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열풍.. 이공계 위기를 자초한 경우

[김용의 헬스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과학고등학교 졸업생이 의과대학에 진학하는 사례가 갈수록 늘고 있다. 순수 과학인재 양성을 위해 막대한 국민 세금이 투입된 과학고 졸업생의 20% 이상이 이공계 이외 학부로 진학한 학교도 3곳이나 된다. 이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더욱 따가워지고 있다. 의대 6곳에 동시 합격한 과학고 졸업생을 출연시킨 한 방송사는 쇄도하는 시청자들의 비판에 결국 공식 사과했다. 시청자들은 과학고에 “내가 낸 세금”이 투입된다는 점을 특히 문제 삼으며, 설립 취지를 어기고 의대에 진학한 것에 대해 분통을 터뜨렸다.

실제로 과학고는 모두 ‘공립’학교로 학생 1인당 투입되는 국민 세금이 1천만 원이 넘는다. 하지만 졸업 후 이공계 외의 학부로 진학해도 별다른 제재 수단이 없는 곳이 대부분이다. 이공계 의무진학 등의 강제 규정이 아예 없고 이를 지키기 않을 경우 투입 세금을 환수한다는 규정도 없다. 국민 혈세로 운영되는 과학고가 학생 개인의 진학 수단으로 악용되어도 속수무책인 셈이다.

이런 가운데 한 과학영재학교는 의학계열 대학 진학 시 고교 졸업 자체를 취소하는 강력한 조치로 몇 년 전 부터 의학계열 진학자가 단 한 명도 나오지 않고 있다. 교육부와 시 교육청이 대학 입시의 수단으로 과학고가 운영되지 않도록 실효성 있는 정책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1970~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고교 수석 졸업생들이 앞 다투어 대학 이공계를 지원했다. 전자공학과, 물리학과, 기계공학과, 화학공학과 등 주요 이공계 학과들이 의대 입학 커트라인을 상회한 적이 많았다. 당시 이공계에 진학했던 고교 최우등 졸업생들이 현재 세계 1위의 반도체, 휴대폰, TV 신화를 일궈낸 주역들이다.

그러나 1997년 IMF 외환위기를 계기로 이공계 졸업생들의 직업 안정성이 흔들리면서  의사 면허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국민 혈세가 투입되는 과학고 졸업생들도 의대로 몰려가는 것은 그만큼 이공계의 미래 전망이 어둡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1970년대 고교 수석 졸업생으로 이공계를 선택한 아버지가 자녀에게는 의대 진학을 권유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국민들의 피로감이 높아지고 있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 마스크 착용, 거리두기 실천율이 높지만, 이 어렵고 힘든 상황을 바꿀 ‘게임 체인저’인 백신 접종은 늦어지고 있다. 백신 조기 도입을 둘러싸고 아스트라제네카, 화이자, 모더나, 얀센 등 외국 제약사와의 줄다리기가 계속되면서 “왜 우리나라는 백신을 일찍 만들지 못할까?”라는 아쉬움이 커지고 있다.

정부가 코로나19 백신을 개발 중인 국내 업체 6곳에 대해 각종 지원방안을 강구하고 있지만, 국민들의 기대치와는 거리가 먼 게 현실이다. 그동안 국내의 일부 제약사들은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복제약 제조에만 눈독을 들인 경우가 많았다. 막대한 비용과 리스크가 수반되는 신약개발을 주저하고 연구인력 양성에도 소홀한 측면이 있다.

신약개발 인력 가운데 의사의 역할도 막중하다. 임상의사는 기초과학과 임상시험을 연계하는 중개연구를 통해 치료제 개발에 크게 기여한다. 실제로 폐암 등의 신약개발에 의사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기초과학 전공자에 의학전문대학원 문호를 개방한 것은 유능한 의과학자 양성이 주요 목적이었다. 하지만 졸업 후 과학자보다는 진료의사를 선택한 졸업생이 더 많아 실패한 정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국민 세금의 수혜를 받은 과학고 출신들도 의대 진학 후 의과학자보다는 진료 분야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나라가 코로나19 백신, 암 신약 개발에서 성과를 올리기 위해서는 뛰어난 의과학자가 많아야 한다. 미래의 의과학자를 양성하는 일도 중요하다. 의학전문대학원, 과학고 졸업생들이 선발대 역할을 자임해야 한다. 국민의 세금으로 역량을 키운 이들도 상당수다. 그런데 맨 앞에 서야 할 의학전문대학원, 과학고 졸업생들이 뒤로 빠져 샛길로 가고 있다. 이들이 과학자의 길을 외면하고 진료 쪽으로 빠져나가는 이유를 구태여 언급하고 싶진 않다. 요즘 국민들에게 질타를 받는 일부 의사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다.

이공계 위기, 한국 과학의 위기를 전공자들이 스스로 초래하고 있다. 누구보다도 이런 위기를 돌파해야 할 젊은 인재들이 현실과 쉽게 타협하고 있다. 과학고 졸업생들이 입학 당시에 품었던 취지만 잊지 않는다면 이공계 위기를 넘어 한국 과학을 살릴 수 있다. 과거 이공계 선배들은 일본의 소니, 도시바 전자제품을 뜯어 고치며 지금의 세계 1위 신화를 만들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밤을 새며 연구에 몰두한 이공계 선배들 덕분에 대한민국의 자부심이 올라갔다.

이런 엄중한 상황을 정부, 의학전문대학원 그리고 과학고 고위 관계자들의 두 손 놓고 있는 형국이다. ‘과학 홍보’를 한다는 공공기관을 만들어 막대한 세금만 쓰고 있다. 과학고 졸업생들의 의대 진학을 강제적으로 막을 수 없다면 의과학 분야로 진출할 수 있는 디딤돌을 마련해 주는 방안도 필요하다. 진료의사 못지않은 급여와 직업 안정성을 보장해야 한다. 줄줄 새는 세금만 아껴도 당장 지원가능한 분야가 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같은 신종 감염병이 또 다시 출현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시기도 빨라지고 있다. 메르스가 발생한지 불과 5년 만에 코로나19가 퍼졌다. 이미 돈 벌기 쉬운 복제약 제조에만 길들여진 제약사만 쥐어짜선 코로나19 백신이 일찍 나올 수 없는 구조다. 우수한 의과학자를 양성하기 위한 다양한 지원책을 서둘러야 한다. 코로나 백신의 위기, 아니 한국 과학의 위기는 정부, 민간기업, 과학고 관계자들의 무관심에서 출발한 측면도 있다. 지금도 지속되는 의대 진학 열풍은 미래가 암울한 한국 과학의 현주소를 보여주고 있다.

김용 기자 ecok@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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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 댓글
  1. monttei

    좋은 글입니다 돈과 보장성이 연결된 직업선택이니 불 보듯 뻔한 결론인데 정책입안자들이 태무심하고 도리어 자기자녀들의 안위를 위해 정책을 악용하는 지도층이 많아서 더 힘듭니다
    부디 지금이라도 다시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주시기 바랍니다

  2. KHC

    공감이 되는 좋은 글입니다.
    건강한 사회는 다양한 가치가 공존해야 하는데,
    아쉬울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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