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의 헬스앤] “의사들은 왜 그리 싸늘한가요?”

이 글의 제목을 달 때 좀 망설였다. “의사들은 왜 그리 싸늘한가요”라는 말을 일반화할 순 없기 때문이다. 지금도 힘든 여건 속에서 헌신적으로 환자를 돌보며 소통하는 의사들이 많다. 환자, 특히 죽음을 떠올리는 말기 환자의 생각은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주위의 말 한 마디에 큰 상처를 받는다. 의사뿐만 아니라 가족도 환자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는 말을 삼가야 한다.
복막암 4기와 싸우고 있는 권순욱(40세) 감독이 의사들에게 한 말이 주목받고 있다. 그는 “죽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는데, 의사들은 왜 그리 싸늘한가요?”라고 SNS에 썼다. 광고-뮤직비디오 감독인 그는 가수 보아의 오빠로도 유명하다. 복막암은 복부 내장을 싸고 있는 복막에 생긴 암이다.
그가 공개한 의무기록를 보면 ‘환자의 기대여명은 3~6개월 정도로 보이나 복막염이 회복되지 않으면 수일 내 사망 가능한 상태’라고 적혀 있다. 권 감독은 “대학병원 3곳이 비슷한 진단을 내렸다”면서 “여러 명의 의사에게 들은 얘기”라며 SNS에 썼다.
“이 병이 나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이 병은 낫는 병이 아녜요….”
“항암(치료) 시작하고 좋아진 적 있어요? 그냥 안 좋아지는 증상을 늦추는 것일 뿐입니다.”
“(살겠다는) 환자 의지가 강한 건 알겠는데 이런저런 시도를 해서 몸에 고통 주지 말고 그냥 편하게 갈 수 있게, 그저 항암약이 듣길 바라는 게….”
의사들이 실제로 이런 말을 했는지 확인하기는 어렵다. 다만 권 감독이 고통스런 암 투병 못지않게 말 한 마디에 깊은 생채기를 입은 것은 사실인 것 같다. 그는 “복막암 완전 관해(증상 감소) 사례도 보이고, 저도 당장 이대로 죽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는데 의사들은 왜 그렇게 싸늘하신지 모르겠습니다”라고 적었다.
말기암 환자는 2번의 심리적 충격을 경험한다. 첫 번째가 “내가 왜 암에 걸렸을까” “왜 하필 나인가” .. 암 환자는 암 자체의 치료 못지않게 감정적 기복과 정신적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게 중요하다. 두 번째가 병기를 통보받았을 때다. 2기 암도 충격인데, 4기의 절망감은 건강한 사람은 절대로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여기에 몸에 물 한 방울도 흡수되지 않는 갈증과 항암치료의 통증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치료 막바지에는 ‘의료진과 내 주위를 지켜온 사람들이 나를 포기하지는 않을까’ 라는 생각에 스트레스가 더욱 높아진다.
의료계에서도 소통, 커뮤니케이션을 강조하는 시대다. 과거에는 의료지식이 뛰어나고 수술 잘 하면 명의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요즘은 커뮤니케이션 능력도 중요시 한다. 병원에서 의사를 초빙할 때 소통 능력도 살피는 이유다. 의과대학에서 소통 기술을 배우고 의사 국가고시에 커뮤니케이션 과목도 들어 있다. 대한의료커뮤니케이션학회에서는 학술대회 때면 ‘의사-환자와의 소통법’과 ‘나쁜 소식 전하기’ ‘죽음’에 대해 열띤 토론이 벌어지기도 한다.
국가암정보센터에 나와 있는 대한암협회의 암 환자를 위한 권고수칙을 보자.
“암 진단 후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절망이 아닌 희망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말기 암 환자라도 100% 사망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아무리 비관적인 경우라도 살아남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희망의 증거입니다. 내가 생존하는 사람들 속에 포함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각오를 다지십시오.”
권순욱 감독은 이 권고수칙을 우직하게 실천하고 있는 성실한 환자인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돌보는 의사로부터는 권고수칙과는 크게 다른 싸늘한 말을 들어야 했다. 권 감독은 “SNS에 글 올리는 게 이렇게 힘든 줄 몰랐다”고 했다. 그런데도 의사의 싸늘함에 대한 서운함을 표현하는 글을 올렸다. 육체의 아픔을 뛰어 넘어 마음속에 깊은 상처가 난 것으로 보인다.
말기 환자를 주로 만나는 의사는 감정을 배제하도록 훈련받기도 한다는 주장도 있다. 감정이 섞이면 의사가 냉정함을 잃어 치료에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한 명의 의사가 하루에 100명이 넘는 환자를 봐야 하는 의료시스템의 문제를 지적하기도 한다. 빨리 치료해서 더 많은 수익을 올려야 하는 국내 병원경영의 해묵은 과제를 다시 꺼내기도 한다.
짧은 진료시간에 ‘나쁜 소식’을 정확하게 전달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더라도 “유감입니다” “힘드실 것으로 생각됩니다”라는 말이라도 건네는 게 어떨까? 냉정함은 잃지 않으면서 ‘싸늘하다’는 인상은 덜 수 있을 지도 모른다. 환자와 의사의 진정한 커뮤니케이션은 강의나 시험으로 다 배울 수는 없다. 의사라면 환자와의 ‘라포(Rapport)’를 수없이 들었을 것이다. 상호 이해와 공감을 통해 형성되는 신뢰와 유대감이다.
권순욱 감독의 글에 잘못 전달된 내용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말기 환자가 느끼는 의사에 대한 서운함이 핵심이다. 극도로 악화된 몸 상태에 마음은 민감해져 있는데, 의사의 냉정함까지 더해지면 환자는 조그만 일에도 서운함을 느끼고 절망한다.
의사들은 그에게서 서운함을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40세에 죽음과 맞닥뜨린 환자의 절박함과 스트레스를 헤아렸으면 한다. 그 환자가 내 가족이라면… 내가 모시던 의대 교수님이라면… 늘 시간에 쫓기면서 힘든 상황과 마주하는 의료현장의 의사들이 다시 ‘라포’에 대해 되새겨 봤으면 좋겠다. 의료계 뿐 아니라 모든 직종에서 소통이 강조되면서 과거와는 다른 어려움이 있다. 나도 무심코 던진 말 한 마디에 후배가 상처받진 않았는지 되돌아 봐야 겠다.
김용 기자 ecok@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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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늘해도 괜찮으니 자세히 설명이나 하시고
아무것도 안하고 진료비 받으면 낭비입니다.
아플수록 의사에게 의지하고 기대이게 돼는데…의사선생님들도 힘들더라도 따뜻하게 좀 하얀거짓말이라도 좀 해주었으면 ..?
사는동안만은 삶의 희망을 놓고 싶지 않을 환자의 맘이 보이네요.
에이 거짓말은 안되죠.
말기환자의 마음을 잘알고, 공감해주시면될것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