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베닥] “자동차 돌보듯 혈당 관리하면 당뇨 합병증 예방”

㉚당뇨병 분야 서울대병원 박경수 교수

“좋아하시는 커피 좀 줄이셔야겠어요.”
“운동을 좀 더 규칙적으로 해야겠습니다.”

서울대병원 내분비내과 박경수 교수(61)의 진료실에서 환자들은 스스로 이야기하지도 않았는데 주치의가 자신의 사정을 꿰뚫어보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곤 한다. 박 교수는 환자의 혈당이 잘 잡히지 않으면 ‘기본에 충실하자’를 되뇌고 수 년 전, 심지어 10여 년 전 환자가 당뇨병 교육 전담 간호사, 영양사 등과 면담한 기록까지 체크해서 해결책을 찾는다.

박 교수는 또, 혈당관리가 잘 안 되는 환자에게 보호자와 함께 진료실에 오게 한다. 가족이 환자의 상태를 이해하고 식사와 운동 등 생활습관 개선에 협조하고 약 복용에 관심을 기울이면 치료 성과가 좋아지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또 당뇨병 관리에서 의료진의 팀 어프로치를 중시한다. 진료실과 당뇨교육실의 간호사, 영양사 등의 의견을 경청하며 신장내과, 정형외과, 심장내과 등의 동료의사들과도 환자에 대해 수시로 의견을 나눈다.

그는 “당뇨병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아직도 잘 모르는 부분이 많다. 당뇨병과 관련된 새로운 임상연구결과가 쏟아져 나와 진료지침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으며 혈당 측정과 당뇨병 치료와 관련된 새로운 기술들도 계속 나오고 있다. 이를 따라가려면 의사가 꾸준히 열심히 공부해야한다”고 말한다.

대표적으로 2010년 아반디아의 부작용 논란 뒤 당뇨병 신약은 심장혈관질환 안전성을 증명해야 하는데, 일부 의약품은 심장혈관질환을 예방하거나 신장을 보호하는 효과 등이 입증돼 특정 질환이 있는 당뇨병 환자는 이들 약의 처방을 고려해야 한다. 인슐린 주사도 편리하게 개선되고 있고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성분의 주사제도 선보였다. 혈당을 체크하는 기술도 급속히 발전하고 있으며, 진료실에서 스마트 폰 앱으로 체크한 혈당을 갖고 오는 환자도 있다. 유전자 분석, 약제, 웨어러블 디바이스, 생활기록 분석기술 등의 급격한 발달로 환자 맞춤형 정밀의료가 눈앞으로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는 것.

박 교수는 중학교 때 담임교사의 영향을 받은 데다 뇌졸중으로 쓰러졌던 이모의 권유를 가슴에 담아 의사의 길을 택했다. 그는 서울대 의대에서 시험 기간에도 성적과 관계없는 책을 읽으면서도 수석 졸업하고 내과 의사의 길로 들어섰다.

박 교수의 목표는 맞춤형 정밀 치료법 연구로 당뇨병 환자의 치유에 기여하는 것이고 이를 위한 성과를 잇따라 내고 있다. 그 시작은 스승인 민헌기 서울대 명예교수(92)가 던진 화두 “우리나라 당뇨병 환자는 서양 환자와 왜, 어떻게 다른가?”였다.

박 교수는 2000~2011년 보건복지부 지정 ‘당뇨 및 내분비질환 유전체연구센터’를 이끌며 한국인 당뇨병 환자들의 유전적 변이들을 찾아내 《네이처》 《네이처 지네틱스》 《미국 인류 유전학 당뇨 저널》 등에 발표했다. 지금까지 국제학술지에 발표한 논문만 무려 395편에 이른다.

특히 한국인 당뇨병 환자들은 서구인과 달리 당뇨병 진단을 받기 전에 인슐린 분비능력이 떨어져 있으며, 발병 과정에는 인슐린의 기능이 떨어져 있는데도 인슐린 분비가 보상적으로 증가하지 않는 환자가 많다는 것을 밝혀냈다. 당뇨병 전 단계에서 인슐린 분비능력을 높이면 발병 위험을 뚜렷이 줄인다는 것을 제시한 것이다. 이와 함께 유전적 원인을 규명해서 2016년 《랜싯 당뇨병과 내분비학》에 발표했다.

그는 또 2018년에는 2012~2017년 한국인 당뇨병 환자 7850명과 정상 혈당인 9215명의 유전자를 분석해서 당뇨병 발병을 일으키는 유전자 변이를 밝혀내 당뇨병 분야 최고 권위지인 《당뇨병》에 발표했다.

박 교수는 다양한 치료법을 개발하기도 했다. 그는 골수세포를 이용하여 인슐린 분비세포로 분화시키는 새로운 방법과 함께 췌도 이식 효율을 높이는 방법, 췌도 사멸을 방지할 수 있는 방법 등 췌장베타세포의 기능과 양을 증가시킬 수 있는 방법 등을 제시했다.

박 교수는 10여 년 전부터는 서울대병원 의학연구혁신센터 연구원 10여 명과 함께 △당뇨병 유전자 변이 기능 △인슐린을 분비하는 췌장 베타세포 분화 △지방 독성 보호 메커니즘 등을 연구하며 당뇨병의 세계를 하나하나 캐고 있다. 최근에는 동양인의 25%에서 발견되는 특정 당뇨병 유전자를 쥐에게 주입해서 혈당의 변화를 분석하는 연구에 빠져있다. 코로나19 위기가 심해지기 전에는 주말에 집에서 쉬는 것은 상상도 하지 않았다.

박 교수는 이처럼 진료와 연구뿐 아니라 최근까지 서울대병원 의생물연구원장, 정밀의료센터장 등으로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가운데 지난해까지 대한당뇨병학 이사장으로 활동하며 미국에서 개최되던 키스톤 심포지엄의 국내 개최, 세계당뇨병학회 개최 등을 성공적으로 치르면서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고 있다.

박 교수가 국제 학계가 인정하는 대가가 된 데에 동료 의사들은 ‘천재성’을 이야기하지만, 스스로는 “민헌기 교수를 비롯한 스승들의 가르침 덕분”이라고 말한다.

고(故) 지제근 교수는 본과 때 ‘신경과학’이라는 통합강의에서 성적이 좋은 제자에게 《행동신경학》이란 책을 선물했고, 연구실에서 논문을 쓰게 하면서 연구의 세계로 이끌어줬다. 고(故) 고창순 교수는 박 교수가 내과 전공의 신참 때 《뉴잉글랜드저널오브메디신》(NEJM)의 논문을 복사해서 읽게 하고, ‘정신의학, 면역학, 내분비학의 뿌리는 하나’라는 주제의 책을 권하면서 내분비학을 전공으로 삼을 것을 권했다. 또 이홍규 교수(76)는 당뇨병과 관련한 숱한 연구 아이디어를 넘겨줬다. 미국당뇨병학회 회장을 지낸 UC샌디에이고의 로버트 헨리 교수는 인슐린 기능이 떨어지는 메커니즘에 대한 연구방향을 제시했다. 헨리 교수는 제자가 귀국한 뒤 실험실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장비와 시약을 보내기까지 했다. 헨리 교수가 다른 제자들에게 박 교수에 대해서 얼마나 이야기 했는지, 다른 제자들이 학회에서 박 교수를 만나면 “네가 그 박이냐?”고 물을 정도였다.

박 교수는 스승들의 가르침을 흘려듣지 않고 연구에 매진, 한국인 맞춤치료를 넘어서 개인별 정밀의료로 당뇨병을 치료하는 날을 준비하고 있다.

“제2형 당뇨병을 조금 더 세분화해서 분류하려는 시도를 계속하고 있는데 이 연구에서도 여전히 한국인 당뇨병 환자는 서양인 환자와 다르다는 것이 확인됩니다. 당뇨병은 한국인이라고 원인과 발병 양상이 모두 같은 것은 아닙니다. 아직 완전히 규명되지는 않았지만, 같은 제2형 당뇨병일지라도 서로 다른 그룹에 속하면 혈당 조절이나 합병증 발병 위험이 달라 보입니다. 당뇨병의 다양한 원인에 따른 맞춤 치료를 연구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박 교수에 따르면 당뇨병은 △제1형 당뇨병 △제2형 당뇨병(어릴 적에 걸리는 제2형인 MODY 포함) △임신 당뇨병의 전통적 분류 외에 △미토콘드리아 돌연변이 △특정 유전자 변이 △췌장질환에 의한 당뇨병 등이 있으므로 분류에 따라 치료를 달리해야 한다. 특정 그룹의 환자는 다른 약으로 안 되는데 몇 십 원짜리 저렴한 약으로 혈당이 귀신처럼 잡히기도 하므로 의사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환자를 봐야 한다는 것.

박 교수는 의사뿐 아니라 환자의 마음가짐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US 샌디에이고에섷함께 연구한 동료의사인 스티븐 에델만 교수의 저서를 인용했다.

“당뇨병에 대해 지나치게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자동차 품질보증을 위해서 검사정비를 받듯, 환자가 자신의 병에 대해 체크하고 관리하면 합병증 없이 건강하게 살 수 있습니다. 의사는 그것을 도와주는 사람이고요.”

대한민국 베닥은 의사–환자 매치메이킹 앱 ‘베닥(BeDoc)’에서 각 분야 1위로 선정된 베스트닥터의 삶을 소개하는 연재입니다. 80개 분야에서 의대 교수 연인원 3000명의 추천과 환자들의 평점을 합산해서 선정된 베스트닥터의 삶을 통해 참의사의 본모습을 보여드립니다. 여러분의 관심과 참여는 베닥 선정을 통한 참의사상 확립에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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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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