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49호 (2020-11-30일자)

로제타 셔우드 홀과 우석 김종익의 필란트로피

코로나19 탓에 어느 때보다 추운 겨울이 스산하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스러워하고 있습니다. 입동(立冬) 감나무에 까치 먹으라고 감 하나 남겨놓았던 우리 민족의 따뜻한 마음으로 이 혹독한 겨울을 이겨낼 수 있을까요?

입동 까치밥이 나뭇가지에 달랑달랑 매달렸을, 지난 11일 ‘따뜻한 마음’을 생각게 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날 부정맥 치료의 세계적 대가로 유명한 김영훈 고려대 의료원장 겸 의무부총장이 ‘필란트로피(Philanthropy) 기념식’을 열고 건강한 기부 문화 조성에 앞장설 것을 선언하면서 1억65만원을 기부했습니다. 필란트로피는 친구를 뜻하는 단어 ‘Philo’에서 유래한 말로 봉사, 기부, 자애 등을 아우르는 말입니다. 그런데 왜 하필 1억 원도 아니고, 1억65만원을 기부했을까요?

사연은 구한말 미국 출신 여의사 로제타 홀(1865~1951. 사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홀은 이화학당을 설립한 선교사 메리 스크랜튼이 “남녀칠세부동석의 문화 탓에 남자 의사가 여자를 치료할 수 없다”며 본국에 요청해서 파견된 여의사입니다. 1891년 보구여관에서 여학생 6명에게 의학을 가르쳤고, 1894년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귀국하면서 김점동(에스더 박)을 미국 볼티모어 여자의대에 데리고 가서 최초의 여의사를 배출하기도 했습니다.

홀은 1897년 다시 한반도를 찾아 평양에 여성 전용병원 광혜여원을 열었고, 한글 점자를 개발해서 시각장애인학교를 설립했습니다. 보구여관에 간호사양성학교를 세우기도 했습니다.

홀의 최대 관심은 여의사를 제대로 키우는 것이었습니다. 1928년 의사이자 독립운동가인 김탁원과 그의 부인으로 일본에서 의사자격증을 땄던 길정희 등과 함께 조선의학강습소를 열었고 최소 11명의 여의사를 배출했습니다. 그러나 학교로 전환해서 본격적으로 여의사를 키우는 데 필요한 자금이 없어 애간장을 태웠습니다. 홀은 동아일보에 칼럼을 써서 재력가의 도움을 호소했습니다.

동아일보 설립자 인촌(仁村) 김성수는 이 칼럼을 보고 김탁원에게 “전남 순천의 김종익을 찾아가보라”고 권합니다. 우석(友石) 김종익 역시 홀의 간절한 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김탁원 부부의 설명을 듣고 “알았다”고 고개만 끄덕였습니다.

그런데 우석은 1937년 세상을 떠나기 전에 175만원을 교육사회사업에 기부하며 이 가운데 65만원을 여자의학전문학교 설립에 쓰라고 유언을 남겼습니다. 175만원은 현재 돈으로 5000억 원이 넘는 거액이고, 65만원도 1800억원이 넘습니다. 당시 조선총독부 관리들은 이 소식을 듣고 “조선인은 무서운 민족”이라며  경계했다고 합니다.

1938년 65만원이 바탕이 돼 경성여의전이 출범했고, 광복 후 서울여자의대로 바뀌었다가 수도의대를 거쳐 1964년 우석대 의대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1971년 우석대가 재정난을 겪자 고려대가 고인이 된 인촌의 마음을 헤아려 이를 인수해서 고려대 의대가 됐습니다.

김영훈 의료원장은 병원 구성원에게 65만원에 담긴 기부와 나눔의 정신을 강조하려고 1억65만원을 내놓은 것이지요. 김 원장의 어머니는 서울여자의대에서 의사의 꿈을 키우다가 6.25 전쟁 탓에 의사의 꿈을 접어야 했던 신세대 여성이기도 합니다. 아마 어머니에게 이 따뜻한 사연을 생생하게 듣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고려대의료원이 1928년 홀이 설립한 조선의학강습소를 기원으로 삼고, 100돌이 되는 2028년 초일류 병원으로 우뚝 서겠다면서 홀과 우석의 ‘필란트로피’ 정신을 고갱이로 삼은 것,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크고 넓고 따뜻한 마음에서 초일류가 나온다고 믿으니까요. 이런 정신이 온 사회로 번졌으면 합니다. 코로나19 위기에 찬바람 부는 지금,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번져 대한민국 미래의 씨앗이 되기를 바라는 것, 지나치게 이상적 생각일까요?


[오늘의 음악]

오늘은 들으면 들을수록 가창력에 감탄하게 되는 노래 두 곡 준비했습니다. 첫 곡은 트래픽, 브라인드 페이스 등 그룹의 보컬로 유명한 스티브 윈우드의 ‘While You See A Chance’입니다. 2017년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을 떠나버린 고 조동진의 깊은 노래 ’어느날 갑자기‘ 이어집니다.

  • While You See A Chance – 스티브 윈우드 [듣기]
  • 어느날 갑자기 – 조동진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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