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와 ‘뇌피셜’ 전문가

[Dr 곽경훈의 세상보기]

1941년 여름 동프로이센의 울창한 숲에 거대한 요새가 들어섰다. ‘늑대굴(Wolfschanze)’이란 이름의 그 요새는 1944년 말까지 멋진 군복에 화려한 훈장을 단 군인들로 붐볐다. 다만 1941년만 해도 세계정복이 눈앞에 다다른 듯, 온갖 활력으로 뜨겁던 요새는 시간이 지날수록 차갑고 우울하며 을씨년스러운 공간으로 변했다. 멋진 군복과 화려한 훈장은 여전했지만 군인들의 표정은 점차 어두워졌다.

그러나 짧은 콧수염과 단정한 가르마가 인상적인 ‘작은 사내’의 열정은 여전했다. 창백한 안색에 가끔 식은땀도 뻘뻘 흘렸으나 지치지 않고 광기에 가까운 활력을 뿜어냈다. 하지만 ‘작은 사내’의 열정과 활력이 강할수록 ‘원수’, ‘대장’, ‘참모장’이라 불리는 군인들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작은 사내’가 틈만 나면 ‘1차 대전 당시에는’, ‘나의 경험으로 판단하면’ 같은 문구로 말을 시작하면서 군인들의 조언을 무시했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군인들은 ‘작은 사내’가 없는 곳에서 ‘사병 따위가’ 혹은 ‘하사 출신이’란 문구로 시작하는 불만을 토로했다.

다들 알아차렸겠지만, ‘작은 사내’는 2차 대전을 일으킨 아돌프 히틀러이며 ‘늑대굴’은 1941년 여름부터 1944년 말까지 히틀러가 사용한 지휘본부다.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지만 정치 감각이 뛰어나고 대중의 눈높이에서 쉬운 단어로 선동하는 재주가 탁월했던 히틀러는 1차 대전 당시 사병으로 참전했다. 전령으로 대부분을 최전선에서 보낸 히틀러는 대단히 용감해서 사병으로는 이례적으로 1급 철십자 훈장과 2급 철십자 훈장을 모두 받았다.

하지만 히틀러가 ‘훌륭한 병사’로 1차 대전에서 쌓은 경험은 2차 대전 중반 이후 나치 독일을 파멸로 이끌었다. 우수한 독일 장군들이 작전을 건의해도 히틀러는 ‘나의 경험으로 판단하면’, ‘1차 대전 당시에는’ 같은 표현과 함께 자신의 주장을 고집했기 때문이다. ‘훌륭한 병사’와 ‘우수한 지휘관’은 다를 수밖에 없음에도 히틀러는 그 둘을 구분하지 못해서 장군들의 합리적 의견을 묵살하고 극히 제한된 경험에 근거한 자신의 주장을 밀어붙였다.

이런 사례는 우리의 일상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역사, 경제, 안보, 의료 등 다양한 분야에서 진짜 전문가가 보기에는 얕은 식견을 갖춘 ‘탤런트 지식인’들이 지식의 대가인양 대중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을 맞이해서 적지 않은 사람이 ‘병원에서 일한 경험에 따르면 ‘, ‘다양한 환자를 진료한 것을 바탕으로’, ‘의료관리학을 전공한 입장에서 살펴보면’ 같은 문구를 시작으로 자신이 잘 알지 못하는 부분도 아주 쉽게 단정하고 복잡하고 애매한 문제에 지나치게 명확한 판단을 제시한다. 그들을 보면 독일 장군들도 심사숙고할 수밖에 없는 군사적 난제에 명확하나 어리석은 해결책을 제시하는 히틀러가 떠오른다. 그러니 백신, 치료제, 방역, 병상확보 같은 문제를 말하기에 앞서 혹시 나의 편협한 경험에 근거한 판단, 시쳇말로 ‘뇌피셜’을 주장하는 것이 아닌지 스스로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런 사람들이 전문가인양 여론에 영향을 끼치려고 하고, 심지어 정부 자문을 독점하기까지 한다면 그 피해는 국민 모두에게 갈 수밖에 없다. 정부의 책임자들은 스스로 ‘뇌피셜 전문가’가 되는 것을 경계해야 할뿐 아니라, 설령 듣기 싫은 내용이더라도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진짜 전문가’들을 찾아서 그들의 지식에 귀기울여야 할 것이다.

진짜 전문가들의 낮고 올곧은 목소리가 ‘뇌피셜 전문가’의 크고 명쾌한 목소리를 이겨낼 수 있는 사회, 그것이 20세기 전반 히틀러의 나치즘과 광기의 독일 사회를 경고했던 에리히 프롬이 꿈꿨던 ‘건전한 사회(Sane Society)’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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