 있을까?’ 제목의 기사가 보도됐다. 찾아보니 한 남성이 얼마의 비용을 내 유전자 검사를 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완벽한 연인을 찾아 결혼까지 성공했다는 스토리이다.

그 동안 유전자를 많이 분석해보았지만 어떤 유전자가 사람 간의 인연을 알려줄 수 있는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아서 자료를 좀 더 찾아보기로 하였다. 흥미롭게도 그 근거는 주조직적합성복합체(Major histocompatibility complex, MHC)의 유전자의 변이를 분석하는 것이었다.

MHC는 척추동물의 면역반응 대상 물질을 항원으로 인식시키는 매개체의 역할을 한다. 쉽게 말해 특정 세포가 아군인지, 적군인지 구별하는 유전자 부분이다. 외부에서 단백이나 세포가 들어왔을 때 우리 몸의 면역세포는 이를 자기(Self)인지 비(非)자기(Non-self)인지 구별해 비자기로 인지하면 면역반응을 시작한다. MHC는 종에 따라 명칭이 다른데 가장 먼저 연구된 생쥐에서는 H2라고 하고, 개에서는 DLA(Dog leukocyte antigen), 고양이는 FLA(Feline leukocyte antigen), 그리고 사람은 인간백혈구항원(Human leukocyte antigen, HLA)이라고 부른다.

HLA는 면역반응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자가면역질환 발생과 연관성이 있고, 또한 타인의 장기를 환자에게 이식할 때에도 반드시 검사하는 항목이다.

환자의 면역세포가 HLA를 통하여 이식된 장기를 비자기로 인식하면 면역시스템이 활성화돼 거부반응이 일어날 수 있다. 반대로 이식된 장기에 있는 면역세포가 환자의 세포를 비자기로 인식하여 공격하는 ‘이식편대숙주병(graft-versus-host disease, GVHD)’도 생길 수 있어 이식 전 기증자와 환자의 HLA 형 일치 정도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HLA 형 일치도가 높을수록 이식 성공률이 높고 낮을수록 거부반응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진다. 따라서 환자의 HLA를 분석하고 이와 일치도가 높은 기증자를 선택하는 것이 이식의 지침이 됐다.

한편, HLA를 보다 정확하게 분석하는 기법도 계속 발전해 요즘에는 염기서열분석법(Sequencing)을 이용하여 HLA 유전자를 직접 분석할 수 있다. HLA가 일치하지 않는다고 이식을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이식 성공률을 높이기 위한 연구가 꾸준히 수행돼 이식 장기에 대한 거부반응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환자의 면역시스템을 억제하거나 면역억제제를 투여해서 항체에 대한 역가를 줄이는 탈감작 등의 다양한 방법이 개발되었다. 이를 통해 지금은 HLA가 일치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장기 이식이 가능하고 그 성적도 매우 우수하다.

사람의 면역 시스템을 대표하는 HLA가 어쩌다 운명의 상대를 찾는 도구가 되었을까? 이 근원에는 1995년 클라우스 웨데킨드(Claus Wedekind) 박사의 연구논문이 있다.

이 연구는 스위스 베른 대학에 다니는 학생 중 독일어권 지역에서 흔하게 사용되는 성과 이름을 갖는 49명의 여학생(평균연령 25.2세)과 44명의 남학생(평균연령 24.7세)을 대상으로 수행됐다.

남학생들은 일요일부터 월요일 밤까지 취리히에서 생산된 순면 티셔츠를 입도록 했고, 화요일에 여학생들에게 각각 6장의 티셔츠를 주고 그 냄새를 맡은 뒤 호감도 점수를 주도록 하였다.

그리고는 티셔츠 냄새에 대한 호감도와 HLA 유사도를 분석하여 그 결과를 제시하였는데, 실험에 참가한 여학생들은 HLA 유전자가 다른, 즉 MHC가 다른 남학생의 냄새에 좀 더 호의적인 점수를 주었다고 한다. 필자가 이 논문을 이렇게 자세히 설명하는 이유는 이 연구가 과연 저자들이 말하는 ‘이것은 MHC 또는 연결된 유전자가 오늘날 인간의 짝을 선택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암시한다’는 결론을 내리기에 적절한지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연구를 수행하고 그 결과를 논문으로 게재하기 위해서는 여러 과정이 필요하다. 우선 연구의 목적에 맞는 가설을 세우고 이를 입증하기 위해 적절한 대상을 선정하여 실험을 진행한다.

그 결과는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필요한 통계학적 기법을 사용하여 결과를 제시하며 이를 바탕으로 결론을 내린다. 그러나 어떠한 연구도 완전무결하지는 않기 때문에 해당 연구의 제한점이라든지 향후 검증을 위해 필요한 연구 등을 같이 제안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렇게 꼼꼼히 논문을 작성하여 적절하다고 여겨지는 학술지에 투고하는 것은 시작일 뿐, 이제부터 논문 게재까지의 험난한 여정이 시작된다.

각 학술지는 해당 논문을 가장 잘 검토하고 중립적인 시각에서 평가할 수 있는 학자를 찾아 논문의 심사를 의뢰한다. 심사자(Reviewer)에 의해 검토된 논문은 때로는 게재 거절(Reject)되거나, 운 좋게 수정 요청(Revision)을 받고 지적사항에 따라서 추가적인 분석, 심지어는 보완 실험을 수행하여 수정한 후 다시 투고하고 또 심사를 받는 과정을 거친다.

편파적 판정을 배제하기 위해서 당연히 심사자는 한 명이 아니고 두 명 이상이다. 심사자들은 연구의 설계가 목적에 맞는지, 연구를 수행한 방법과 그 결과를 분석한 과정은 과학적이고 타당한지, 해당 결과를 통해 적절한 결론을 내렸는지를 세세하게 판단하며 지나치게 해석되었다 싶으면 ‘Over interpret(과도하게 해석됨)’라고 지적한다.

이러한 시각으로 이 연구를 보면 이 연구의 여러 한계점을 찾을 수 있다. 우선 대상의 수, 나이, 구성원이 매우 제한적이고 HLA 형의 결정 방법 또한 최근 사용하는 유전자 염기서열분석이 아닌 과거에 사용하던 면역학적 방법으로 분석하였다. 또한 통계적 유의성은 거의 턱걸이 수준인 0.04이다.

결론에 이르는 과정에서 티셔츠 냄새에 대한 선호도를 기존의 생쥐에서의 실험 결과에 꿰맞추어 사람이 짝을 선택하는 것으로 과잉 해석한 부분이 특히나 아쉬운 부분이다.

그래서인지 이 논문을 뒷받침하는 후속 연구들은 거의 없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찾아봤지만 HLA 유전자형이 좋은 배우자를 선택하는데 중요하다는 신뢰도 높은 자료는 찾을 수 없었다.

도리어 유전자, 분자유전학, 통계적 분석 등을 왜곡된 방식으로 제시하는 자료가 어떻게 대중에게 사실로 인지되고 과대 포장될 수 있는지 그리고 설익은 과학 지식이 산업과 손잡았을 때의 위험성을 설명하는 예로 거론된 글을 볼 수 있었다. 과학계가 클라우스 웨데킨드의 설익은 논문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소 안심이 되면서도, 앞으로 잘못된 방식으로 수행된 연구가 대중을 호도할 목적으로 더 많이 사용될 것 같아 마음 한 편이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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