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그룹이 병원을 연거푸 지은 까닭

[유승흠의 대한민국의료실록] ⑬대우의 무의촌 병원 건립

대우문화복지재단이 1979~80년 신안, 무주, 진도, 완도에서 개원한 병원들(사진=대우재단)

1970년대에 대우그룹이 국내, 국제적으로 활발하게 성장하고 있었다. 대우는 1967년 출범한 이래 급속히 성장하면서 소유와 경영의 분리, 기업 이윤의 사회 환원이라는 가치를 실천하는 모범 기업이었다.

김우중 회장은 기업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 사재를 출연해서 봉사 재단을 만들었다. 1978년 대우문화복지재단을 만들었고, 김효규 연세의료원장을 이사장으로 선임했던 것. 공교롭게도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도 그 무렵 아산사회복지재단을 만들었고 정읍, 보성, 보령, 영덕 등에 잇따라 병원을 개원했다.

대우그룹에서 매년 10억 원 규모를 지원할 수 있으니 무슨 사업을 하면 좋겠느냐고 필자에게 문의하기에 “당연 적용 의료보험이 시작됐으니, 무의(無醫) 지역에 병원을 건립하자”고 제안했다. 대우그룹이 흔쾌히 받아들였고 1977년 병원설립기획위원회를 구성해 최삼섭, 김일순, 안성규과 필자를 위원으로 위촉했는데, 필자가 간사를 맡았다. 재단 김인수 사무국장과 함께 보건사회부를 방문하여 의정국 이동모 의정과장에게 뜻을 전하였더니 너무나 좋아했다.

병원이 설립될 지역을 선정하느라고 김인수 국장과 건축 관련 전문가와 함께 토요일 오후에 출발하여 일요일 밤 또는 월요일 새벽에 귀경하는 일정을 강행했다. 호남지역 도 및 군 간부와 만나 의견을 나누어 섬 지역 진도군, 완도군 노화도, 신안군 비금도 그리고 백제와 신라를 잇는 나제통문이 있는 무주군 설천면 등 4개 지역을 선정했다.

병원에서 일할 의사를 구하기가 힘든 시절이었고, 더구나 섬과 무의(無醫) 지역이기에 신경이 쓰였다. 그리하여 무주와 신안은 연세대 의대 출신 전문의, 진도와 완도는 전남대 의대 출신 전문의를 원장으로 확보했다.

연세대 의대 출신의 최해관 박사는 병원 개원할 때부터 1998년까지 무주대우병원장으로 일하다가 완도대우병원이 경영상 어려워지자 자리를 옮겼다. 대우문화재단 소속 병원들이 매각 처분될 때까지 3년을 근무하고, 다시 무주로 돌아와 지금도 전북 무주군 설천면 옛 무주대우병원에서 연세외과의원을 개원해 인술을 이어가고 있다.

무주대우병원 개원 때 필자는 무주군 설천면 나제통문 지역에 설치하려면 버스 정류장에서 한참 걸어가야 하니까 설천면 버스정류장 앞으로 결정하자고 제안했다. 그랬더니 고위직 간부가 버스를 정류할 수 있게 조치하면 된다고 했지만, 사실은 불가능했다.

이전에 1970년대 초 의료선교사가 거제군 하청면 실전리에 건립한 거제건강원(거제지역사회개발보건원) 앞에 버스가 정차하도록 군수와 도지사에 건의하였으나, 불가능하였음을 경험했었다. 얼마 지나서 할 수 없이 무주군청 지역에 진료소를 추가로 만들어서 며칠에 한 번 씩 정기적으로 진료하도록 했다. 한 번 자동차로 무주군 설천면의 병원에서 전주의 전북 도청까지 가는데 구불구불 산길을 따라 5시간이나 걸렸다.

대우문화복지재단은 호남 네 곳에서 인술을 베풀면서 지역의 청소년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며 의료와 교육의 두 공적 역할을 담당했다. 김우중 회장은 사재 50억 원을 출연해서 재단을 설립한 뒤 1980년에는 “모든 재산을 완전히 공개함과 동시에 사재 모두를 참다운 사회에 환원시켜 앞으로 국민 여러분 모두가 염원하고 있는 가장 선량한 경영자인 전문경영자로서 소임을 다하고자 한다”면서 200억 원을 내놓았다.

비록 김대중 정부 때 대우그룹은 공중분해 됐고, 김우중 회장도 지난해 말 눈을 감았지만, 대우문화복지재단은 대우재단으로 이름을 바꿔 아직도 묵묵히 ‘대우 정신’을 실현하고 있다. 대우재단은 의료 환경의 변화에 따라 보건 의료사업은 지방자치단체와 민간에 넘기고 다문화가정 돕기, 개발도상국 환자 지원사업 등을 펼치고 있다. 학술총서 발간을 비롯한 학술연구 지원 사업과 함께. 설립자가 기업은 사라졌어도 그 정신은 살아 있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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