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종양, 후유증은 ‘뚝’ 생존기간은 2배로

[대한민국 베닥] ⑮뇌종양 분야 세브란스병원 장종희 교수

“삶에 희망이 생겼어요.”

얼마 전까지 희망도, 낙도 없다며 수심에 잠겼던 30대 뇌종양 환자의 얼굴이 환해졌다. 눈에는 빛이 났다. 환자는 28세 때 암이 발견돼 수술 받았다가 3년 만에 재발, 수술과 방사선치료를 받았고 1차 항암제를 맡고나서 임신 사실을 알게 됐다. 몸이 붓고 구역질이 있었지만 치료 후유증으로 알았는데, 임신 22주였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신경외과 장종희 교수는 축하의 인사를 하면서도 가슴이 먹먹해졌다. 환자의 암은 재발이 잦고, 재발이 거듭될수록 예후가 좋지 않은 종류였고, 항암제 치료까지 받았으니…. 산부인과 주치의와 의논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태아에게 장애가 생겼을 가능성이 크고, 설령 아기가 별 탈 없이 태어나도 엄마가 암에 굴복하면 힘든 유년을 보낼 수도 있다며 임신중절의 의견이었다.

그러나 밝은 얼굴의 환자는 출산의 뜻을 꺾지 않았다. 환자는 4개월 이상 치료를 멈추고 아들을 분만한 뒤 5차례 항암치료를 받았다. 다시 찾은 삶의 희망이 가져온 기적일까, 환자는 10년째 재발하지 않고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 아이는 똑똑하고 도담도담 튼튼하게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다.

장 교수는 “그 환자는 암과의 싸움에서 병을 이기려는 의지가 얼마나 중요한지 가르쳐줬다”면서 “아무리 확률이 낮아도 의사가 최선을 다해 적극적으로 환자를 치료해야 한다는 것을 가슴에 새기게 됐다”고 말한다.

장 교수는 한 해 악성 뇌종양 환자 150명, 양성 뇌종양 250명, 신경계 림프종 30명 등 500명 가까이 수술해서 환자의 생명을 연장시키거나 건강을 찾아주는 의사다. 특히 교모세포종을 비롯한 악성뇌종양은 재발이 잦고 예후가 좋지 않기 때문에 비보(悲報)에 가슴 베이면서도 한 명이라도 더 살리고, 몇 달이라도 더 살리게끔 전력을 다하고 있다.

특히 뇌 구조를 컴퓨터로 정확히 파악한 뒤 광범위하게 암 조직을 떼어내는 ‘최대안전수술’과 환자를 수면마취로 재운 뒤 종양을 떼어낼 때 환자를 깨워 대화하면서 수술해서 언어장애, 신체마비 등의 후유증을 줄이는 ‘각성수술’의 세계 최고 권위자로 꼽힌다. 장 교수가 이끄는 세브란스 뇌종양 치료진의 치료율은 세계 평균보다 월등히 높다.

장 교수는 1985년 연세대 의대 입학 면접 때 교수로부터 “어느 과 의사가 되고 싶나?”는 말을 듣고 조건반사적으로 “신경외과!”라고 대답했는데, 당시 왜 그랬는지 지금도 의아하지만 천직이 됐다. 본과에서 해부학 실습을 하다가 친구랑 어느 과에 갈지 의견을 나누면서 “○○과는 빼고, △△과는 흥미 없고, ××과는 싫고…,” 결국 남은 것은 정형외과와 신경외과였는데 실제 친구는 정형외과, 장 교수는 신경외과 의사가 됐다.

장 교수는 본과 때 일찌감치 “나는 신경외과 의사다!”를 외치고 인턴 때 1년 가운데 6개월을 신경외과에서 지냈다. 살벌한 분위기에다 잠을 못자고 육체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다른 과로 옮겨야 하나 흔들린 적도 있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은 신경외과 의사였다. 교수들에게는 불호령을 받고 고개를 떨어뜨리다가도 응급실에 오면 지휘자가 되는 전공의 선배들을 보면서 마음을 다잡은 것.

전공의를 마치고 군의관 복무 후 전임의 때 국내에 뇌정위기능수술을 보급한 정상섭 교수(현 분당차병원)의 문하에서 간질과 뇌신경 운동장애 환자를 수술했다. 미국 세인트루이스의 워싱턴대학교 의대 간질기초연구실로 연수를 다녀오기도 했지만 간질 수술 환자가 급격히 줄면서 뇌종양도 맡게 됐다.

처음에는 간질 수술과 함께 종양 수술, 감마나이프 수술 등을 함께 하다가 뇌종양이 ‘주전공’이 됐다. 국내 처음으로 뇌두개저 암 수술에 성공한 ‘뇌종양 수술의 세계적 대가’ 이규성 교수가 2004년 ‘뇌하수체 종양 수술의 달인’ 김선호 교수(현 이대서울병원)와 함께 뇌종양클리닉을 개설, 전국에서 환자가 몰려오자 병원 신경외과 차원에서 장 교수를 구원투수로 보낸 것.

그러나 장 교수 이름을 알고 찾아오는 환자는 없었다. 두 교수가 자신의 세부전공이 아닌 환자를 보내면 관련 논문을 읽고 또 읽고, 시뮬레이션을 한 뒤 수술실로 향했다.

“첫 한 해 20명 수술했습니다. 입원 환자도 나중에 ‘이규성 교수로 바꿔줄 수 없겠느냐?’고 했지요. 최선을 다하니까 3년째부터는 제 이름으로 예약을 하는 환자들이 하나둘씩 생기기 시작하더군요.”

장 교수는 이와 함께 국내 뇌종양 학회나 모임에 빠짐없이 찾아갔다.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며 제자들에게 “환자가 없다고 불평하지 말고, 자신을 단련하는 기회로 삼아라. 나중에 환자가 너무 많아서 힘들 때도 온다”고 가르친다.

장 교수는 2010년 캐나다 토론토대의 ‘뇌종양 분야의 구루’ 제임스 루트카 교수 밑에서 실력을 쌓고 연구시스템을 배운 뒤 귀국했다. ‘스승’ 이규성 교수가 강남세브란스병원으로 자리를 옮김에 따라 신촌을 책임져야만 했다.

장 교수는 대한뇌종양학회 최우수논문상, 아시아신경종양학회 젊은 의학자상 등을 받으며 뇌종양 연구에서 두각을 나타내던 강석구 서울성모병원 교수를 스카우트해서 ‘임장연강(임상은 장종희, 연구는 강석구) 체제’를 만들었다. 또 신경외과, 영상의학과, 병리학과, 핵의학과, 방사선종양학과, 종양내과 등의 의사와 연구자들이 매달 한 번 토요일에 만나서 최신 연구결과를 공유하고 환자 치료방법을 찾는 ‘뇌종양연구모임’을 발족시켜 운영하고 있다. 안정용 교수와 함께 뇌종양 조직 은행을 만들어 뇌종양 연구의 산실이 되게끔 했다.

뇌종양은 수술 절제 정도에 따라 생존율에 차이가 있으므로 얼마나 안전하게 많은 조직을 떼어내느냐가 수술 예후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장 교수는 ‘최대안전수술’과 ‘각성수술’에다가 수술 부위와 주위의 뇌 조직과 기능을 지도화(Mapping)하고 환자의 치료부위를 정확하게 찾는 시스템 등을 통해 생존율은 높이고 후유증은 줄여왔다.

뇌교종의 생존기간은 세계 평균이 수술 후 11개월이지만 세브란스병원에서 각성수술을 받은 환자는 26개월이다. 뇌교종 환자의 13~27.5%에게서 영구적 언어장애나 신체마비가 발생하던 것을 10% 이하로 줄였다. 뇌종양 가운데 악명 높은 교모세포종의 경우, 2년 생존율 45%로 세계 평균 30%를 훨씬 뛰어넘고, 5년 평균 생존율은 세계 10%이지만 20%에 육박하고 있다.

“제가 전공의 때만 해도 수술을 하다가도 교모세포종으로 판명 나면 중단하기까지 했지요. 당시엔 수술 뒤 평균 2~3개월 살았지만, 지금은 평균 2년 가까이 살면서 가족과 함께 여생을 정리하도록 돕고 있습니다. 훨씬 오래 사는 환자도 나오고 있습니다.”

장 교수는 의사가 환자와 가족에게 병 상태를 제대로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뇌종양은 재발 때에도 상태가 심각할 때까지 증세가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환자가 수술과 방사선치료를 받고 “괜찮겠지” 하면서 검사를 제대로 안 받다가 갑자기 악화돼서 찾아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런 경우를 줄이기 위해서 환자가 낙심하더라도 재발 위험과 예후를 솔직히 얘기해야 한다고 믿고, 차근차근 설명한다. 환자의 한숨소리를 들어야 하는 것은 고역이지만, 환자를 위해서 그 고통도 감내하는 것이 의사의 숙명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환자들이 평균적 예후보다 조금이라도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밤늦게까지 연구실 불을 밝히고 있다.

대한민국 베닥은 의사–환자 매치메이킹 앱 ‘베닥(BeDoc)’에서 각 분야 1위로 선정된 베스트닥터의 삶을 소개하는 연재입니다. 80개 분야에서 의대 교수 연인원 3000명의 추천과 환자들의 평점을 합산해서 선정된 베스트닥터의 삶을 통해 참의사의 본모습을 보여드립니다. 여러분의 관심과 참여는 베닥 선정을 통한 참의사상 확립에 큰 힘이 됩니다.

이성주 기자 stein33@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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