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절염 없다는데, 무릎이 아픈 이유?

[스포츠의학 명의 왕준호의 무릎이야기] ②무릎 노화와 관절염

요즘엔 무릎이 아파 병원에 오시는 분들 가운데 의학적 지식이 탄탄한 분들이 많습니다. 엑스레이를 찍고 진료를 하려면 어떤 환자들은 “제 무릎은 관절염 몇 기인가요?”라고 묻습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인터넷의 영상이나 글을 통해서 얻는 정보가 환자들에게도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관절염도 전이성 암처럼 1, 2, 3, 4기 같은 것이 있습니다. 가장 보편적으로 쓰이는 방법은 자기공명영상촬영(MRI)이 없던 1957년 영국 의사 조너스 켈그렌과 존 로렌스가 제안한 ‘K-L 등급’입니다. 엑스레이를 보고 판단하는 가장 고전적 방법이지만 아직도 관절염의 경중을 파악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K-L 등급은 수술이 필요한지, 어떤 수술을 해야 할지 결정하는 객관적인 지표로 사용되고 있지요. 그런데 이 등급에서 1등급 이하인데도 무릎이 아프다고 호소하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퇴행성 관절염이 없이 무릎에 퇴행성 변화가 왔다?

관절연골이 닳아 없어지고 뼈끼리 부딪혀 통증이 심해지면 인공관절 수술이 필요합니다. 그 정도라면 퇴행성 관절염 3기 또는 4기 입니다. 퇴행성 관절염 3기나 4기가 많이 아프다는 건 이해가 가지만, 병원에선 관절염이 없거나 1기라는데 나는 왜 아플까요?

엑스레이에서 관절염이 명확하게 보일 정도라면 사실 이미 무릎의 많은 구조물이 망가진 뒤입니다. 엑스레이에서 이상이 안 보여도 나이가 들면 실제 무릎의 중요한 조직에 퇴행성 변화가 와 있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무릎에는 3개의 중요한 조직이 있는데 반월연골판, 십자인대, 관절연골입니다. 관절연골은 관절을 이루는 두개의 뼈가 만나는 면을 덮고 있어 마찰력을 줄여 부드럽게 움직일 수 있게 합니다. 반월연골판은 관절 내 2개 뼈 사이에 끼어 있어서 관절연골을 보호하고 충격을 흡수합니다. 십자인대는 무릎이 흔들리지 않게 잡아주는 경첩 같은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퇴행성 변화는 동시에 오기도 하지만, 각각의 조직에만 따로 올 수도 있습니다. 이들 구조물에 퇴행성 변화로 문제가 생기면 엑스레이에 관절염이 보이기 전에 무릎이 아플 수 있습니다.

찢어진 물렁뼈, 잘라내는 수술 해야하나?

무릎 퇴행성 변화의 시작은 반월연골판이라 부르는 물렁뼈가 찢어지는 경우가 가장 많습니다. 운동을 하다 심한 충격으로 반월연골판이 찢어지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일상생활 중 가벼운 외상으로 찢어집니다. 병원에서 MRI 찍어보고 물렁뼈 찢어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의사로부터 “찢어진 반월연골판을 그냥 놔두면 더 찢어질 수 있으니 수술로 잘라내야 한다”는 말을 듣습니다.

찢어진 물렁뼈가 너덜거리고 접혀 들어가고 관절뼈 사이에 끼어 들어가서 통증이 심해 절뚝거리고 다니기도 합니다. 일상생활에 지장이 많으면 관절경으로 간단하게 너덜거리는 부분만 잘라내면 통증을 많이 줄일 수 있습니다. 반월연골판이 일반적 퇴행성 변화로 파열됐을 때엔 약을 먹고 ‘걷기 운동’을 하면서 두 세달 기다리면 좋아지는 경우도 있어서, 수술을 서두르지 않아도 됩니다.

십자인대가 부어서 무릎이 아프다?

무릎의 관절 각도가 갑자기 줄어 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른 이유도 많이 있겠지만, 50대나 60 환자 가운데 “특별히 다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무릎을 펴거나 구부릴 때 너무 아파 걷기가 힘들다”며 찾아오면, 이에 해당할 때가 많습니다. 병원에서 엑스레이를 찍어 봐도 이상 없고 MR를 찍어도 관절연골은 괜찮다고 합니다. 그런데 MRI를 자세히 보면 전방십자인대가 심하게 부어서 하얗게 변해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경우는 다치지도 않았는데 십자인대가 끊어져서 전방십자인대 재건술을 해야 된다는 말을 듣고 오시는 분도 있고, 실제로 잘못된 수술이지만 전방십자인대 재건술을 받고 오신 분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십자인대가 부어 있을까요? 십자인대에도 퇴행성 변화가 올 수 있습니다. 다른 조직과 동시에 퇴행성 변화가 올 수 있지만, 십자인대에만 퇴행성 변화가 먼저 올 수도 있습니다. 뼈가 덧자라서 십자인대를 둘러 싸고 있는 공간이 좁아지면 수술로 뼈를 살짝 깎아내 약간의 공간을 만들어 주고 부풀어 올라 있는 십자인대를 살짝 정리해 주면 금방 통증이 줄어들곤 합니다.

그런데 수술 없이도 몇 달 동안 스테로이드 약을 먹으며 굽혔다 폈다 운동과 걷기 운동을 열심히 하면 좋아지는 경우가 많아서 비수술적 치료를 먼저 해 볼 수 있습니다.

관절연골이 손상되는 것이 관절염이다

퇴행성 관절염은 관절연골에 퇴행성 변화가 온 것입니다. 관절연골의 퇴행성 변화를 막기 위해 반월연골판이나 십자인대를 잘 보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이가 들면 관절연골은 왜 손상이 될까요? 장마철 지나면 깨끗했던 아스팔트 도로가 갈라지고 구멍이 나기도 하고 오래된 아파트에 살다보면 실 타일도 어느 날 갑자기 떨어지기도 합니다. 엑스레이에는 이상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깨끗하고 매끈해야 될 관절면에서 관절연골이 떨어져 나가면 뼈가 노출되어 통증이 심해집니다.

이미 퇴행성 관절염이 심하게 진행됐다면, 줄기세포를 비롯한 어떤 재생치료도 효과가 없고 결국은 인공관절만이 답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지 않은 관절연골 결손은 어쩌면 흰머리 생기 듯 자연스러운 변화라 볼 수 있습니다. 무릎이 많이 붓거나 많이 아프면 수술이 필요한 경우가 적지 않지만, 관절연골이 떨여져 나가도, 두세 달 지나면 좋아지는 경우가 있어서 수술만이 답은 아닙니다.

누구든지 항상 건강하고 아름다운 몸을 가지고 평생 살고 싶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어느 누구도 세월을 거스를 수 없습니다. 어쩌면 나이 먹으면서 생기는 몸의 자연스러운 노화현상, 다른 말로 퇴행성 변화를 받아들이고 적응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퇴행성 관절염이 왔다고 걱정하며 슬픈 표정으로 병원에 오시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에게 저는 이런 질문을 합니다. “나이 드는게 슬프세요?” 물론 나이 들어가는 것이 기쁜 일은 아니지만 어찌 보면 슬픈 일도 아닐 것입니다. 그냥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어쩌면 관절도 나이 먹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할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평소 관리를 잘하고, 이상이 생기면 적절하게 잘 치료 받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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