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 ‘불굴의 정신’이 낳은 코로나 백신

[이성주의 건강편지]

제 1451호 (2020-12-14일자)

“연구비, 연구비, 연구비…” “No, No, No…”

지난달 20일 의료계 11개 전문가단체들이 코로나19 확진자가 1000명을 돌파하는 것이 시간문제라고 경고했는데, 주말에 현실이 됐습니다. 그야말로 전쟁 상황입니다.

하지만 인류는 코로나19와의 전쟁에서 새 단계에 들어섰습니다. 영국이 8일 화이자-바이오엔테크의 백신을 접종하기 시작했고, 미국은 11일 캐나다, 바레인, 사우디아라비아, 멕시코에 이어 여섯 번째로 백신을 승인하고, 이번 주 초 고위험군부터 접종을 시작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선 화이자-바이오엔테크와 모더나의 백신 개발이 모두 40여 년 전 한 무명 과학자로부터 시작했다는 사실이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듯합니다. 웬일인지 국내 언론 어느 곳도 인류에게 빛을 주고 있는 이 과학자의 가슴 뜨거운 사연을 조명하지 않고 있더군요.

주인공은 바로 헝가리 출신의 생명과학자 카탈린 카리코 박사입니다. 현재 바이오엔테크의 수석부사장인데, 경쟁사라고 할 수 있는 모더나의 설립자조차도 “카리코는 노벨상을 받아야 한다”고 말할 정도입니다.

카리코는 1976년 헝가리의 세게드 대학교에서 생명과학 강의를 듣다가 mRNA(전령RNA)의 세계에 빠졌습니다. mRNA는 단백질의 설계도 격인 DNA의 메시지를 풀이해 공장인 리보솜에 전달해서 단백질을 생산하도록 하는 RNA로, ‘생명체의 소프트웨어’라고도 불립니다. 1961년 미국 캘리포니아공대 과학자들이 처음 발견했으며 이 가운데 시드니 브레너는 2002년 노벨상을 받았지요?

카리코는 1984년 미국 생화학자 캐리 멀리스가 유전자증폭기술(PCR)을 발견해서 유전자 연구 붐이 일어나자, 이듬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납니다. 템플대학교에서 박사후 과정 연구원 초청장이 나오자 헝가리 암시장에서 승용차를 판 돈 900유로를 딸의 테디베어 인형에 숨겨 꿈을 실현하려고 떠납니다. 휴대전화도, 신용카드도, 아는 사람도 없는 미지의 세계로, 공학도 남편과 딸과 함께. 그야말로 ‘원웨이 티켓’이었습니다.

카리코는 미국에 도착해서 수십 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일했다고 합니다. 수시로 실험실에서 잤고, 심지어 실험실에서 새해 아침을 맞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했습니다. 연구 성과가 나오지 않자, 템플대의 상사는 카리코에게 강제 추방당하게 신고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1989년 다행히 인근 펜실베이니아대학교로 적을 옮겨서 이듬해 가시적 성과를 내기 시작했지만 정부의 연구지원, 기업의 펀드, 심지어는 대학의 지원도 받지 못했습니다. 삶이 제안서를 내고, 거절당하는 것의 연속이었지만 현실에 무릎 꿇지 않았습니다. 밤늦게까지 연구하다가 지원금 꿈을 꾸다가 깨는 날이 되풀이됐습니다. 연구비 통장이 바닥나자 연구원들은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소속 대학의 수석연구원은 mRNA 연구가 비현실적이라는 것을 나름대로 입증했고 대학은 카리코에게 mRNA 연구를 포기하든지, 직위와 연봉을 대폭 삭감하든지 선택을 강요했습니다.

1995년은 절망의 해였습니다. 카리코는 연봉을 연구실의 보조기술자보다 덜 받는 조건에서 남았지만 덜컥 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남편은 미국 영주권을 받기 위한 서류를 받으러 헝가리에 갔다가 비자가 나오지 않아서 6개월 머물러있어야 했습니다. 두 번 수술을 받고 겨우 딸을 키울 돈으로 연구에 매진했습니다. 카리코는 그때를 이렇게 회상합니다.

“다른 곳으로 가야 하나, 다른 일을 해야 하나 고민했습니다. 내가 실력이 없나, 똑똑하지 못한가? 내부에서 계속 울려 퍼졌습니다. 그럴 때마다 되뇌었습니다. 모든 게 여기에 있고, 좀 더 나은 실험만 하면 된다고.”

포기하지 않으면 길이 보인다고 했지요? 1997년 연구원들이 함께 쓰는 복사기 앞에서 보스턴대 출신으로 미국 국립보건원(NIH)에서 근무하다 그곳으로 자리를 옮긴 면역학자 드류 와이스만 박사를 만납니다. 당시엔 온라인으로 다른 논문을 못 보던 시절이어서 서로를 몰라봤는데, 카리코는 와이스만에게 “저는 어떤 RNA도 만들 수 있다”고 자신을 소개합니다. 둘은 대화 끝에 의기투합했고 와이스만은 자신의 연구자금을 쪼개서 카리코의 연구를 돕습니다.

2000년대 초반 드디어 연구에서 빛이 번쩍였습니다. 이론상으로는 생명체에 mRNA를 투입하면 이 설계도에 따라서 단백질이 만들어져야 하지만, 난관이 있었습니다. 1990년대 위스콘신 대 연구진이 mRNA가 실험쥐에서 작동하는 실험에는 성공했지만, 곧바로 면역 염증반응이 일어나서 mRNA가 파괴되거나 쥐가 죽었습니다. 카리코는 mRNA에서 우리둔이 면역반응의 열쇠라는 것을 발견하고 우리둔과 똑같이 보이지만, 면역반응을 일으키지 않는 분자로 갈아 끼우고 실험쥐에게 투입했습니다. 실험쥐에게 어떤 염증반응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유레카! mRNA를 통해 각종 질환의 치료제와 백신을 개발할 길이 열린 것입니다.

두 사람은 mRNA가 안정성이 약하다는 약점을 지질막을 싸는 방법으로 해결하는 등 개선을 거듭했습니다. 이들에 대한 연구논문을 발표하고 특허를 출원했지만, 기대와 달리 학계는 조용했습니다. 아무도 초정하지 않았고, 지원금을 받을 수 없는 것은 이전과 똑같았습니다.

이때 스탠퍼드대학교에서 줄기세포 연구를 하던 연구원 데릭 로시는 이들의 논문을 눈여겨봤습니다. 로시는 나중에 하버드대 조교수로 갔다가 배아줄기세포 연구가 윤리적 문제에 부딪히자 연구방향을 mRNA로 틀고, 2010년 하버드와 MIT의 동료들을 설득해서 회사를 만들었습니다. 그 회사가 바로 모더나입니다.

2011년 독일 회사 바이오엔테크가 관심을 보이자, 카리코는 기술사용 권한을 줬습니다. 그녀는 2013년 펜실베이니아대에 교수 복귀 신청을 했지만 거부당했습니다. 카리코가 바이오엔테크의 임원으로 떠나겠다고 하자, 대학 관계자는 “그 회사는 웹 사이트도 없는 회사”라고 비웃었습니다.

모더나와 바이오엔테크는 각각 백신을 개발하기 시작했지만, 대규모 자금 지원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2020년 중국 우한에서 유행한 바이러스가 세계를 덮치자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mRNA 백신은 기존 백신보다 여러 측면에서 유리했습니다.

흥미롭게도, 카리코가 미국에 올 때 두 살이었던 딸도 엄마를 닮았습니다. 엄마가 연구지원금을 못 받아서 고통 받을 때 딸은 자신의 꿈과 싸우고 있었습니다. 키가 너무 커서 콤플렉스까지 가졌다는 딸은 고교 때까지 농구, 달리기, 높이뛰기 등을 했지만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펜실베이니아 주립대에서 범죄사회학을 공부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꿈은 스포츠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 늦은 나이에 조정에 입문합니다. 그리고 엄마가 연구실에서 밤을 지새울 때 늦깎이 선수였던 자신은 하루 종일 연습에 매달립니다. 마침내 올림픽 팀 감독의 눈에 띄어 미국 대표 팀에 합류하고 30세, 34세 때 런던올림픽과 베이징 올림픽에서 연거푸 금메달을 목에 겁니다. 그 딸은 스타 조정선수였던 수잔 프란시어입니다.

카리코는 35세 때 미국에 와서 이제 65세가 됐습니다. 그의 삶은 멸시와 모욕을 받으면서도 인류의 패러다임을 바꾼 ‘룬샷’의 대표적 사례로 역사에 남을 겁니다. 그의 삶은 과학적 성과는 결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는 사실, 누군가의 큰 잠재력을 알아보는 것이 쉽지 않다는 사실, 포기하지 않고 악전고투하면 언젠가 꿈이 이뤄진다는 것 등 많은 것을 생각게 합니다.

1995년 카리코가 끔찍한 현실과 다른 사람의 충고에 굴복했다면…. 카리코는 수많은 사람을 살리게 됐지만, 우리는 언제 그 혜택을 경험할 수가 있을까하는 답답함이 밀려오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전진하면 언젠가 희망의 그날이 오겠죠? 절대 무릎 꿇지 않았던 카리코의 삶처럼!


[대한민국 베닥] 당뇨병 서울대병원 박경수 교수

당뇨병 분야 베스트닥터로는 서울대병원 내분비내과 박경수 교수(61)가 선정됐습니다. 박 교수는 한국형 당뇨병의 특징을 규명하고 이를 넘어서 개인 맞춤형 당뇨병 정밀 치료의 꿈을 실현하기 위한 연구에 매진하는 연구자이자, 환자의 혈당 관리를 위해 10년 전 면담자료까지 참조하고 동료 의료진과 끊임없이 대화하는 철저한 의사입니다.

☞ ‘맞춤형 당뇨병 정밀치료’ 꿈꾸는 박경수 교수 삶 보기


오늘의 음악

첫 곡은 꿈에 대한 노래입니다. 에어로스미스의 리더보컬 스티븐 타일러가 부르는 ‘Dream On’입니다. 67세 때 이렇게 격정적 보컬을 선보이는 스티븐 타일러는 ‘반지의 제왕’에 나온 여배우 리브 타일러의 아버지이죠? 1946년 오늘 태어난 영국 가수 겸 배우 제인 버킨의 ‘Yesterday, Yes a Day’ 이어집니다.

  • Dream On – 스티븐 타일러 [듣기]
  • Yesterday, Yes a Day – 제인 버킨 [듣기]

    이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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