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1등은 어디로? 피부과 vs 외과

[김용의 헬스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의과대학 수석 졸업생들이 외과, 내과, 산부인과, 소아과로 몰려가던 시절이 있었다.  피부과로 갔다가 어려운 과정을 거쳐 다시 외과, 내과로 들어온 사례도 있었다. 이들 과에서 선택받은 전공의들은 자부심이 넘쳐났다. 진료과 이름 앞 글자를 따서 내-외-산-소는 메이저(major)로 불린다. 환자의 생명을 살리고 중병을 치료하는 필수의료의 중심이라는 자부심에 “우리는 의사의 메이저”라며 사기가 하늘을 찔렀다. 1960-70년대는 이들 과 졸업생들이 개원하면 돈도 많이 벌었다. 조그만 동네병원에서 출발해 거대 종합병원, 대학병원을 일군 의사들 가운데 산부인과, 내과, 외과 출신들이 많다.

최우수 의대 졸업생들이 모여들던  내-외-산-소가 기피과가 된지 오래다. 매년 전공의 모집 때만 되면 미달이 속출한다. 거대병원들도 내외산소 의사 수가 모자라 응급상황을 걱정할 처지다. 의사 부족, 중증 질환 기피, 낮은 의료수가 등으로 휘청대던 내외산소가 코로나19까지 터지면서 뿌리마저 흔들리고 있다. 매년 전공의 지원율이 뚝 떨어지면서 야간 응급진료에 나설 소아과 의사가 사라지고 있다. 우리 아이가 아파도 진료할 의사가 없다. 중소 도시에는 산부인과 병원이 없어 분만을 앞둔 임신부들은 대도시에서 하숙을 한다는 얘기가 이제 낯설지 않다.

여성의 사회활동 등의 영향으로 연령이 높은 임신부들이 갈수록 늘고 있는데, 고위험 산모 진료는 부실해지고 있다. 분만 사고로 인한 의료소송이 매년 증가하고 분만 의료 수준을 나타내는 모성사망비는 OECD 회원 36개국 중 24위로 처졌다. 의료강국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외과는 만성적인 의사 부족으로 수술을 미루는 경우가 늘고 있다. 현재 50대 외과 의사들이 대거 은퇴하는 10년 후에는 전국에 걸쳐 ‘수술 대란’이 올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도 나오고 있다.

반면에 피안정(피부과, 안과, 정형외과), 정재영(정신과, 재활의학과, 영상의학과)은 매년 전공의 지원자가 넘쳐난다. 우수 의대 졸업생들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인기과의 위상을 굳혔다. 평생 외과수술 의사로 살아온 70대 의대 수석졸업자의 전설 같은 ‘수술방 이야기’가 가슴에 와 닿지 않는 시대가 됐다. 시간과 노력 대비 보수와 미래가치를 따져 진료과를 선택하는 게 현실이다. 현실을 좇아 필수의료를 외면하는 의사에게만 곱지 않은 시선을 주는 것은 온당치 않은 것 같다.

의사의 노동 가치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곳이 바로 필수의료 분야다. 시간과 노력은 2~3배 더 드는데 다른 과에 비해 보수는 떨어지고 미래도 불투명하다. 의료사고 위험도 높아 삶의 질을 위협한다. 이들이 벌어주는 수익이 다른 과보다 적다보니 종합-대학병원조차 필수의료 의사를 줄이고 있다. 개인 병원을 차리면 적자볼 게 뻔한 데 봉직의(월급 의사) 자리도 없어지고 있다. 결국 필수의료 의사가 감소할 수밖에 없는 악순환이 이어지는 것이다. 그나마 남은 외과의사도 전환교육을 받고 성형외과 등으로 빠져나가는 경우가 있다. 성형외과가 늘어나 경쟁이 격화되자 전문과목, 진료과목 구별법까지 생기면서 의사들끼리 ‘가짜 의사’ 논란을 벌이고 있다.

필수의료 대란이 눈앞의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의사가 없어 수술을 못 하는 사태를 막으려면 국가차원의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 국회의 협조도 필수적이다. 국민의 생명을 다루는 필수의료에 대한 정치권 차원의 강력한 지원책이 선행되어야 한다. 의대 정원을 늘려도 필수의료 기피 현상이 해소되지 않으면 외과 의사 부족 문제는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의료보험 보장 확대만 외칠 게 아니라 필수의료의 의료수가를 뜯어고쳐 국민들이 편안하게 진료를 받도록 해야 한다. 병원에 수술 의사가 없어 이곳 저곳을 헤매다 차 안에서 사망하는 사례는 막아야 한다.

외과, 흉부외과, 내과, 산부인과 등 의료분쟁의 위험이 높은 분야에서 더 힘들게 일하는 ‘메이저 의사’의 노동가치를 올려줘야 한다. 지방 의사 부족을 해결하는 방안도 의료수가 조정에서 출발한다. 일 자체가 어렵고 가슴조리며 일하는 의사들에게 인센티브를 부여하지 않고서는 의료발전을 기대할 순 없다.

의료수가를 인상하고 특정 진료과에 혜택을 주는 일은 복잡하고 어려운 퍼즐 풀기나 다름없다. 건강보험료 인상을 불러오면 선거철 표 떨어지는 소리에 주저할 수 있다. 분만사고 등 의사의 무과실 의료사고에 대한 배상은 국가가 지원하는 방안도 본격 검토할 때다.

메디컬드라마에서 어려운 심장수술을 해 내는 흉부외과 의사는 현실에선 ‘영웅’이 아니다. 의료분쟁 우려에 밤잠을 설치고 불투명한 미래에 고민한다. 암 환자는 갈수록 늘어나는데 수술할 의사가 사라지고 있다. 필수의료 의사 부족 문제는 이제 ‘위험 신호’ 수준을 지났다. 의과대학 1등이 다시 앞 다투어 필수의료를 지망해야 국내 의료, 아니 대한민국 미래가 살아난다.

    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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