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팬데믹이 만드는 또다른 ‘전염병’

[Dr. 곽경훈의 세상보기]

무어인 정복자를 북아프리카로 쫓아내고 이베리아 반도를 되찾은 이사벨라 스페인여왕의 궁정에 제노바 출신 사내가 찾아왔다. 자신만만한 태도와 화려한 말솜씨를 지닌 사내는 ‘금과 은이 넘쳐나는 동방의 나라, 지팡구를 정복하겠다’고 제안했다. 중세가 끝나고 르네상스가 시작하는 무렵, 유럽의 궁정에 그런 사기꾼과 몽상가는 넘쳐났다. 사내도 이미 포르투갈 왕에게 비슷한 제안을 했다 쫓겨난 상황이었다. 스페인 궁정에서도 반응은 비슷했다. 신하들은 사내를 사기꾼 혹은 미치광이라 판단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여왕이 흥미를 보였고 사내에게 함대와 자금을 약속했다.

 

사내의 이름은 고향인 이탈리아어로는 크리스토포르 콜롬보, 스페인어로는 크리스토발 콜론, 우리에게는 영어인 크리스토퍼 콜럼부스로 친숙하다. 이사벨라 여왕의 지원으로 사내는 1492년 신대륙으로 가는 항로를 개척했다. 안타깝게도 사내가 상륙한 서인도제도에서는 금과 은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 항로를 따라 정복한 멕시코와 남미의 식민지에서 막대한 은이 쏟아졌다. 덕분에 스페인은 패권 국가가 되어 스페인 국왕이 신성로마제국 황제까지 겸했다.

 

그러나 신대륙에서 은만 쏟아진 것은 아니다. 묘한 질병도 따라왔다. 처음에는 성기에 궤양이 생기고 곧 사라지더니 몇 달에서 몇 년 후에 손과 발에 반점이 나타난다. 역시 그 반점도 저절로 사라지나 다시 짧게는 수년, 길게는 십수 년이 지나면 코가 문드러지고 치아가 빠지고 눈이 멀고 반쯤 미쳐서 아주 비참하게 사망한다. 질병은 스페인 왕국의 팽창과 함께 유럽 전체로 퍼졌다. 프랑스인은 이 질병을 ‘스페인 병’이라 불렀다. 20세기 초 파울 에를리히가 살바르산이란 특효약을 만들기 전까지 오랫동안 인류를 괴롭힌 이 질병은 바로 매독이다.

 

오늘날 매독은 성가신 질병일 뿐이나 인류는 여전히 새로운 질병을 만날 때마다 매독을 처음 접한 유럽인처럼 행동한다. 질병을 특정한 국가, 지역, 인종, 집단과 결부하여 부르면서 은근슬쩍 책임을 전가한다. 1차 대전 끄트머리에 독감 대유행이 발생하자 엄밀히 따지면 미국에서 시작했음에도 ’스페인 독감‘이라 불렀다. 1968년 독감의 새로운 대유행에는 ’홍콩 독감‘이란 이름을 붙였다. 1980년대 초 미국에서 AIDS가 위세를 떨치자 ’게이 폐렴‘이라 불렀다. 2014년 에볼라가 세계를 위협하자 ’아프리카인의 병‘ 혹은 ’흑인만 걸리는 병‘이란 소문이 돌았다. 2015년 MERS가 한반도에 상륙하자 ’무슬림의 병‘이라 수군거리는 사람이 나타났다. 그리고 2019년 중국 우한에서 정체불명의 폐렴이 발생하고 2020년에 접어들면서 한반도를 비롯하여 세계로 퍼지자 비교적 점잖은 ’우한 폐렴‘이란 단어부터 ’중공 폐렴‘이란 선정적인 단어까지 일상의 공간을 침범한다.

 

과거의 악습을 따르는 것은 질병을 부르는 방법만이 아니다. 질병, 특히 전염병의 대유행이 몰고 오는 불안과 공포를 떨쳐버리기 위해 과거의 인류는 늘 만만한 희생양을 찾았다. 평범한 사람도 ’전염병에 걸린 것은 죄가 아니다‘, ’함께 연대하여 이겨내자‘ 같은 정답을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으나 그렇게 차분하고 지루한 말로는 군중의 공포와 불안을 단번에 해소하기 어렵다. 그래서 중세 유럽에서는 장티푸스, 발진 티푸스, 말라리아, 페스트, 콜레라 같은 전염병이 창궐하면 유대인과 집시에게 책임을 돌렸다. 유대인과 집시가 우물에 독을 넣고 악마와 손잡아 기독교인을 저주하여 재앙이 발생한다면서 박해했다. 유대인과 집시가 ’천사처럼 착한 집단‘이 아닌 것은 틀림없으나 그렇다고 ’사악한 악마‘도 아니며 무시무시한 힘을 지닌 것이 아니라 사회에서 소외당한 존재였음에도 그들의 힘과 악행을 과장했다. 사회의 질서를 유지할 의무를 지닌 통치자는 성난 군중을 말리지 않고 오히려 선동했다. 그런 식으로 군중이 불안과 공포를 해소하면 통치자에게는 유리하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2020년 대한민국도 비슷하다. ’중공 폐렴‘과 ’우한 폐렴‘ 같은 단어를 사용하는 무리는 조선족과 중국출신 이주민 같은 소수 집단에 혐의를 씌운다. 그들이 특혜를 누린다며 비난하고 심지어 중국의 지시를 받아 정부와 함께 선거를 조작했고 질병관리청 역시 검사 결과를 조작한다는 음모론까지 뇌까린다. 그들과 대척점에 있는 집단도 조금 품위있게 행동할 뿐, 크게 다르지 않다. ’중공 폐렴‘과 ’우한 폐렴‘ 같은 단어가 옳지 않고 그 모든 음모론이 사실과 거리가 있다고 비판하면서도 그들 역시 3월의 1차 유행 때는 신천지 교회에 책임을 전가했고, 8월의 2차 유행 때는 광화문에 모인 태극기 부대를 살인자로 비난했다. 물론 신천지 교회와 태극기 부대가 방역 지침을 어기고 무모한 집회를 감행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나 특정 집단을 살인자로 몰아가는 것이 바람직한 행동일까?

 

역사를 돌아보면 대유행병 역시 대부분은 2년을 넘기지 않았다. 오늘에는 끝나지 않을 것처럼 보여도 COVID-19 대유행 역시 1~2년 후에는 마무리될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정부를 지지하는 쪽과 정부를 비난하는 쪽 모두 지금처럼 군중의 불안과 공포를 증오와 선동으로 해소했을 때, 우리 사회에 남은 상처를 감당할 수 있을까?

에디터 kormedimd@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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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 댓글
  1. 국민

    신천지와 태극기부대를 살인자라 한 적이 있나
    방역의 어려움을 만드는 그들을 비난했을 뿐
    지나친 양비론

  2. 국민2

    기고자 분도 지금 정부에 책임을 전가하고 계신게 똑같네요~ 그것도 이렇게 명문화 하셔서 대대손손으로 남기시려고요? 내로남불인가요?

  3. 의사

    글에 정치적 성향이 그대로 보이네요 ㅋㅋㅋ 관상은 덤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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