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확진자 쏟아지면…” 응급실 의사가 본 ‘최악 재앙’

[Dr 곽경훈의 세상보기]

신종 코로나 바리어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이 본격화한 지난 몇 달 동안 응급실 근무 때마다 격리실에 발열 환자를 수용하고 D급 보호구를 입고 벗는 일을 반복했다. 다행히 아직 응급실이 COVID-19 확진자에게 노출되거나 방역이 뚫린 적은 없다. 우리 병원은 비슷한 구모의 병원 가운데서는 나름대로 합리적이고 엄격한 ‘발열 환자 진료체계’를 구축했다.

그러나 그 모든 체계는 대유행이 지금과 비슷한 수준일 때만 효율적으로 가동할 수 있다. 지금보다 유행이 악화해 대유행 단계에 접어들면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어렵다.

만약 하루에 1,000명 이상 환자가 발생하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통계의 숫자나 ‘응급실 붕괴’ 같은 딱딱한 문장이 아니라, 보다 실감나게 표현하면 과연 어떤 상황일까?

우선, 처음 며칠은 혼란이 있겠지만 아주 심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응급실에 있는 2곳의 격리실은 늘 환자로 가득하고 중환자실 격리병상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금까지는 경험하지 못한 ‘응급실의 격리실에서 인공호흡기 치료를 시작하는 사례’가 나타나겠지만 코로나19로 확진하면 인근 대학병원으로 옮길 수 있을 것이다.

처음 며칠이 지나면 인근 대학병원의 격리병상도 한계에 다다를 것이다. 최악의 경우에는 인근 대학병원에서 원내감염이 발생하여 기능이 제한될지도 모른다. 두 상황 모두 코로나19 환자를 전원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때엔 대학병원이 한 곳뿐이라 인근 대도시에 연락하겠지만 그곳도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일 가능성이 크다.

드디어 진정한 악몽이 시작할 것이다. 발열 환자는 계속 찾아오고, 격리실은 자리가 나기 무섭게 새로운 발열 환자로 채워질 것이다. 수용하지 못한 발열 환자는 격리실이 있는 다른 병원을 찾겠지만 대부분 상황은 비슷할 것이다. 결국에는 특정 병원을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지정하겠지만, 중증 환자라면 전담병원을 지정해도 수용이 쉽지 않을 것이다. (지난 3월 대구의 대규모 발생 때는 동산병원이 새로 지은 병원에 대학병원 기능을 넘겨주고 옛 병원을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사용할 수 있어 단순히 의료진만 충원하면 시설은 걱정할 필요가 없는 특수한 상황이었다.)

코로나19 환자와 발열 환자가 수용할 병원을 찾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동안 다른 문제도 발생할 것이다. 뇌출혈, 뇌경색, 심근경색, 중증외상, 위장관출혈, 코로나19가 아닌 다른 원인으로 인한 패혈증 등 중증 환자가 적절하게 수용할 응급실과 중환자실을 찾지 못해 대유행 이전이라면 치료받아 살 수 있는 환자가 치료시기를 놓쳐 사망하는 사례가 급증할 것이다.

과거에 그런 사례가 발생했다면 ‘왜 받아주는 병원이 없느냐’면서 문제를 제기하고 법의 심판을 요청할 수 있겠지만, 이제는 정말 수용할 수 있는 응급실과 중환자실이 없어 단지 ‘좋지 않은 시기에 재앙을 만난 불운’을 탓할 수밖에 없을 가능성이 크다.

급기야 우리 응급실 같은 경우에는 공간을 분리하여 ‘발열 환자 구역’과 ‘기타 환자 구역’으로 나누어 진료를 시행할 것이다. 발열 환자는 코로나19가 아니라도 발열 환자 구역에 수용하고 그 구역에서 일하는 의료진은 근무 내내 D급 보호구를 착용할 것이다.

우리 응급실이 전담의사 1명과 간호사 4명으로 근무조를 편성하는 것을 감안하면 의료진의 피로가 급격히 쌓일 것이다. 의료진 가운데 코로나19 환자가 발생하기라도 하면 남은 의료진이 버티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지난 3월 대구의 대규모 발생 때는 다른 지역의 의료진이 지원하여 공백을 메울 수 있었지만, 전국적으로 대규모 환자가 발생하면 어느 지역도 다른 지역을 지원하기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

특정 시점을 넘어서면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병원의 기능을 수행할 수 없는 단계에 다다를 것이다. 그 단계에서는 ‘살릴 환자와 포기할 환자’를 선택하는 잔인한 임무가 의료진에게 주어질 것이다. 고령 혹은 기저 질환이 있어 생존 가능성과 기대 여명이 낮은 환자를 포기하고 젊고 건강했던 환자에게 중환자실 입원과 인공호흡기 치료, 체외막산소공급장치(ECMO) 치료의 우선권이 주어질 것이다.

그러면서 코로나19의 중증 환자 치료에 자원을 집중하니 이전이라면 신속하게 치료받을 수 있던 다른 중환자가 위험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쉽게 말하면 심근경색, 뇌경색, 뇌출혈, 중증외상, 코로나19가 아닌 패혈증 등 환자가 입원할 중환자실을 찾지 못하거나 의료진이 부족하여 시술과 수술조차 받지 못하고 사망하는 사례가 발생할 것이다.

또. 의료진 가운데 코로나19 환자도 끊임없이 발생할 것이다. ‘환자의 죽음’뿐만 아니라 ‘동료의 죽음’을 목격하면서 의료진 대부분은 육체적 탈진과 정신적 충격에 시달릴 것이며, ‘다음은 나일 수도 있다’는 전쟁터의 군인이나 느낄 법한 불안과 공포에 짓눌릴 것이다.

다행히 아무리 참혹한 재앙도 결국에는 종결할 것이며 살아남은 자는 거짓말 같은 일상을 회복할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너무 많은 사람이 일상을 회복하지 못하고 사망할 것이며 살아남은 사람 상당수도 재앙의 기억에 고통 받을 것이다.

물론 위와 같은 상상이 그저 끔찍한 악몽에 그치기를 간절히 바란다. 또, 근무 때마다 발열 환자를 격리실에 수용하고 D급 보호구를 몇 번씩 입고 벗는 터라 위와 같은 상상이 현실이 되었을 때, 나는 누구보다 가까이서 재앙을 경험하고 ‘다음은 나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공포를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안타깝게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대단히 제한적이다. 마스크를 착용하고 대규모 행사를 삼가면서 질병관리청의 지시에 따르는 것이 할 수 있는 최선이다. 따지고 보면, 인류가 경험하는 재앙이 대부분 그렇다. 선동가와 음모론자는 자기 덕분에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말하거나 몇몇 소수자에게 책임을 돌리면서 헛된 위안을 제공하지만, 현실을 정확히 판단하여 나오는 제안은 항상 건조하고 냉혹한 법이다.

그럼에도 인류가 지금껏 숱한 재앙을 직면하면서도 굴복하지 않은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그런 재앙에 맞서 가능한 범위 내에서 소중한 일상을 지키고, 증오와 공포에 휩쓸리지 않으며 서로 인간에 대한 존중을 간직했기 때문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겸허하게 현실을 직시하고, 서로 연대하는 것이다.

마침 어제, 대한감염학회, 대한예방의학회, 대한응급의학회 등 11개 의료 전문가 단체가 “지금 이 상황대로 가면 1~2주 내 환자가 1000명에 육박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전문가의 말을 귀담아듣고 겸허하게 현실을 직시하고 서로 긴밀히 연대해야 할 때가 아닐까? 그렇지 않아서 만약, 만약 ‘최악의 재앙’이 온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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