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과의 전쟁 산증인 ‘감염질환 국민의사’

[대한민국 베닥] ㉛감염병 분야 고려대구로병원 김우주 교수

고려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김우주(61) 교수는 코로나19 위기인 요즘 하루 15~20 차례 기자들의 전화 취재에 응한다. 기자들이 불쑥 찾아오기도 한다. 언론에서 김 교수를 찾는 것은 쉽고 정확하게 사실을 알려주기 때문. 김 교수는 언론이 제대로 보도해야 팬데믹 극복에 도움이 된다고 믿기에 아무리 피곤해도 성실히 취재에 응한다.

김 교수가 감염병에 대해서 맥락을 짚어 현황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은 그가 30년 동안 감염병 분야를 연구하면서 정부 공무원으로서 방역 시스템을 구축했고, 학자로서 위기의 순간마다 정부의 방역을 도와왔으며, 수많은 방역 전문가들을 양성한, 대한민국 ‘팬데믹 대비와 대처의 산증인’이기 때문이다. 그는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MERS)의 종식과 함께 방역 현장을 떠나며 “환자 진료와 후학 양성에만 전념하겠다”고 다짐했지만, 코로나19의 파고가 그를 진료실에 머물지 못하게 했다.

김 교수는 지금까지 방역 임무를 맡을 때마다 기존 시스템 미비에 충격을 받으면서 불모지에서 유(有)를 창조해야만 했다. 팬데믹의 위험을 경고할 때 ‘양치기 의사’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고, 타미플루 비축을 주장할 때에는 제약회사 로비를 받았다는 음해까지 받았다. 당시 타미플루는 지금의 백신처럼 구하기도 어려웠지만, 비난에는 인정사정이 없었다. 메르스 때에는 뒤늦게 대응팀장을 맡아서 최단기일 내에 유행을 종식시켰지만, ‘실패한 방역의 책임자’라며 온갖 비난을 받았고, 협박을 당하기까지 했다. 병원으로 돌아와서 2년 남짓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로 신음하기도 했지만, 코로나19 위기에 혼자 편안히 있을 수는 없었다.

그는 매주 사흘 외래환자 진료를 보면서 수시로 취재에 응하며 1월부터 매주 2, 3차례 고려대의료원에서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1시간가량 코로나19 현황에 대해 알려주고 일반인들의 궁금증을 풀어주고 있다. 이를 위해 틈만 나면 국내외 뉴스와 연구논문을 검토하고, 잠을 잊고 발표 자료를 정리한다. 화상으로 제자들을 가르치거나 학회 세미나 강의를 하면서 약물 재창출과 백신 임상시험과 관련한 미팅을 하기 때문에 잠자리에 들 때에는 녹초가 될 수밖에 없다.

김 교수의 옛 친구들은 현재 그의 적극적 삶에 놀란다. 그는 초등학교 때 숫기가 없어서 늘 입을 다물고 있던 아이었다. 초등학교 때 어린이회장을 맡았지만, 앞서서 말할 자신이 없어 부회장에 모든 것을 맡길 정도였다. 서울로 전학 와서는 촌놈이라고 놀림 받으면서도 대꾸도 못하고 교실 구석에 입을 꾹 다물고 지냈다. 청소년기에는 책과 신문이 친구였다. 고교 때에는 남산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남대문을 거쳐 중앙일보, 신아일보, 조선일보, 동아일보 앞의 게시판에 있는 신문을 읽은 것이 낙이었다.

김 교수는 어머니의 바람과 스코틀랜드의 의사 겸 소설가인 아치볼드 조셉 크로닌의 영향을 받아 의사의 길을 가게 됐다. 그는 고려대 구로병원 내과에서 전공의를 마치고 군의관으로 복무하다가 삶의 전환점을 맞았다.

김 교수는 수도통합병원에서 위장내과 담당으로 근무하다가 새로 부임한 상관에게 자신의 전공을 빼앗기고 호흡기전염병을 맡게 됐다. 고려대 구로병원에서 서동진, 이창홍 교수 등 당시 내로라하는 대가들 아래에서 간질환을 전공했기에 호흡기전염병은 1, 2년만 하고 끝날 줄 알았다. 어느 날 의무사령부로부터 “군진의학 자문관이 필요하니 전염병 권위자를 모셔와라”는 지시를 받고 곧바로 지금은 고인이 된 박승철 교수에게 달려갔다. 박 교수는 독립지사 박명렬 선생의 장남으로 서울대 의대를 졸업, 한양대 교수를 거쳐 고려대 의대에서 이름을 떨치던, 국내 감염내과 최고 대가였다. 박학한 지식과 달변으로 유명했던 전설적 의사는 ‘김 대위’의 군 자문관 요청에 흔쾌히 응했다.

“그런데, 자네 세부 전공이 무엇인가?”
“소화기내과에서 간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혹시 아시는가? 간염은 감염이라는 것을.”

이 대화가 ‘감염병 국민의사’의 길로 가는 문이 돼 버렸다. 김 교수는 “2년만 하고 돌아가야지”하고 감염의 세계로 들어갔다가 30년 동안 이 분야에서 매일같이 전쟁을 치르고 있다. 김 교수는 군대 제대 후 변관수 교수와 함께 녹십자 목암연구소에서 유전자증푹기술(PCR)을 배워와 병원1층 구석에 분자생물학 실험실을 만들고 진료와 연구 두 가지에 매달렸다. 그는 연구의 기본기를 익히고 조교수 때인 1996년 ‘해리슨 내과학’의 감염병 파트 저자인, 미국 시카고 러시대학병원의 로버트 와인슈타인 교수의 문하로 가서 병원 감염과 항생제 내성에 대해 ‘내공’을 닦고 돌아왔다.

김 교수는 1998~99년 ‘슈퍼 박테리아’ 반코마이신 내성 장구균(VRE)이 전국 병원 환자들 사이에 평균 2% 존재하고, 시장의 닭에도 있다는 사실을 밝혀내며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때 스승 박 교수가 세균감염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던 제자를 불렀다.

“이제부터 바이러스를 전공해야겠네.”
“미국 가서 2년 동안 세균 배워왔는데….”
“국립보건원에서 호흡기바이러스과 과장을 민간개방형으로 공모하는데, 자네가 맡아줘야겠네.”
“…”

당시 1997년에는 홍콩에서 조류 인플루엔자가 발생했고, 시드니독감이 유행해서 세계보건기구(WHO)가 “팬데믹에 대히해야 한다“고 경고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를 대비할 시스템이 전무했다. 김대중 정부가 이를 준비한다는 소식에, 스승은 동기인 이준상 국립보건원장에게 “감염질환을 잘 아는 의사가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 원장이 흔쾌히 응하자 수제자를 추천한 것. 주위에서는 두 군데에서 월급을 받으니까 좋겠다고 부러워했지만, 국립보건원에서는 급여가 나오지 않는 ‘봉사 공무원’이었다.

김 교수는 제자인 이진수 공중보건의(현 인하대 교수)를 역학조사관으로 불러, 구로동의 진료실과 녹번동의 사무실을 오가며 독감 감시 시스템을 구축했다. 2000년 홍역이 휘몰아치자 기존 팀에 나병국 현 경상대 교수를 합류시켜 국내 처음으로 홍역 바이러스를 분리했다. 이들은 유전자 염기서열을 분석해서 국내 유행한 홍역이 3, 4년 전 중국 산둥성에서 유행했던 바이러스와 같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임상생물학저널》에 발표했다. ‘김 과장’은 당시 인도 혈청연구소(SII)의 홍역, 풍진 백신을 구입, 초등~고교1학년 500만 명에게 일제 접종해서 홍역을 가라앉혔다.

김 교수는 2001년 녹번동 생활을 청산하고 교수직에 전념키로 하는 대신, 국립의료원 방역 자문을 맡았다. 2003년 충북 음성군에서 조류독감(AI)이 발병하자 농림수산부의 자문까지 떠안게 돼 수시로 새벽에 일어나서 조찬 모임에 참석하고 병원에 출근해야 했다.

김 교수는 노무현 정부가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출범시키며 국가재난 단계별 액션플랜을 만들 때 방역 부문에 대해 자문했다. 2003년 사스(SARS) 때에는 자문의원으로서 정부의 성공적 대처에 기여했고, 2006년 갓 출범한 질병관리본부에서 천병철, 정희진 교수 등과 국가 신종 인플루엔자 대비 계획을 세웠다.

그는 또 2008년 정부에 건의해서 타미플루 240만 명 분량을 비축케 했고, 녹십자가 독감 백신을 개발할 때 임상시험을 총괄해서 이듬해 이명박 정부 때 신종플루가 닥치자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기여했다. 병원에서 환자 보랴, 정부 자문 응하랴, 신문 방송의 취재에 응하랴 몸이 열 개라도 모자라는 듯했다. 기침 에티켓과 손 씻기 공익광고에도 나와서 연세대 의대 김준명 교수는 만날 때마다 “땡김 뉴스 오셨다”고 놀리기까지 했다.

“당시에 백신이 없어서 지금처럼 외국에 구걸하다시피 했습니다. 다행히 녹십자가 백신을 조기 생산해서 신종 플루를 잡을 수 있었지만, 나중에 녹십자는 남은 백신 값을 변상해 막대한 손해를 봐야 했고, 담당 공무원은 백신을 많이 확보했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았습니다. 이러니 누가 책임지고 백신을 확보하려고 하겠습니까?”

김 교수는 2011년 ‘신종플루 범부처 사업단’을 맡아서 6년 동안 백신과 치료제 개발 사업을 주도했다. 사업단에서는 SK케미칼(현재 사업부문이 독립돼 SK바이오사이언스)의 세포 배양 백신 개발을 지원했으며, 이 회사는 당시 쌓은 역량으로 아스트라제네카와 코로나19 백신 위탁계약을 체결, 현재 국민에게 실낱같은 희망을 주고 있다.

김 교수는 2013년 대한감염학회 이사장을 맡았고 이듬해 세계가 에볼라로 공포에 휩싸였을 때 대한의사협회 신종 감염병 TFT 팀장으로도 활약했다. 그는 에볼라 의료지원 사업단을 이끌고 아프리카에서 의료봉사활동을 펼쳤던 제자 이재갑 한림대 의대 교수와 함께 청와대 만찬에 초대됐는데, 그 시각 메르스 1번 환자가 평택성모병원에서 바이러스를 퍼뜨리고 있었다.

청와대 만찬 열흘 뒤 보건복지부 공무원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이사장님, 큰일 났습니다. 청사로 와줘야겠습니다.” 김 교수는 KTX를 타고 세종시로 내려가면서 착잡한 가슴을 달래야 했다. 얼마 전 질병관리본부 세미나에서 “우리나라에도 메르스가 들어올 수 있다”고 경고했는데, 그게 현실이 되다니…. 보건복지부 장관은 대응 팀의 공동팀장 겸 총리특보를 맡아 줄 것을 요청했다.

김 교수는 평택에서 근무하고 있던 정은경 역학조사관을 즉시 본부로 복귀시키도록 했고, 엄중식, 이재갑 교수 등 18명의 의료진으로 대응 팀을 구성했으며 9개 학회에게 협조를 요청했다. 병원마다 돌아다니며 “원장님, 죄송하지만 폐쇄합시다.”고 간곡히 요청했고, 복지부에는 병원 피해액에 대한 보상을 약속받았다. 아직 제대로 지급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나중에 알고 속이 상하지만….

당시 부총리는 “돈이 얼마 들어도 좋으니 전폭 지원할 테니 하루라도 빨리 끝내 달라”고 부탁했고, 대응 팀은 일부 언론과 의사들의 비난 속에서도 “2개월 안에 잡겠다”는 약속을 지켰다. 김 교수는 “당시 총리와 부총리, 장관에게 대응책을 얘기하면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즉시 실행했기 때문에 그나마 확산을 막을 수가 있었다”고 말한다.

김 교수는 다시 병원으로 돌아갔지만 2016년 신종플루 사업단이 해체되는 아픔을 겪었다. 그는 “6년 동안 축적된 산-학-관 연구자 네트워크와 지식, 기술이 사라지면 안 된다”면서 “예산을 대폭 깎더라도 유지시켜 달라”고 애원했지만, 정부는 전임 이명박 정부의 사업단을 유지시키지 않았다.

그는 초야의 학자이자 진료실의 의사로 살려고 마음먹었지만, 코로나19 팬데믹 국란에 김대중 정부 때부터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까지 쌓인 방역 현장의 경험과 감염내과 의사로서의 축적된 지식을 내버려둘 수 없기에 어떤 식으로든 기여하려고 마음먹었다.

김 교수는 정부에 줄곧 중장기 전략을 세울 것을 촉구했고, 4월 재난지원금을 나눠줄 때 10만원씩 떼어내 백신을 확보하자고 제안했다. 2차 유행 뒤에는 검사를 적극적으로 시행해서 무증상 환자를 찾아내 지역 확산을 막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겨울의 대유행을 경고하고 충분한 병상과 의료 인력을 준비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지금은 사회적 거리두기를 3단계로 올리고, 체육관 또는 국제전시장을 코로나19 병원으로 개조하여 집에서 대기 중인 환자를 모두 수용하는 조치를 동시에 시행해 의료붕괴를 막아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김 교수는 자신의 제안에 귀를 막고 있는 정부를 원망하는 대신, 조금이라도 방역에 기여하기 위해 언론과 일반인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느라 밤잠을 못자고 있다.

“정부의 코로나19 방역대책과 대응에만 기댈 수 없으니 국민 각자가 ‘방역망의 그물코’라고 여기고 예방수칙을 철저히 준수해야 합니다. 3밀(밀폐, 밀집, 밀접)의 모임 피하기, 2m 거리 두기, 거리 두기가 불가능할 땐 꼭 마스크 착용하기, 손 씻기, 환기, 환경 소독 등을 일상에서 실천해서 자신과 가족, 친구, 직장 동료를 보호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예방 수칙을 지키면 십시일반으로 가족, 사회, 나아가 국가가 코로나19로부터 안전해집니다. 백신을 접종할 수 있을 때까지 힘들게 버텨야만 하는 현실이 안타깝지만….”

대한민국 베닥은 의사–환자 매치메이킹 앱 ‘베닥(BeDoc)’에서 각 분야 1위로 선정된 베스트닥터의 삶을 소개하는 연재입니다. 80개 분야에서 의대 교수 연인원 3000명의 추천과 환자들의 평점을 합산해서 선정된 베스트닥터의 삶을 통해 참의사의 본모습을 보여드립니다. 여러분의 관심과 참여는 베닥 선정을 통한 참의사상 확립에 큰 힘이 됩니다.

 

이성주 기자 stein33@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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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의 댓글
  1. 아는사람

    어이없어 웃고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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