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는 애국심과 과학윤리 중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하나?

[박창범의 닥터To닥터]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최근 6.25 발발 70년을 앞두고 북한이 개성 연락사무소를 파괴하면서 인터넷에서 전쟁이나 무기에 관련된 기사가 많이 검색됐다. 내용의 상당수는 우리나라는 핵무기가 없지만 다른 재래식 무기는 북한을 능가하고, 이런 무기들은 효과적으로 사용하면 ‘적’들을 ‘섬멸’해 전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과학지식과 기술은 보편성을 특징으로 하기 때문에 과학자가 연구하는 학문에는 국경이 없다. 그래서 국경을 넘어 세계인으로서 의견교환을 하고 서로 협력해 실험을 하는 경우가 많다. 미국이나 중국, 혹은 북한에서 만들어진 과학적 이론이라고 하더라도 그 보편성을 훼손을 받지 않으며 한국의 과학자들도 미국, 러시아, 중국 과학자들과 서로 협력해 연구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또한 좋은 연구환경만 제공해준다면 유럽에서 미국으로, 미국에서 중국으로 옮겨가는 과학자들을 흔히 볼 수 있다. 하지만 인문학과 다른 가장 큰 차이점 중의 하나는 과학은 군사적인 목적에도 사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 국가 간 긴장이 높아지거나 전쟁이 발발한 상황이 되면 혹은 평시에도 과학자에게 닥치는 매우 어려운 문제가 있는데 “과학자(의학자를 포함한다)들도 국가가 필요로 하면 국가와 협력하여 살상무기나 공격무기를 만드는데 협력해야 하는가”라는 점이다.

이와 관련한 유명한 말이 바로 ‘과학에는 국경이 없지만 과학자에게는 조국이 있다’라는 말이다. 19세기 프랑스의 화학자이자 세균학자인 루이 파스퇴르가 남긴 말인데 2000년대 초반 우리나라에서 황우석 신드롬이 전국을 강타할 때 황우석 씨가 인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과학자도 한 나라의 국민이기 때문에 국가에서 하는 모든 일에 동참하고 협력해야 한다는 말로 들린다. 하지만 과학기술의 주요한 목적 중의 하나가 인간의 삶에 기여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이런 전쟁무기를 만드는데 과학자들의 지식을 사용하는 것은 이율배반적이기도 하다.

프리츠 하버(Fritz Haber 1868-1934)의 일화는 이런 딜레마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하버는 독일에서 태어난 유대인으로 수많은 실패를 거듭한 끝에 500도의 온도와 100 기압의 압력에서 철 촉매를 이용해서 질소비료의 주원료이며 유기물인 암모니아를 합성하는 방법을 개발한 공로로 1918년 노벨화학상을 받았다.

현재 전 세계의 농경지에 뿌려지는 질소비료의 약 40%가 이 화학자가 만든 방법으로 만들어지고, 전 인류가 섭취하는 단백질의 약 1/3이 질소비료에서 나오는데, 만약 질소비료가 없었다면 인류의 약 절반이 굶주린다고 하니 위대한 발명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하버의 노벨상 수상 소식이 전해지자 많은 논란이 되었는데 그 이유는 그의 또 다른 업적(?)때문이다. 그는 유대인이지만 자신의 조국인 독일을 사랑하는 애국자였다. 따라서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독일 정부와 적극적으로 협력하여 암모니아를 이용해 화약의 원료가 되는 질산칼륨을 제조하는 일을 맡았고 동시에 그의 과학적 지식을 이용하여 전쟁용 독가스를 개발하는 비밀부서의 책임자가 되어 세계 최초로 독가스를 개발했다. 이 독가스는 실제 전쟁에 사용되었다. 예를 들어 1915년 4월 22일 벨기에의 이프르에서 영국-프랑스 연합군과 독일군이 전투할 때 독일군이 연합군 진지를 향해 집중 포격을 가한 후 염소가스를 살포하였고 이로 인해 연합군 병사 5,000여 명이 염소가스로 인해 폐가 손상돼 사망하였고, 1만 5,000여 명이 가스에 중독됐다. 보고에 의하면 제1차 세계대전 중에서 독가스와 같은 화학무기로 사망한 병사는 10만여 명이었고 약 100만 명의 병사들이 가스중독으로 후유증을 앓았다고 한다. 결국 하버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전범으로 재판을 받았다. 또한 그가 발명한 치클론 가스는 제2차 세계대전 동안 강제수용소에서 자신의 동족인 유대인들을 죽이는 데 사용되었다.

이와 비슷한 사람이 핵물리학자 오펜하이머이다. 오펜하이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이 주도하고 영국과 캐나다가 함께 참여했던 맨해튼 프로젝트의 총책임자로서 세계 최초로 원자폭탄을 만드는 데 성공하였다. 미국은 원자폭탄을 일본에 떨어뜨려 태평양전쟁을 종식시키는 데 성공하였지만, 전쟁과 관련이 없는 수십만 명의 무고한 시민들이 죽거나 다치게 만들었다. 미국이 전쟁에서 승리했기 때문에 오펜하이머는 전범재판을 받지는 않았지만 원자폭탄을 만들었다는 속죄의식을 가지고 수소폭탄을 만들려는 국가정책을 목소리 높여 반대하는 바람에 스파이 혐의를 받아 자리를 잃고 정책의 일선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과학자들이 무기를 만드는데 참여할지에 대한 논란은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있었다. 2018년 세계 인공지능 및 로봇 연구분야 학자 50여 명이 A국립대학과 B방산업체가 공동으로 추진하는 인공지능 연구에 항의해서 A대학과의 관계를 끊겠다고 선언했다. 이들은 보이콧 공개편지를 통해서 “살상용 무기나 공격용 무기개발 등 인간윤리에 위배되는 연구나 통제력이 결여된 자율무기를 포함한 인간 존엄성에 어긋나는 연구활동을 수행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물론 A대학과 B방산업체는 즉각 반박했다. 양 기관의 협력이 결코 인명 살상용 무기를 연구 개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A국립대학은 국방인공지능융합연구센터의 설립목적은 살상용 무기 또는 공격용 무기개발이 아니고 방위산업 관련 물류시스템, 무인 항법, 지능형 항공훈련 시스템 등에 대한 알고리즘 개발 등이라고 해명했다. 대학 측에서는 “대학에서 무기를 연구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연구센터가 잘못 번역돼 일어난 해프닝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하지만 위 해외 연구자들은 연구협력 및 교류를 중단하겠다는 방침을 공식적으로 철회하지는 않았는데 이는 이런 인공지능기술을 군용로봇과 드론에 적용하면 언제든지 공격살상무기가 될 개연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그렇다면 과학자들은 국가나 방산업체에서 무기개발요청이 들어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무기개발을 거부하면 북한을 비롯한 적국과의 무기경쟁에서 앞서게 될 기회를 포기하는 것이며 극단적으로는 국가의 명을 거역하는 반역자로 몰릴 수도 있다. 현실적으로는 연구비와 같은 연구자로서의 경제적 이익을 포기하는 것이기도 하다. 과학자들은 어떤 길을 가야 합리적인가? 과학자들은 과연 애국심과 보편적 과학윤리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 것인가? 여러분의 의견을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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