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겨울과 봄, 치열했던 숨겨진 이야기들

[사진=JVM_PSW/gettyimagesbank]
중국 우한에서 코로나 바이러스가 번지기 시작한 지난해 12월, 이는 그저 딴 나라 이야기에 불과했다. 국내에 첫 확진자가 발생한 1월 역시 여전히 코로나19 감염은 남의 이야기였다.

이후 국내에 1만 명 이상의 확진자가 발생한 지금은 어떨까? 최근 이태원과 홍대 등의 유흥시설에 사람들이 넘쳐나면서 다시 소규모 집단감염이 발생했다. 안타깝게도 대구의 대규모 집단감염 발생 이후에도 여전히 코로나19는 많은 사람들에게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다.

하지만 올 겨울과 봄, 대구에서 확진자들과 그들의 초밀접 접촉자로 함께 했던 의료진들에게 벌어진 일들은 전장처럼 치열했다.

“그날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증상이 덜하거나 더하곤 했는데, 한번은 입실 30분 정도가 지났을까 숨이 막혀오며 당장 모든 보호구를 탈의하고 뛰쳐나가야만 살 수 있을 것 같은 극도의 공포감과 함께 온몸에 소름이 돋는 듯한 한기가 들었던 적이 있었다.”

“레벨D 방호막만 입었을 뿐인데도 땀이 나고, 숨이 막히고, 괜히 몸 이곳저곳이 가려웠다. 분명 바깥은 추운 날씨였는데, 숯가마 한가운데 있는 것처럼 땀이 줄줄 흐르고 호흡이 가빠왔다. 고글까지 습기가 차서 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도 종종 있었다.”

전자는 칠곡경북대학교병원 음압중환자실 이은주 간호사, 후자는 같은 병원 63병동 박지원 간호사의 대구 현장에서의 경험담이다. 코로나19 환자들과 밀접 접촉하는 의료진은 레벨D 방호복을 입는다. 우주복처럼 온몸을 뒤덮는 흰색 방호복을 입은 의료진의 모습은 여러 매체를 통해 우리들에게도 낯설지 않은 모습이다. 그런데 방호복을 착용하는 동안 의료진이 느끼는 고통은 상상 이상이다. 방호복 내부는 사우나처럼 덥지만 방호복을 착용하고 근무하는 2시간 동안 의료진은 물을 마시거나 화장실에 가는 일조차 불가능해진다. 내부에 습기가 차 고글이 뿌예지면 앞이 제대로 보이질 않아 공포감은 더 커진다. 고글과 마스크 등으로 짓눌린 피부는 가렵고 아프다. 이 상태에서 환자들의 몸과 마음을 돌보고, 청소나 폐기물 처리 등의 고된 노동도 해야 한다. 방호복을 입고 벗는 일도 과제다. 옷을 벗을 땐 오염된 바깥 부분이 몸에 닿지 않게 돌돌 말며 천천히 벗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은 엄청난 체력 소모를 요하며 두통, 메스꺼움, 심지어 공황발작 증상을 일으키기도 한다.

코로나19 최전선에 있는 사람들은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운 육체적 한계치를 끌어올리며 생활하고 있다. 환자들의 상황은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다. 격리병동에 갇혀 있는 동안 느낄 적적함과 답답함을 막연하게나마 상상할 수 있지만 그들이 실질적으로 느끼는 두려움과 고통은 그 이상이다.

“코로나 사망 환자는 몸에 주렁주렁 달린 주사나 몸에 접착된 모니터용 테이프, 산소 및 소변 도관 등 온갖 부착물도 떼지 않고 바로 봉인하는 시신처리를 해야 하므로 고인에 대한 존중과 예의가 없는 것이 못내 마음이 아프다. 사망자는 바로 화장을 한다니, 가족들의 비통한 마음은 더할 것이다.”

코로나19 사망 환자를 보낸 경북대학교병원 506 서병동 배은희 수간호사의 코로나 병동에 대한 기억이다. 코로나19 환자는 병의 특성상 보호자조차 면회가 차단된다. 중증으로 사망에 이른 경우에는 감염 위험을 차단하기 위해 주사 바늘, 도관 등도 그대로 사망환자와 함께 봉인된 채 화장 절차에 들어간다. 마지막 가는 길을 이렇게 보내야 한다는 사실에 의료진이 느끼는 안타까움과 허탈함, 가족들이 경험해야 할 비통함은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아직도 코로나19를 남의 이야기로 생각하며 위생수칙조차 좌시하는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이재태 교수를 포함한 의료인 35인은 ‘그곳에 희망을 심었네(이재태 엮음)’라는 코로나19 현장 기록을 남겼다. 위 모든 이야기들은 이 책에서 보다 자세히 소개된다.

확진자인 아버지를 따라 입소한 8세 아이, 양성 판정을 받고 입원한 동안 부친 역시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돼 사망했으나 퇴원까지 이 사실을 알지 못했던 안타까운 사연, 대다수의 의료진이 고군분투하는 상황에서 환자 접촉 진료를 거부한 공중보건의의 씁쓸한 태도, 대학교 기숙사를 환자 생활치료센터로 사용하며 불거진 항의와 마찰, 코로나19라는 위기의 상황에 등장한 난세 영웅들에 대한 이야기도 만나볼 수 있다.

    문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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