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주가가 금주인보다 건강하다는 연구의 함정은?

[Dr 곽경훈의 세상보기] 생존편향과 의료연구의 왜곡

제2차 세계대전 중반 무렵, 연합군 수뇌부는 본격적으로 독일을 폭격하면서 폭격기의 생존을 높이는 방안에 골몰했다. 그래도 1차 대전의 끔찍한 참호전이 남긴 교훈 덕분에, 연합군 수뇌부는 ‘과학’과 ‘통계’를 중요하게 여겨서 나름대로 합리적인 방법을 쓰려고 했다. 폭격을 마치고 귀환한 비행기를 조사, 독일 전투기의 공격과 대공포의 사격이 집중한 부분을 찾아내 해당 부분에 장갑(裝甲)을 강화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조사 결과 대부분의 손상은 날개와 기체 뒤쪽에 집중했다. 그래서 연합군 수뇌부는 손상이 집중한 날개와 기체 뒤쪽에 강철판을 덧대기로 했다. 비행기를 무턱대고 무겁게 만들 수 없고, 특히 폭격기는 상당량의 폭탄을 적재하므로 날개와 기체 뒤쪽의 장갑을 강화하면 상대적으로 다른 부분은 약해질 수밖에 없지만 연합군 수뇌부는 ‘통계’와 ‘과학’을 이용한 ‘합리적 판단’에 동의했다.

다행히 그 어리석은 판단은 실행에 다다르지 못했다. 2차 대전 동안 미군을 자문했던 콜럼비아 대학의 통계학자 모임인 SRG(Statistical Research Group)가 반대했기 때문이다. 나치 독일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유대계 통계학자 아브라함 발트(Abraham Wald)가 이끄는 SRG의 통계학자들은 ‘생존 편향(Survivorship bias)’을 지적했다. 생존편향은 생존에 실패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없으므로 비적 가시성이 두드러지는 생존자들의 사례에 집중함으로써 생기는 편향을 말한다.

쉽게 설명하면 동체 앞쪽과 엔진이 손상된 폭격기는 추락해 기지에 돌아올 수없을 가능성이 커서 단순히 생존해 귀환한 폭격기의 손상을 조사하여 그 결과만 보고 날개와 기체 뒤쪽의 장갑을 강화하는 결정은 오히려 폭격기의 생존성을 떨어뜨릴 것이며 반대로 기체 앞쪽과 엔진의 장갑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 SRG의 주장이었다.

이런 사례는 단순히 2차 대전의 폭격기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의료에서도 마찬가지다. ‘술을 적당히 마시는 사람이 술을 전혀 마시지 않는 사람보다 건강하다’, ‘뚱뚱한 사람이 마른 사람보다 건강하고 수명이 길다’ 같은 주장이 대표적인 사례다.

‘술을 적당히 마시는 사람이 술을 전혀 마시지 않는 사람보다 건강하다’는 연구 가운데 상당수가 ‘언제부터 술을 마시지 않았느냐?’ 혹은 ‘평생토록 술을 마신 경험이 몇 번이냐?’ 같은 부분을 조사하지 않았다.

그래서 술을 전혀 마시지 않는다고 대답한 집단에는 심각할 정도로 술을 많이 마시다가 건강이 악화돼 최근 몇 개월에서 몇 년 동안 금주한 사람을 포함했고 그러니 술을 전혀 마시지 않는 사람보다 1주에 1-2회 가량 소량의 술을 섭취하는 사람이 건강한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마찬가지로 ‘뚱뚱한 사람이 마른 사람보다 건강하고 수명이 길다’는 연구에서는 마른 사람에 뇌졸중, 당뇨병, 심징질환, 만성 폐질환, 암 같은 문제로 심각하게 체중이 감소한 경우를 포함해서 당연히 그런 사람보다는 뚱뚱한 사람이 수명이 길고 건강하다는 결론으로 흘러갔다.

그런데 이런 사례의 원인이 단순한 무지나 부주의가 아니라 의도적일 때도 있다. 특정한 정치적 목적을 이루거나 사사로운 이익을 추구하려고 ‘과학’과 ‘통계’란 권위를 내세우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 과거 소련 정부가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사고의 희생자와 그 가족을 대상으로 ‘방사능이 DNA에 손상을 주어 돌연변이 확률을 높이는가?’를 조사할 때, 방사능에 노출하고 건강하게 생존한 사람만 선별해서 ‘상당한 양의 방사능도 실제로는 자녀의 돌연변이 확률을 높이지 않는다’는 황당한 결론을 유도한 것이 좋은 사례다.

작년부터 이어진 코로나19 대유행도 마찬가지다. 코로나19 대유행은 대부분에게는 매우 고통스런 재난이나 그런 부류에게는 ‘통계’와 ‘과학’을 내세워 유명세를 얻고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이루는 좋은 기회다. 그래서 진영에 관계없이, 아전인수로 해석한 자료를 이용하여 ‘통계’과 ‘과학’의 권위를 빌려 왜곡한 주장을 펼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대유행의 파고는 높아지고 백신은 부족하며 곳곳에서 변이 바이러스의 출현을 보고하는 흉흉한 시기를 맞이한 지금, 우리 모두 그런 부류의 주장에 한층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지성인이라면 어떤 과학적 연구결과를 접할 때 스스로 경계해야 할 것이다. 자신의 감성적 호오(好惡)와 연결해 섣불리 누군가를 비난하기 보다는, 찬찬히 톺아볼 것이다. 이 연구결과에는 편향, 의도, 모순이 없는가? 이 연구에는 어떤 부분이 간과돼 있지는 않은가? 그런 과정을 거치고 나서 누군가를 비판하거나 대안을 찾아도 늦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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