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백신 이전투구는 왜 위험한가?

[Dr 곽경훈의 세상보기]

키가 크고 마른 체형의 투수는 글러브를 가슴에 모으고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표정으로 포수와 타자를 응시했다. 팽팽한 긴장이 공기를 짓눌러 모든 관중이 숨을 죽이고 투수와 타자를 지켜봤다. 그도 그럴 것이 투 아웃을 잡은 후, 큼지막한 2루타를 얻어맞고 볼넷까지 내주어 주자 1, 2루의 위기에 몰렸기 때문이다. 경기는 중반이라 여기서 안타가 나오면 승부가 기울 가능성도 컸다.

그러나 갑자기 투수가 1루에 견제구를 던지면서 타자뿐만 아니라 관중도 맥이 풀렸다. 그런 다음에도 투수는 바로 승부에 나서지 않았다. 모자를 고쳐 쓰고 상의에 손의 땀을 닦고 포수와 한참 사인을 주고받더니 이번에는 2루에 견제구를 뿌렸다. 타자는 표정을 찌푸렸고 관중은 야유했으나 투수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리고는 다시 모자를 고쳐 쓰고 스파이크의 흙을 털어내더니 갑작스레 심판에게 ‘타임’을 요청했다. 타자는 짜증스럽다는 듯 타석에서 벗어나 두어 번 방망이를 휘둘렀고 관중의 야유는 중계방송에 나올 만큼 커졌다.

그러다가 드디어 투수가 공을 던졌다. 타자는 힘껏 휘둘렀으나 공은 뒤 그물로 날아갔다. 파울이다. 그런데 다시 공을 던지기 전에 투수는 앞선 모든 과정을 반복했다. 한 번의 투구에 1시간이 걸리는 것처럼 느껴졌고 집중력이 흐트러진 타자는 힘없는 내야플라이로 물러났다.

요즘 야구팬은 이런 투수가 있었다고 믿지 않겠지만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삼성의 주축 투수였던 성준은 실제로 위 상황처럼 투구했다. 그것이 제구력은 좋지만 변화구도 화려하지 않고 빨라야 130km 중반의 직구뿐인 투수가 97승을 거두고 통산 방어율 3.32를 기록한 비결이다.

다만 특유의 투구방식 때문에 성준이 등판하면 경기 시간이 길고 지루했다. 몇몇 해설가는 아예 ‘엘니뇨 투수’라 불렀다. 그래도 삼성 팬은 ‘영리하게 상대를 제압하는 컴퓨터 투수’라고 좋아했지만 나머지 대부분은 ‘야구를 재미없게 만드는 이상한 투수’라고 싫어했다. 그래서 삼성 팬과 다른 팀 팬이 섞인 술자리에서 종종 논쟁이 벌어졌다. 그런 논쟁은 길어지면 논리가 사라지고 억지가 난무했다. 때로는 감정이 상해 주먹다짐 직전까지 치달았으나 그것도 ‘스포츠의 재미’에 해당했다.

그러나 그런 논쟁이 스포츠를 벗어나면 심각한 문제를 만든다. 정치의 영역에 들어서면 더욱 그렇다. 삼성 팬이 성준의 투구방식을 너무 이상화하고 다른 팀 팬은 그 투구방식을 지나치게 비난하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지만 정치 성향에 따라 객관적인 사실을 지나치게 주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위험하다.

코로나19 방역과 백신을 둘러싼 갑론을박이 좋은 사례다. 정부를 지지하는 쪽과 비난하는 쪽 모두 객관적인 사실을 지나치게 주관적으로 해석하여 주장을 펼친다.

한쪽은 정부가 우선 접종하려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불신하고 화이자-모더나의 mRNA 백신을 찬양한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싸구려 엉터리’라 비난하면서 ‘지금 당장 mRNA 백신을 접종하라!’고 외친다. 다른 한쪽은 정부가 가장 먼저 확보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이상화하는 행태를 보이다가, 다른 나라에서 mRNA 백신을 접종하기 시작하자 ‘불완전한 백신으로 국민을 생체 실험할 수 없다’고 주장하며 ‘백신이 대유행을 끝내는 가장 좋은 수단’이란 사실조차 부정하기까지 했다.

심지어 정치인과 관료처럼 책임 있는 자리에 있거나 나름대로 전문가를 자처하는 사람조차 그런 대열에 동참한다. 그들은 서로 ‘비과학적이고 감정적인 선동가’라 비난하지만, 따지고 보면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욕하는 것에 불과해 보인다.

물론 정치과잉에 빠져 맹목적으로 물고 뜯는 일은 예전에도 잦았다. 그러나 코로나19 방역과 백신을 둘러싼 갑론을박이 위험한 이유는 그런 선동과 비난이 지나간 자리에 ‘백신반대론’이란 독버섯이 자라기 때문이다.

백신반대론은 한 번 뿌리내리면 좀처럼 사라지지 않아 코로나19뿐만 아니라 앞으로 다가올 다른 전염병 유행에도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 자신의 정치성향에 맞추어 함부로 객관적인 사실을 왜곡하기 전에 한 번이라도 그 결과를 진지하게 생각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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