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 정치와 멀어져야 하는 이유

[박창범의 닥터To닥터]

크레믈린에서 연설하는 리센코(맨 좌측). [사진=위키피디아]
한국에서 보이는 정치의 가장 큰 문제 중의 하나는 편 가르기와 흑백논리이다. 이 논리에 따르면 세상에는 수백 가지 빛깔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직 흑백으로만 구분하고 자기편은 무조건 잘한 일이고 남의 편은 무조건 잘못된 것이라 비난한다. 잘못과 오류를 범해도 인정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문제점을 지적하면 내부에서 총질하지 말라고 비난하고 왕따 시킨다.

이에 비하여 과학은 특정 조건에서는 누가 하더라도 같은 실험적 결과를 보이거나 논리적으로 잘 짜인 수학적인 계산이 제시되기 때문에 객관적이고 보편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과학적 진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배경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에 일반인들에게는 어렵게 느껴지고 잘 다가오지 않는다. 또한 이러한 전문가들조차 과학의 실험적 근거가 정말로 결정적인 근거인지 근거가 되는 이론적인 계산이 적절하게 이루어졌는지 등 실험결과나 이론의 해석에서는 의견이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과학적 논쟁이 과학의 객관성을 손상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과학의 객관성을 지켜주는 중요한 장치라고 할 수 있다. 과학이 진보하는 이유는 과학자들은 다른 과학자들의 주장의 타당성을 끊임없이 검증하고 확인하면서 오류를 수정하면서 과학지식을 향상시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런 이분법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정치와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과학을 접목시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이런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구소련의 생물학자 리센코(Trofim Denisovich Lysenko: 1898-1976)이다. 리센코는 옛 소련의 농업시험장에서 종자의 개량 연구에 종사했다. 그는 가을보리를 봄에 심으면 이삭이 패지 않는데 발아 직전의 보리를 0-4도에서 수십일 보관한 후에 심는 ‘춘화처리’를 한 후 뿌리면 봄에도 이삭이 정상적으로 나온다는 것을 발견했다. 리센코는 이렇게 개량된 종자가 형질이 완전히 변하여 후대의 종자도 봄 파종용 밀이 된다는 소위 ‘용불용설’을 주장했다. 이는 한 세대에서 획득된 형질이 유전이 된다는 것으로 획득형질이 유전되지 않는다는 멘델의 유전학 이론과 충돌하는 이론이었다. 게다가 리센코는 자신의 이론인 획득형질의 유전은 새로운 공산주의적 인간의 창조라는 당의 정치적인 입장과도 일치하고 소련의 공식 철학인 변증법적 유물론의 이념에도 부합하는 것이라고 하는 등 과학의 정치화를 주장하였다. 결국 리센코의 주장은 1948년 당의 공식적인 이론으로 채택됐고 스탈린의 추종자들은 그의 이론을 ‘부르주아 과학을 극복한 사회주의 과학의 탄생’이라고 선전하고 기존의 유전학, 식물학, 산림학 등을 부르주아 과학으로 비판하면서 수많은 유능한 과학자들을 소련과학아카데미에서 쫓아내었다. 이와 함께 과학자들이 정통유전학을 연구하거나 학생들에게 교육시키는 것이 금지했고, 리센코의 이론에 반대하는 과학자들은 파시스트나 부르주아로 간주해 체포하거나 비공개재판으로 처형했다. 하지만 소련은 리센코가 주장했던 춘화처리를 한 종자를 이용한 곡물증산에 실패했고 유전학연구에서 서구에 비해 뒤떨어지게 되었다. 이후 여러 과학자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리센코에 반대하는 증거를 내밀었고 결국 리센코는 흐루시초프의 실각과 함께 몰락했다. 이 사례는 과학의 독자적인 발전법칙이나 객관적인 성격을 무시하고 이를 정치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잣대로 멋대로 해석해 사회에 적용한 비극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리센코 사건은 단순히 과거 이데올로기 대립시대의 해프닝에 불과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오늘날과 같은 21세기 첨단과학기술의 시대에도 과학의 근본 성격에 대한 면밀한 고찰이나 객관적인 사실을 보다는 과학적 실험결과나 이론의 해석에서 항상 의견이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과학의 맹점을 이용하는 과학자들이 있다. 또 일부 정치인들이나 시민사회단체에 편승해 자신들의 편향된 이념성에 근거한 성급한 주장을 합리화시키는데 과학을 이용하는 이들도 아직 곳곳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역사적 사례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과학자들은 정치에서 한걸음 벗어나 성찰해야 한다. 과학의 정치화는 결국 과학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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