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을 만져봐”… 심장무정지수술로 3000명 살린 대가

[대한민국 베닥] ㉑심장수술 분야 세브란스병원 유경종 교수

최근 화제를 뿌리다 종영된 tvN의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김준완 교수(정경호 분)는 수술실에서 실습생들에게 갓 수술에 성공한 아기의 심장을 만져보게 한다. 손가락 마디를 타고 온몸으로 전해지는 박동! “교수님, 저 흉부외과 하겠습니다.”

준완은 실습 시절 똑같은 경험을 떠올린다. “자두만한 심장이 이렇게 힘차게 뛸 줄 몰랐습니다. 멈췄던 아기 심장을 교수님이 다시 뛰게 해줬어요!”

드라마 흉부외과 주인공의 실제 모델인 강남세브란스병원 송석원 교수는 ‘유키즈온더블록’ 현실판 ‘슬의생’ 특집에 출연해 스승이 심장을 만지게 했던 때를 떠올리며 말했다. “흥분했습니다. 뛰는 심장이 너무 따뜻했어요. 스승님이 제게 심장처럼 마음이 따뜻한 의사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그 스승이 ‘심장 무정지 수술’의 세계적 대가인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유경종 교수(60)다. 고교 때 심장을 살리는 의사가 되기로 마음먹었고, 아무리 힘들어도 흔들리지 않으며 환자들을 살리면서 가슴 따뜻한 제자들을 길러왔다.

유 교수는 마늘과 ‘영미 컬링’으로 유명한 경북 의성군 농가에서 태어난 ‘흙수저 촌사람’이다. 집에는 청소년 때까지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교육열이 뜨거운 어머니가 초등학교 5학년 때 대구에 데리고 가서 두고 오는 바람에 꼬맹이 때부터 혼자 하숙하며 전깃불 아래 공부했다. 중고교 때에는 서울의 누나 집에서 공부했다.

유 교수는 고교 1학년 때 둘째 형의 심장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일곱 살 터울인 둘째 형은 아버지로부터 “6남매 중 가장 똑똑하다”는 말을 들었지만 어릴 적부터 양 무릎을 비롯해서 걸핏하면 몸이 아팠고 학교에 결석할 수밖에 없었다. 성적은 떨어졌지만 원인을 모른 채 지내다가, 군대에서 쓰려져 군병원에서 심장 이상 진단을 받았다. 어릴 적 감염된 A군용혈성연쇄상구균이 온몸을 괴롭히는 ‘류마티스 열’임이 뒤늦게 밝혀진 것.

형의 심장 판막이 손상됐다는 소식에 집안에 그늘이 드리웠고 유 교수는 이때 흉부외과 의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이를 이루기 위해서 한 눈 팔지 않고 공부해서 연세대 의대에 들어갔고, 대학에서도 우수한 성적을 냈다. 1985년 본과 4학년 때 흉부외과 지원 면접에서 흉부외과 과장인 강면식 교수로부터 “성적이 이렇게 성적이 좋은데 흉부외과에서 고생하려냐?”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뜻을 굽히지 않았다.

당시에는 인턴 때 10개월을 지망한 전공과에서 근무하는 ‘픽턴(Fixed Intern)’ 제도가 있어, 유 교수는 4년 10개월을 전공의로 근무했다. 픽턴 시작하자마자 하루 2~4시간 자면서 병원을 뛰어다니는 바람에 1주 만에 양 발바닥에 물집이 생겼다. 밤에 당직실에서 바늘로 물집을 터뜨리고 다시 뛰어야 했다. 그래도 심장을 다시 뛰게 할 수 있다는 기쁨에 즐겁기만 했다.

전공의 마칠 때까지 1주일 10시간 외출 외에는 병원에서 생활했다. 새벽 5시 중환자실 환자를 체크하면서 하루를 시작했고, 세끼를 먹을 시간조차 없었다. 식사는 밤 10시에 당직실에 돌아와서 라면 2~3끼로 끼니를 때우는 것이 전부였다. 영양을 보충하려고 주말에 외출 나가면 한 끼에 고기 4~5인분을 먹었다. 어느 날엔 동료 전공의 4명과 20인분을 주문했더니, 식당 주인이 “장정 네 명이 2인분을 시키다니…”하다가 주문량을 확인하곤 미소를 지었다. 추가 주문이 이어지자 벌어진 입을 귀에 걸었다. 전공의 시절 매일 배고프고, 졸리고, 피로했지만 수술실에서 다시 뛰는 심장의 박동을 느끼며 즐겁게 뛰어다녔다.

“하나 억울한 것은 있습니다. 매주 토요일 2~3시에 일이 끝났는데 친구들과 저녁에 만나기로 해서 ‘잠깐 눈 붙이고 가야지’ 했다가 한밤중에 깨어났을 때가 몇 번 있었죠. 그때는 휴대전화가 없어서 연락도 못했고…. 다행히 모두가 고생한다며 이해해주긴 했지만, ㅎㅎㅎ”

둘째 형은 유 교수가 수술하지는 못했다. 전공의 2년차 때 스승 조범구 교수가 형의 판막증을 수술했고, 형은 건강을 회복해 ‘꿀 복숭아’로 유명한 과수원을 운영하고 있다. 전공의 2년 때엔 이종국 교수의 연구실에 파견돼 심장이 체외에서 일정 시간 뛸 수 있게 하는 ‘랑겐도르프 시스템’에서 쥐 심장을 대상으로 시판 중인 심정지액과 연세대에서 개발한 제품의 효과를 비교한 논문을 《대한흉부외과학회지》에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흙수저 촌놈’이 교수가 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군의관 복무 뒤 “1년만 전임의로 근무하자”고 마음먹고, 당직실도 없이 사무실 소파에서 기거하면서 환자들을 살렸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외면하지 않았다. 미국 알버트아인슈타인 의대 출신으로 국내에 심장·폐 마취를 전파한 홍용우 교수가 적극 추천해서 모교에 교수로 남게 됐다.

유 교수는 1998년 캐나다 토론토종합병원에 세포치료를 연구하기 위해 연수 갔다가 ‘심장무정지수술’이라는 세계 학회의 새 경향을 접했다. 당시까지는 심장수술은 심장을 정지시키고 인공심폐기를 가동시킨 상태에서 시행했지만 심장 손상, 뇌졸중 위험 등 부작용이 따랐다.

심장무정지수술은 제대로만 하면 부작용을 크게 줄일 수 있는 ‘신세계’였다. 유 교수는 이 수술을 한다는 토론토대 의대 교수가 ‘심장무정지수술’이 예정돼 있으면 어김없이 수술실로 향했다. 그러나 그곳 교수가 온갖 핑계를 대며 ‘정지 수술’을 하는 바람에 실제 참관하지 못하고 귀국해야만 했다.

유 교수는 논문을 보면서 독학할 수밖에 없었다. 잠깐 눈을 붙이다가 무정지수술을 하는 꿈을 꿀 정도였고, 잠시라도 시간이 나면 수술 장면을 연상하면서 바늘로 심장을 꿰매는 ‘가상연습’을 했다. 마침내 2000년 12월 심근경색이 생긴 60세 여성에게 심장 무정지 수술에 처음으로 성공했다. 혼자 준비하는 사이 세종병원의 이영탁 박사가 먼저 성공하는 바람에 ‘국내 최초 타이틀’은 놓쳤지만, 환자를 위해 마취과 의사들을 설득해서 가능하면 무정지 수술을 시행했다. 2002년부터는 아무리 어려운 환자도 무정지수술을 시행했다.

심장이 펄떡펄떡 뛰는 상태에서 1~2㎜의 혈관을 잇는 수술은 웬만한 지식과 실력이 없으면 불가능하기 때문에 세계적으로도 100% 무정지 수술은 극히 드물다. 유 교수는 3,000여명을 100% 무정지 수술로 살렸으며, 수술사망률도 0.7%여서 미국의 2~5%보다 훨씬 낮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세브란스병원에는 심장 전문 마취과 의사가 있어서 수술 성공률을 높이는 데 도움을 받고 있다.

유 교수는 국내에서 줄기세포 치료를 도입한 선구자이기도 하다. 그는 2003년 국내 최초로 말기 심부전증 환자 4명에게 수술과 동시에 환자의 몸에서 추출한 혈액줄기세포를 이식하는 치료로 심장기능을 회복시켰지만, 연구지원이 중단돼 이 치료법을 현실화하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 그는 앞으로 줄기세포 치료로 수술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을 과제로 삼고 있다.

유 교수는 환자를 최대한 빨리 수술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토론토종합병원에서 연수할 때 심장동맥환자가 평균 6개월 기다리다가 진료실에 오지도 못한 채 숨지는 사례를 보면서 이같이 결심했다. 응급환자가 몰리면 하루 5~6명을 수술하기도 한다. 바깥에서 만난 친구 지인의 안색을 보고 맥박을 잰 뒤 다음날 병원에 오게 해서 심장마비 일보직전의 환자를 살리기도 했다.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살 확률이 50%밖에 안 된다는, 일밖에 모르던 중소기업 사장을 살려내 ‘기부 천사’로 제2의 삶을 살게끔 도와주기도 했다.

유 교수는 또 초진 환자는 20분, 수술한 환자는 10분 정도 진료 보면서 환자의 궁금증을 최대한 풀어주려고 애쓴다. 환자가 불안해서 스트레스가 쌓이면 병세가 나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유 교수는 틈날 때마다 제자들에게 “환자는 가족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부모, 형제라고 생각하면 힘이 들더라도 살릴 수 있다”고 당부한다. 그의 제자들은 스승이 가족을 살리기 위해 흉부외과 의사가 됐고, 환자를 볼 때 가족처럼 대한다는 것을 생생히 지켜봐왔기에 스승의 일거수일투족을 닮으려 노력한다. 강남세브란스병원 송석원 교수가 실습생에게 심장을 만지게 한 것도 이 때문이다.

대한민국 베닥은 의사–환자 매치메이킹 앱 ‘베닥(BeDoc)’에서 각 분야 1위로 선정된 베스트닥터의 삶을 소개하는 연재입니다. 80개 분야에서 의대 교수 연인원 3000명의 추천과 환자들의 평점을 합산해서 선정된 베스트닥터의 삶을 통해 참의사의 본모습을 보여드립니다. 여러분의 관심과 참여는 베닥 선정을 통한 참의사상 확립에 큰 힘이 됩니다.

 

이성주 기자 stein33@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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