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간호사, 전공의 빈틈 메울 수 있나?

[박창범의 닥터To닥터]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최근 서울대병원이 의사보조인력(Physician assistant, PA)을 임상전담간호사(clinical practice nurse, CPN)로 이름을 바꾸면서 이들을 간호부에서 진료부로 소속시켜 양성하겠다고 발표해 의계가가 뜨겁다. 전국광역시도의사회장협의회는 성명서를 내고 이의 철회를 촉구했고, 대한개원의협의회 및 각 지역 의사회도 서울대병원의 의사보조인력 양성화를 멈출 것을 요구했다.

여기서 의사보조인력이란 의료현장에서 의사를 도와 진료에 도움을 주는 인력으로서 거의 대부분이 간호사들이다. 이들은 통상적인 간호사의 업무범위를 넘어 진단서 제공과 같은 행정업무부터 수술 및 시술 보조, 약물 처방, 환자와 가족의 교육 및 상담, 회진 등 실제적인 의사의 역할을 수행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법에서 의사보조인력을 인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법적으로 이들의 의료행위는 보호받을 수 없을 뿐 아니라 공식적인 교육과정이 없기 때문에 각 의료현장에서 필요에 따라 교육을 시켜 운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사보조인력의 합법화를 통해 양성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첫째, 종합병원/대학병원의 각 과에 필요한 전공의 수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이를 메우기 위해서는 의사보조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산부인과, 흉부외과, 일반외과, 비뇨기과 등 전공의 지원이 거의 없거나 매우 부족한 과들에선 이들이 없다면 현재의 의료서비스를 환자들에게 제공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둘째, 전공의 수가 비교적 안정적으로 수급이 되는 과에서도 병원업무에 대한 안정적인 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현재 전공의특별법 때문에 전공의들은 근로시간이 주 80시간 및 주 2회 당직으로 제한되고 있다. 이와 함께 대부부의 전공학회는 전문의를 줄이기 위해 매년 모집하는 전공의 수를 줄이고 있는데, 이로 인해 각 병원은 필요한 의사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다. 이를 보충하기 위하여 의사보조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셋째, 3~4년만 지나면 수련이 종료되는 전공의의 경우, 3월이 되면 경험이 풍부한 고년차 전공의가 나가고 새 인력이 보충돼 재교육이 필요하다. 이로 인하여 종합병원/대학병원의 의료서비스가 3~4월에 급격히 수준이 낮아지는 경향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의사보조인력의 경우 비록 초기의 교육이 어렵고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나중에는 업무의 숙달성이 전공의보다 높아져 시기와 상관없이 병원의료서비스의 일정한 정도관리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넷째, 만약 의사의 업무 중 꼭 의사가 수행하지 않아도 되는 업무, 또는 일부 가벼운 의사 업무를 공식적으로 위임하여 진료보조인력에게 맡긴다면 진료과 운영에 도움이 되고, 전공의 진료업무 투입을 위하여 전문의를 과다하게 양산하는 것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첫째, 현재 의사보조인력의 업무범위가 전공의와 거의 겹치기 때문에 의사보조인력을 양성화하면 전공의 수련은 황폐화될 것이고, 이렇게 황폐화된 수련과정은 전문의의 질적인 저하를 가져와 결국 개원가의 의료서비스 수준이 결국 하향평준화 된다는 것이다.

둘째, 현재 대학병원∙종합병원에서 의사보조인력을 집중적으로 고용하는 이유는 이들의 임금이 전문의보다 낮기 때문으로,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국민건강보험에 더 높은 수가와 보상체제를 요구해야 하는 것이지 이를 의사보조인력 고용과 같은 원인회피적인 수단을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셋째, 의사를 대신하여 의사보조인력으로 의료행위를 하게 하는 것은 현재의 의료질서를 붕괴시키고, 의료의 질 저하를 초래할 뿐 아니라 의사와 환자와의 신뢰를 깨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넷째, 현재 의사보조인력들은 진단서, 검사오더, 약물처방과 같이 의사만이 할 수 있는 의료행위를 자신의 이름이 아닌 대학교수∙전문의의 이름으로 일을 진행한다. 만약 이들의 잘못된 의료행위로 인하여 환자의 상태가 악화되거나 사망하였을 때 대학교수∙전문의와 의사보조인력들이 서로 책임을 떠넘기며 분쟁의 소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일부 중소병원에선 현재의 의료보조인력제도의 맹점을 악용하여 전문의 없이 의료보조인력이 직접 일부 처치나 시술을 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만약 의사보조인력이 합법화되면 이들의 대리수술 혹은 유령수술이 횡행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다섯째, 만약 의사보조인력이 합법화돼 양성화된다면 대학교수∙전문의들은 매번 바뀌는 전공의보다 오랫동안 손발을 맞춰 일해 온 의사보조인력들을 더 신뢰할 가능성이 높고, 의사보조인력이 자신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전공의에게 의료처치에 대한 지시를 내리는 등 의사의 고유업무권한을 침해할 수 있다.

현재까지의 대학병원∙종합병원의 진료운영체제는 저임금에 비하여 노동의 질이 높으며 업무 순응도(복종도)가 높은 전공의들에게 교육이라는 명목의 희생에 의해 유지됐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편법적인 운영체제는 전공의들의 전공과 편식현상, 전공의 모집인원 축소 및 전공의 특별법이라는 세가지 파도로 인하여 한계에 다다른 것 같다. 문제는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를 다시 저비용이지만 불법적인 의사보조인력이라는 주먹구구식 대응으로 맞서고 있다는 비판도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의사보조인력이 합법화된 미국에서는 전문 학사나 석사과정 등 공식적 교육과정 및 임상경험을 거쳐야 의사보조인력이 될 수 있고, 일본은 의사보조인력을 합법화하는 대신 의료비서(Medical secretary)라는 제도를 통해 진단서, 검사예약 등의 서류작업을 의사의 감독하에 보조하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했다. 대만에선 의사보조인력을 합법화하는 대신 임산전문간호사(Clinical nurse specialist)라는 제도를 통해 서류작업과 검사오더, 약물처방 등 의사진료의 일부분을 돕고 있다.

대학병원∙종합병원의 의료인력부족이라는 현실적인 문제들을 어떻게 근본적으로 해결할 지와 함께 의사보조인력 합법화 및 이들의 의료행위를 어디까지 제한할 지에 대하여 의료계와 정부가 좀 더 적극적으로 머리를 맞대고 논의할 시점이다.

    박창범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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