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베닥] 백혈병 세계 지침 만드는 ‘환자들의 동반자’

㉔혈액질환 베스트닥터 김동욱 가톨릭혈액병원 원장

김동욱 교수가 가톨릭혈액병원 진료실에서 환자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가톨릭혈액병원은 전문의 26명, 직원 300여명이 한 해 16만여 명의 환자를 진료하는 아시아 유일 혈액질환 전문병원이다. 무균실 중심으로 380병상을 보유하고 있으며, 한 해 600여명에게 조혈모세포 이식을 하고, 이 가운데 75%가 난이도가 높은 동종이식이다.

이 병원 김동욱 원장(59)은 이 병원 경영을 책임지면서 반포동의 서울성모병원과 진관동의 은평성모병원에서 매주 30시간 가까이 환자들을 직접 진료한다. 만성골수성백혈병(CML)의 세계적 연구자로 15개의 국제임상시험을 총괄지휘하고 있고, CML의 원인과 새 치료법을 찾는 숱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울산과학기술원(UNIST)과 혈액질환에 대한 ‘AI 진단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기도 하다. 요즘 코로나19 팬데믹 탓에 횟수가 줄기는 했지만, 매달 한 번꼴로 해외로 나가서 세계 최고 의사들과 회의를 하거나 특강을 펼친다.

김 원장은 이토록 바쁜 와중에서도 매일 진료가 끝나면 PC나 스마트폰에 접속, 2005년 발족한 김 원장 환자들의 모임인 ‘루산우회’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30분 동안 환자의 궁금증을 풀어준다. “깜빡 약 복용시간을 놓쳤어요,” “머리 파마는 언제부터 할 수 있나요,” “부부생활에 지장이 생겼는데…” 등 온갖 질문이 지금까지 4100건을 넘겼다. 아무리 늦어도 사흘 내에 응답하며, 해외에 나가서도 멈추지 않는다.

“백혈병을 골수이식으로 치료할 땐 의사의 실력에 따라 치료 성패가 좌우됐지만, 지금은 의사 처방에 따라 환자가 정확히 약을 먹어야 합니다. 약을 제 시간에 정확히 복용하지 않으면 내성이 생길 위험이 커지므로 환자와 의사의 교감이 중요하지요. 환자들은 홈페이지에서 자신의 혈액, 염색체, 유전자 검사를 확인해서 건강을 관리할 수 있습니다. 온라인 상담은 이런 면에서 진료실 진료 못지않게 중요하지요. 특히 최근 코로나19 탓에 입국을 못하는 해외 환자들에게 온라인 상담은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김 원장과 교감하는 루산우회 회원은 2100여명. 김 원장은 매년 5월이면 전국의 환자들과 산행한 뒤 2시간 동안 강의하고 대화를 나눈다. 전국 7개 지역본부에서 매달 열리는 행사에 참석해서 환자들에게 힘을 불어넣어주기도 한다. 또 매년 2월이면 산우회 임원들과 한라산 등반을 하고, 2005년에는 환자 7명과 함께 히말라야 등반을 했다. 그는 또 매년 가을에 세계적 음악가를 초청한 공연을 곁들인 ‘CML의 날’ 행사를 개최하고 환자들에게 백혈병 완치를 위한 생활에 대해 특강한다. 환자들에게 김 원장은 가족과도, 친구와도 같은 존재다.

김 원장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셋째 이모에 떠밀려서 의사가 됐다. 교회 봉사활동에 적극적이었던 이모는 “봉사에는 의사만한 직업이 없다”면서 대입 때 전자공학과를 지망하라는 아버지와 싸우다시피 해서 조카가 의대에 원서를 내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조카는 의대에 들어가서 탁구에 미쳐 의예과 2학년 성적표에 전체 110등 중 103등이 찍혀있었다. 김 원장은 본과에 들어갈 때 삭발하고 탁구라켓 대신 책을 잡았다. 본과 2학년 때 탁구동아리의 선배들로부터 강제로 회장을 떠맡았지만, 탁구장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동아리가 해체될 위기에 놓였다며 온갖 욕을 얻어먹으면서 ‘삭발 투혼’을 유지해 2학년 말 전체 차석으로 전액장학금을 받았다. 김 원장은 5년 전 탁구 동아리의 지도교수가 돼 탁구대 두 대와 라켓 70여개를 기증하면서 ‘최고 인기 동아리’로 키우고 있다.

김 원장은 국내 최초로 골수이식에 성공한 김춘추 교수의 수제자였다. 김 원장은 한시라도 병원을 떠나는 것을 상상도 못할 전공의 2년차 때 스승에게 한양대 유전학교실에서 염색체 실험을 배우게 해달라고 간청해서 허락을 받았다. 6개월 동안 오전에는 병원에서 근무하고, 오후에는 하와이대 의대 출신의 백용균 교수 아래에서 염색체와 유전자를 파고들었다. 이때 백혈병 중에서 CML이 유전자 연구로 가장 먼저 해결책을 찾을 것 같아서 이를 주전공으로 삼기로 다짐했다.

김 원장은 전공의와 군의관을 마치고 성모병원에서 임상강사로 근무했지만, 모교에는 그를 위한 교수 자리가 없었다. 그는 1994년 개원 준비 중인 삼성서울병원에 스카우트돼 자리를 옮겼다. 김 원장은 삼성의 지원을 받아 미국 LA, 어바인, 시애틀 등을 돌며 분자생물학의 기초를 다졌으며 그곳 의사들의 환자치료계획서와 연구계획서 자료파일 100여 개를 복사해서 귀국, 밤을 새워 분석하며 임상 준비를 했다. 하지만 스승은 제자의 복귀를 강렬히 원하고 있었다. 삼성서울병원에게는 너무나 미안했지만, 스승의 명령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김 원장은 “되돌아가면 CML만 전담케 해달라”고 제안했고, 스승은 기꺼이 받아들였다.

김 원장은 성모병원에서 국내 최초의 성과를 이어갔다. 1995년 10월 국내 처음으로 비혈연간 골수이식에 성공했고, 96년엔 면역계가 피아를 구분하는 표식인 사람백혈구항원(HLA) 6쌍이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 사람 간의 골수이식, 97년에는 탯줄조혈모세포 이식에 처음으로 성공했다. 20여 명의 환자에게 비혈연간 골수이식에 성공했지만 상당수는 얼마 넘기지 못하고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나 가슴앓이를 해야만 했다. 부검을 기피하는 문화 때문에 원인조차 알 수 없어 가슴이 타들어갔다.

김 원장은 1997년 ‘골수이식의 산실’인 미국 시애틀의 프레드허킨슨 병원으로 연수 가서 밤낮 연구실을 지키며 원인을 찾았다. 또 골수이식을 받고 숨진 사람 100여명의 의무기록을 복사, 유형별로 정리해서 나중의 임상에 대비했다. 미국의 지도교수는 김 원장에게 세계 최고의 연구 환경에서 함께 최고의 성과를 내보자고 권했지만, 김춘추 교수가 미국까지 와서 제자를 서울로 데리고 왔다.

김 교수는 성모병원에서 유전자 분석 환경을 만들었고 2001년 ‘기적의 표적항암제’ 글리벡이 국내에 들어오면서부터 이 분야 연구를 주도했다. ‘글리벡 공급 심의위원장’을 맡아 2년 반 동안 300여 명에게 이 약을 무상공급하며 환자를 살리고 연구를 이끌었다. 2003년 세계 최초로 급성림프구성백혈병의 글리벡 처방 기준을 세웠다.

그러나 평생 조혈모세포이식의 세계를 넓혀왔던 스승의 노여움을 산 것일까, 골수이식이 감소하며 병원 수익이 줄어든 탓이었을까, 김 원장은 2005년 갑자기 의정부성모병원으로 자리를 옮겨야 했다. 최고의 ‘스타의사’가 지방으로 ‘좌천’ 간 것도 놀랄 만한 소식이었지만, 600여명의 환자가 의정부까지 따라가서 의료계 전체에서 화제가 됐다. 김 원장은 루산우회 회원들과 산행을 하면서 환자들과 더욱 더 가까워졌다. 그는 환자의 경제사정에 대해서 고민하고, 환자들에게 치료제를 지원할 기부자를 연결해주기도 한다. 루산우회 회원들은 이에 호응, 가난한 환자를 도우며 필리핀 꽃동네를 후원하고 있기도 하다.

김동욱 교수가 지역 루산우회 회원들과 등반하면서 대화하고 있다.

김 원장은 국내 표적항암제 가격이 미국, 유럽의 1/5 수준으로 내리는 데에도 기여했다. 일양약품의 제2세대 표적항암제 개발 임상시험을 주도해서 이 약의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값을 내리도록 만든 것.

김 원장은 2011년 백혈병의 진료 및 연구 지침을 정해서 전 세계에 제시하는 ‘유럽백혈병네트워크’의 패널의원으로 아시아 의학자로는 유일하게 선정됐다. 지난 4월에는 네트워크가 학술지 《백혈병》에 ‘CML의 치료 목표는 치료 중단 후 완치’라는 지침을 만드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그는 지난해 말 세계 11개국 의학자들을 이끌고 CML 환자 141명에게 제4세대 표적항암제의 임상시험 결과를 세계 최고 학술지 《뉴잉글랜드저널오브메디슨(NEJM)》에 발표했다. 기존의 항암제와 함께 복용해서 완치율을 높일 가능성을 제시한 것. 김 원장은 또 면역치료제, 개량형 인터페론 등 다양한 무기를 병행해서 완치율을 높이는 연구를 주도하고 있다. UNIST 연구진과 유전자 이상을 찾아오고 있으며, 명경재 교수와는 염색체의 고장 난 부분을 고치는 시스템을 연구하고 있다.

김 원장은 새 생명이 탄생하는 것도 돕고 있다. 그는 가임 여성 환자 21명에게 임신기간 10개월과 초유 수유 기간 2주에 약을 끊도록 해서 아기를 갖게 해줬다. 항암제가 태아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으므로 약 복용을 중단시키고 면밀히 관찰하면서 출산을 도운 것. 환자가 힘들게 낳은 아기를 데리고 올 때 또 다른 보람을 느낀다.

“전공의 때 커다란 좌절이 환자에 대한 새 눈을 뜨게 해줬습니다. 몇 차례 항암제를 투여했지만 실패해서 치료가 거의 불가능한 환자를 고용량 항암제로 치료하겠다고 우겼습니다. 교수님들과 선배들의 조언도 듣지 않았고, 환자 가족이 치료 중단을 원할 때 ‘가족을 살리려는 의지가 부족하다’고 화를 내기도 했지요. 심각한 합병증과 혈구감소증에서 벗어나고 암세포가 사라졌다고 안도하는 순간, 갑자기 암세포가 확 번졌고…. 환자가 숨진 뒤 가족이 엄청난 치료비 때문에 고통 받는 것을 보면서 현실과 이상을 구분하지 못한 저를 자책했지요. 환자를 살리겠다는 의욕만 앞서 가족에게 상처를 준 것도 두고두고 가슴에 남았습니다. 환자와 가족의 목소리에 좀 더 경청해야 하고, 환자뿐 아니라 가족을 사람으로서 배려해야 한다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이밖에 루산우회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회원들과 나를 떠난 많은 환자들에게서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환자는 의사의 스승이자 동반자입니다.”

대한민국 베닥은 의사–환자 매치메이킹 앱 ‘베닥(BeDoc)’에서 각 분야 1위로 선정된 베스트닥터의 삶을 소개하는 연재입니다. 80개 분야에서 의대 교수 연인원 3000명의 추천과 환자들의 평점을 합산해서 선정된 베스트닥터의 삶을 통해 참의사의 본모습을 보여드립니다. 여러분의 관심과 참여는 베닥 선정을 통한 참의사상 확립에 큰 힘이 됩니다.

 

    이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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