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계 미국인, 코로나보다 혐오범죄로 고통 (연구)

[사진=Xavier Lorenzo/gettyimagesbank]
한국계 미국인을 비롯한 아시아계 미국인들은 코로나19 팬데믹 그 자체보다, 혐오범죄로 인한 고통이 크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지난해와 올해 미국에 거주하는 아시아인들은 증오범죄의 타깃이 되고 있다. 지난 3월에는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총격 사건으로 한국계 여성 4명을 포함한 8명이 사망한 사건이 벌어졌다. 사망자 8명 중 6명은 아시아인으로, 검찰은 가해자에게 혐오범죄를 적용해 사형을 구형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지난달에는 애틀랜타의 한 한인 가정에 총탄이 5발 날아 들어와 침실 옷장 등에 박히는 사건이 벌어졌다. 다행히 사상자는 없었으나, 경찰은 증오범죄일 가능성을 열어두고 조사를 벌이고 있다.

그밖에도 아시아계를 대상으로 한 물리적 폭행이나 언어폭력 사건이 상당수 발생하고 있다. 뉴욕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뉴욕시에서 올해 상반기에 발생한 아시아계 대상 증오범죄는 전년 동기 대비 5배나 늘어났다.

미국 드폴대학교, 애리조나주립대학교, 샌프란시스코주립대학교 등에 재직 중인 아시아계 교수들은 최근 한 편의 논문(STOP AAPI HATE MENTAL HEALTH REPORT)을 통해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팬데믹보다 혐오와 폭력 등으로 더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보고했다.

이 보고에 의하면 팬데믹 기간 인종차별을 경험한 아시아계 미국인들은 우울증, 불안증, 스트레스 등의 증상이 악화됐고, 5명 중 1명은 ‘인종 트라우마’ 징후를 보였다. 인종 트라우마는 인종차별에서 기인한 정신적 외상을 의미한다.

이번 연구는 지난해 4월부터 올해 3월 사이에 실시된 미국 국가 연구 세 건을 분석했다. 각 연구들은 팬데믹 기간 인종차별이 아시아인의 정신건강에 미친 영향들을 분석한 내용을 담고 있다.

아시아계 미국인을 대상으로 한 혐오 사건을 조사하고 있는 비영리 사회단체 ‘스탑 AAPI 헤이트(Stop AAPI Hate)’에 따르면 지난해 3월부터 올해 3월까지 이들의 웹사이트를 통해 신고 된 증오범죄만 6600건에 이른다. 신고되지 않은 건까지 합하면, 훨씬 많은 증오범죄가 발생하고 있을 것이란 추산이다.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증오범죄로 더욱 힘들어하는 이유는 이에 대응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점 때문이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손을 잘 씻는 등의 방역수칙을 잘 지키면 예방이 가능하지만, 증오범죄는 뚜렷한 대응 방법이 없다는 점이 아시아인들을 무력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마스크를 쓰면 썼다고 공격을 받고, 벗으면 벗었다고 공격을 받는 등 불시에 예기치 못한 증오범죄에 지속적으로 노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보고 작성에 참여한 샌프란시스코주립대학교의 러셀 정 교수는 증오범죄가 ‘집단 트라우마’를 일으키고 있다는 점에도 우려를 표했다. 집단 트라우마는 내가 직접적인 사건의 피해자가 아니더라도, 해당 사건에 충격을 받아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것을 말한다. 보스턴대학교와 하버드의과대학교의 공동연구에 의하면 직접적으로 증오범죄에 노출되지 않은 사람들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증상을 보이는 사례들이 발생하고 있다. 증오범죄 현장을 목격했거나 온라인상에서 관련 영상을 보는 등으로도 심각한 충격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국내에서는 봄철 이후 바깥에서 산책을 하거나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언제쯤 마스크를 벗은 채 걸을 수 있을까를 꿈꾼다. 그런데 미국에 사는 아시아계 사람들은 마스크를 쓴 상태에서라도 마음껏 걸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한 아시아계 여성은 증오범죄가 기승을 부린 후 바깥 산책이 불가능해졌다고 말했다. 어린 자녀나 노부모가 있는 아시아계 사람들은 더 큰 불안을 느끼고 있다. 아이가 학교에서 차별을 당하지는 않을지, 노쇠한 부모님이 바깥에서 공격을 받지는 않을지 걱정이 되는 것이다.

이번 보고를 발표한 교수들은 이러한 아시아인들의 고통을 보다 적극적으로 알리고, 궁극적으로는 아시아인을 대상으로 한 증오범죄와 인종차별을 완화할 수 있는 미국 내 정책 변화를 유도해나가야 한다고 전했다.

문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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