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기 환자의 존엄사.. 죽음을 말하자 [김용의 헬스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회생 가능성이 없는 말기 환자라도 ‘죽음’은 여전히 금기의 영역이다. 환자를 간병하다 지친 가족들도 막상 죽음을 얘기하면 뒤로 빠진다. 실낱같은 기대로 검증되지 않은 약재를 찾거나 대체의학에 기대기도 한다. 끝내 온몸에 기계장치를 달고 간신히 생명만 연장하는 연명의료로 이어진다. 병실 안의 모습에선 ‘인간의 존엄성’ ‘품위 있는 죽음’을 떠올리기가 쉽지 않다.

우리 사회에서 ‘연명의료’라는 단어는 이제 낯설지 않다. 2018년 2월부터 연명의료결정법(존엄사법)이 시행되면서 연명의료의 중단, 거부를 언급하는 경우가 많다. 이 법은 심폐소생술,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등 치료효과 없이 임종 과정만 연장하는 의학적 시술을 법적으로 중단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통증 완화를 위한 의료행위와 영양분, 물, 산소의 단순 공급은 중단할 수 없다.

의사소통이 가능한 환자가 자신의 연명의료 중단을 결정하면 가족들의 심리적 고통을 덜 수 있다. 젊고 건강한 사람도 사전연명의료의향서(사전의향서)를 미리 작성해 둘 수 있다. 먼 훗날 임종 과정에서 소생 가능성이 없을 경우 무의미한 연명 치료는 받지 않겠다고 서약한 것이다. 사전의향서 작성자는 지난 1월 80만 명을 넘었다. 60세 이상 작성자가 다수를 차지했지만, 50대 7만여 명, 40대도 3만여 명에 이른다.

연명의료결정법을 계기로 우리 사회에서 죽음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치매 환자, 적극적 존엄사 논의도 점진적으로 시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연명의료 중단에만 초점을 맞춘 현재의 존엄사 논의에 머물지 않고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내에선 여전히 민감한 주제이지만 환자 본인이 원하는 죽음의 형태를 어디까지, 어떻게 보장할 수 있는지 논의해 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대만은 2000년 아시아 국가 최초로 말기 환자가 연명치료를 거부할 수 있는 존엄사법을 제정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심각한 치매나 불치병’ ‘회복 불가능한 혼수상태’ 환자에게도 존엄사를 허용했다. 이는 가족들이 동의하고, 의료진이 회복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한 경우에 한정한다. 네덜란드·벨기에 등 일부 국가는 적극적 존엄사에 해당하는 안락사도 20년 전부터 허용하고 있다.

무의미하게 생명만 연장하는 연명의료는 간병에 지친 가족들에게 막대한 경제적 부담도 지우고 있다. 말기 환자는 가족들의 미래를 걱정하며 연명의료 거부를 고민하지만, 그들은 순식간에 사경을 헤매는 경우가 많다. 연명의료 거부를 서약하기 전에 혼수상태에 빠지면 가족들이 환자의 죽음을 판단해야 한다. 모두 극심한 심리적 고통을 겪으며 가족 간 다툼도 있을 수 있다.

사전의향서는 환자가 의사표현을 할 수 없을 때 혼란과 갈등이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한 방법이다. 건강할 때 사전의향서를 작성해 놓으면 가족들의 고민과 갈등을 최소화하면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지킬 수 있다. 사전의향서 작성은 혼자서 한 번의 판단으로 할 게 아니라 가족들까지 참여시켜 여러 차례 논의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사전의향서에 서명한 후에도 상황이 변하면 언제든지 폐기할 수 있다.

말기 암 환자는 암을 늦게 발견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증상을 느껴 병원을 찾았다가 말기 진단을 받고 힘든 항암치료 끝에 병원에서 사망한다. 갑자기 입원하느라 스스로 집의 사물을 정리하지 못한 경우도 많다. 환자들은 정든 집에서 여생을 마무리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말기 환자의 80% 정도가 낯선 병원에서 생을 마무리한다. 죽음에 대한 준비가 부실했던 탓이다.

이제 우리 모두 건강할 때 죽음을 말해야 한다. 사랑하는 가족들과도 스스럼없이 얘기해야 한다. 더 이상 죽음이 금기의 영역일 순 없다. 부모의 죽음을 말하는 게 불경인 시대는 지났다. 여행을 떠나더라도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한다. 그런데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가족과 작별하면서 아무런 준비 없이 황망하게 떠나는 사람이 너무 많다.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죽음에 대한 인식이 달라질 때이다.

    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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