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보험, 어른이보험 된 ‘웃픈 현실’

[허윤정의 의료세상] MZ세대의 건강불안과 보험

‘태어나는 아이는 줄어드는데, 어린이보험 판매가 급증했다(?)’

상식적으로 볼 때 이상하지만 실제 국내 보험시장에서 나타난 현상이다. 어떻게든 새로운 수익을 창출하려는 보험사와 ‘가성비’ 있는 보험 상품을 좇는 MZ세대 금융소비자들의 이해관계가 맞물린 결과다.

MZ세대를 고객으로 끌어 모은 ‘어른이보험’은 갈수록 커질 전망이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공적영역에서 도움을 받지 못할 것”이란 두려움이 깔려 있어 대책 마련이 필요해 보인다.

태어나기 전에 이미 보험에 가입한 태아의 비율은 67%에 이른다. 지난 2017년 수치를 보면 뱃속 아기 3명 중 2명이 어린이보험에 가입했다. 민법상 태아는 보험의 보호 대상이 될 수 없지만 보험에 가입할 수 있다. 실제 혜택은 태아가 태어났을 때부터 받는다. 2019년 3월 대법원은 상해보험에서 태아시기에 발생한 상해·질병도 보상 대상에 포함된다고 판결했다.

삼성화재, 현대해상, DB손해보험, KB손해보험, 메리츠화재 등 상위 5개 사 어린이보험에 가입한 태아는 2017년 모두 23만8천108명으로 집계됐다. 2017년 출생한 35만 7771명의 67%에 해당하는 태아가 어린이보험에 가입한 셈이다.

어린이보험은 15세 이하 어린이의 성장기 질병이나 상해에 대한 입원비, 치료비 등을 보장하는 보험이다. 임신 중에 아이가 선천성 기형이나 저체중 등이 우려되면 태아 특약도 가능하고 임신중독증 같이 출산 관련 질환으로 인한 임산부의 위험도 보장한다.

2020년 혼인 건수는 21만 4,000건으로 전년 보다 2만 6,000건이 줄어 10.7% 감소했다. 평균 초혼 연령은 남자는 33.2세, 여자는 30.8세로 작년보다 남자는 0.1세 낮아졌고 여자는 0.2세 높아졌다. 초혼 연령 상승 등 35세 이상 고령 산모 비중은 33.4%로, 2009년 15.4%에서 10년 새 2배 이상 늘었다. 산모의 고령화 추세와 다태아 출산 증가로 인한 고위험임신 및 저체중아의 출산 증가 등이 태아보험 가입에 영향을 미쳤다. 저체중이나 선천성 질환 신생아는 병원비 부담이 크다.

2020년 출생아는 27만 2400명으로, 2019년(30만2700명)보다 10% 감소했다. 연간 출생아 수는 2017년 처음 30만 명대로 내려간 뒤, 불과 3년 만에 20만 명대로 주저앉았다. 통계청은 작년은 코로나19로 혼인이 줄어 올해는 출생 인구가 더 감소할 것이라고 예견하고 있다.

신생아 숫자가 줄자 손해보험사들은 아예 가입연령을 높이는 쪽으로 전략을 수정했다. 현재 각 손해보험사들은 30세까지 가입 가능한 ‘어린이보험’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어린이보험은 15세 이하가 대상이었다. 그런데 작년 주요 손해보험사들이 어린이보험 가입 가능 연령을 30세까지 올렸다. 저출산 여파로 수요층이 줄면서 보험 사각지대인 2030 세대를 겨냥한 보험사의 전략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30세까지 어린이보험을 판매해오던 생명보험사에 이어 손해보험사까지 공격적인 마케팅에 합류했다.

손해보험 업계는 가입자 중 30% 정도가 만 19세 이상 성인인 것으로 추산한다. 성인 상품에 비해 20% 저렴한 보험료는 2030 세대가 관심을 갖는 이유다. 손해보험협회는 삼성화재, 현대해상, DB손해보험, KB손해보험 등 4대 보험사가 판매하는 어린이보험 원수보험료가 2020년 1분기 6877억 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2018년 1분기 4933억 원에서 2년 새 39% 늘어난 수치다. 계약 건수도 2018년 1분기 322만 8007건에서 2020년 1분기 409만9682건으로 27% 증가했다.

시장 확대에도 불구하고 생명보험사는 이달부터 암보험과 어린이보험을 비롯한 보장성보험의 보험료를 올린다. 각 상품의 보험료가 10%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생명보험업계는 지난해 코로나19로 영업환경이 악화된 와중에도 총 3조4천544억 원의 당기 순이익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10.9% 성장한 수치다. 보장성보험의 수입보험료도 44조9천773억 원으로 4.1% 늘었다.

주머니가 가벼운 2030세대의 어린이보험 가입은 ‘건강 불안’을 극복하려는 각자도생의 길이다. 정부는 MZ세대가 느끼는 미래에 대한 ‘건강불안’을 통찰하고 공감해야 한다. 건강보험과 민간보험의 합리적인 역할분담으로 이들의 건강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방법을 찾는데 적극 나서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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