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베닥] 코로나19 탓 학회 취소되자 ‘세계적 의사’가 한 일

⑬류마티스 질환 한양대병원 배상철 교수

한양대 류마티스병원 배상철 교수(61)는 3월 초 벨기에 브르흐에서 열릴 예징이었던 유럽루푸스학회에 참석하기 위해 진료 일정을 맞춰놓았다. 코로나19 탓에 학회가 취소됐다는 연락을 받자 모처럼 여유 있게 연구 과제를 점검하려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초진을 받기까지 1년 이상 기다려야 하는 환자들이 눈에 밟혔던 것.

그는 대기환자 가운데 응급도, 중증도를 검토해서 30여명에게 급히 연락했다. 원래 입원치료받기로 한 병원에서 코로나19 확진환자가 생겨 발을 동동 구르고 있던 20대 여성 한은희 씨(가명)는 극적이었다. 한 씨는 면역계가 신장 조직을 공격해서 온몸이 퉁퉁 부은 상태였다. 다리는 코끼리 다리처럼 부은 채 피부 곳곳이 터져 진물이 흐르고 있었다. 배 교수는 한 씨에게 신장약, 이뇨제를 투여해 부기를 빼면서 향균제, 항염증제와 함께 면역 조절 약들을 투여했다. 환자의 몸에서 시나브로 부기가 빠지고 혈색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배 교수는 류마티스관절염과 루푸스 환자의 연구와 진료에서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는 의사다. 수많은 환자들이 사경을 헤매거나 온몸이 파괴된 채 병원을 찾아서 건강한 모습으로 퇴원한다. 인터뷰를 하던 날 저녁에 “손이 저리다”고 전화로 연락 온 연락 온 손은정 씨(가명·36)도 그런 환자였다.

손 씨는 그야말로 ‘지옥 문턱’에서 배 교수를 찾았다. 2015년 전국의 병원을 떠돌다가 처음 찾아왔을 때엔 심장 콩팥 혈관 근육 등, 성한 데가 없었다. 혈소판, 백혈구의 수치도 아슬아슬했다. 스테로이드 약의 부작용으로 뼈가 약해져 척추에 금이 가 있었다. 걷지도 못했고 움직일 때마다 통증 탓에 얼굴을 찌푸렸다. 피부가 썩는 것이 되풀이돼 온몸에는 성형외과 수술 자국이었다. 의사들을 원망하고, 자신을 비관했다. 배 교수는 “함께 이길 수 있다”면서 다독이며 면역조절제 병합요법를 실시하며 당시 응급임상시험 허가를 받은, 줄기세포 투여 치료를 두 차례 병행했다. A씨는 조금씩, 조금씩 건강을 되찾아 지금은 하루 스테로이드 제제 반 알을 복용하며 ‘건강인’으로 지내고 있다.

배 교수는 의대에 다닐 때만 해도, 자신이 류마티스내과에서 루푸스를 볼 것이라고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는 전공의 때 심장내과에 가려고 영어판 교과서와 학술지를 번역하며 정리하다가 김성윤 교수의 설득에 마음을 바꿨다. 김 교수는 미국에서 류머티스 질환을 공부하고 귀국해서 방송국과 언론사를 돌아다니며 “주부들이 아픈 것은 신경통 탓이 아니라 류머티즘 때문”이라고 알렸던 ‘류머티즘 전도사’였다. 김 교수가 ‘류머티즘의 세계’로 이끌었다면, 미국 하버드대 의대 브리검 앤 우먼스 병원의 매튜 리앙 교수는 ‘루푸스의 세계’로 인도했다.

배 교수는 1998년 류머티즘을 철저히 공부하기 위해 세계 최고 대가였던 리앙 교수의 문하로 연수를 갔다. 스승은 하나라도 더 배우려는 ‘동양인 제자’에게 하버드대 보건대학원에서 약물경제학을 공부할 것을 권고했다. 제자는 ‘도대체 잠은 언제 잘까?’ 궁금할 정도로 류머티즘에 대해 연구하면서 역학, 통계학, 약물경제학, 의료 질 관리학, 의료윤리학 등을 공부했다. 병원의 온갖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리앙은 한양대 총장에게 “배 박사가 모든 과목에서 A를 받았다. 연수기간을 1년 연장해 달라”는 편지를 보냈다. 스승은 배 교수에게 젊은 여성이 잘 걸리는 루푸스가 얼마나 중요한 병인지 깨우쳐줬고, 세계 최고 전문가 모임 슬릭(SLICC)의 위원 30명에 추천했다.

배 교수는 1998년 ‘미국의 최신 지식’으로 무장해서 귀국, 지금까지 류머티스 관절염 환자 4,000여명, 루푸스 환자 2.000여 명을 치료해왔다. 또 하버드대 보건대에서 공부한 것을 바탕으로 보건복지부, 식품의약품안전처,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한국보건의료연구원 등에서 보건의료 정책이 제대로 수립되고 시행되도록 돕는 역할을 했다.

배 교수는 2005년 한양대 류마티스병원의 원장으로 취임, 무려 14년 동안 재직하면서 병원 행정, 진료, 연구의 세 바퀴를 성공적으로 굴렸다. 그는 국내 처음으로 세세부(細細部) 전공을 도입하고 10개의 클리닉을 개설 운영하면서, 병원이 ‘류마티즘 분야의 4차병원’으로 불리게끔 이끌었다. 3차병원인 대학병원들이 환자들 의뢰한다는 뜻에서 이런 별명이 붙은 것.

그는 또 2008년부터 보건복지가족부 지정 류마티스임상연구센터의 센터장으로 전국 주요병원 30여 곳의 임상연구를 주관하고 있다. 배 교수는 특히 연구 설계를 짜서 환자들을 추적 조사하는 ‘코호트 연구’에서 세계적 성과를 내고 있다. 배 교수의 루푸스 코호트에는 1500명, 류마티스 관절염 코호트에는 2700명의 환자가 등록돼 있으며 여기에서 나오는 연구결과와 각종 데이터들은 국내외 학자들의 ‘교과서’와 ‘참고서’ 역할을 하고 있다.

배 교수는 미국에 처음 갔을 때 논문 검색 프로그램에서 자신의 논문을 검색했다가 단 한 건도 안 나와서 얼굴이 후끈거렸지만, 지금은 국내 학술지에 200여 편, SCI 등재 국제학술지에 475편의 논문을 발표한 세계적 학자로 올라섰다.

특히 유전자와 관련한 숱한 연구 성과를 냈다. 류마티스 관절염, 루푸스와 관련된 수많은 유전자를 발견하거나 특성을 규명하고 특정 치료약제들이 유전자에 미치는 영향을 밝혀내서 《네이처》, 《류머티즘 회보》, 《인간분자유전학(Human Molecular Genetics)》, 《관절염과 류머티즘(Arthritis and Rheumatism)》 등 최고 권위의 학술지에 발표했다.

배 교수는 환자들에게 새 치료법을 적용해서 한 명이라도 더 살리는 데에도 적극적이다. 2015년부터 줄기세포를 이용한 루푸스 치료 분야를 개척하고 있으며, 2017년부터는 미국, 영국의 연구진과 함께 ‘멀티 오믹스(Multi-Omics) 분석’에 따른 약 개발에 매달리고 있다. 기존의 유전체 분석을 넘어 유전체, 후성유전체, 전사체 등에 대한 다양한 데이터를 분석해서 약을 개발하는 것이다.

배 교수는 최근 캐나다 브리티시 콜롬비아 대학교의 애스람 애니스 교수(보건경제학 전공)와 함께 대화하다가 “40대에 연구와 진료의 토대를 구축해야 비범한 의사가 될 수 있고, 50대 이후에는 미래에 도움이 될 만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는 40대에 구축한 토대 위에서 진료와 연구에 정진한 결과로 송촌 지석영 의학상(2006년), 한미 자랑스런 의학상(2010년), 분쉬 의학상(2018년), 한양대 최우수 교수상(2002년, 2007년) 등 숱한 상을 받았으며 까다로운 심사과정을 거치는 것으로 유명한 대한민국 한림원 및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정회원으로 위촉됐다. 최근 한양대류마티즘연구원 원장을 맡은 것은 자신의 연구 경험을 후학들에게 공유하는 것이 류머티즘 질환을 극복하는 데 도움을 줄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세계루푸스학회의 차기 회장을 맡은 것도 같은 맥락에서이다.

배 교수는 자신과 동료 학자들의 유전자 연구를 바탕으로 류머티스 질환이 더 이상 난치병이 아닌 세상이 눈앞에 펼쳐질 것이라고 믿으며, 환자들을 진료하고 있다. 오믹스 분석과 줄기세포 연구는 이 날을 앞당기는 데 기여할 것으로 믿는다. 그날에 앞서 환자가 허무하게 떠나는 것을 막는 것은 중요한 숙제다.

그는 난치성 환자를 마주칠 때마다 “어떤 길이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가?”를 되새긴다. 심장, 신장 등에 심각한 문제가 생겨 예후가 좋지 않아 보일 때 어떤 길이 진정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지를 자신에게 묻고 또 묻고 치료법을 결정한다. 중증 루푸스 환자는 4, 5개 과의 협진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굳이 한양대병원에서 급히 치료할 필요가 없다면, 지금 다니는 병원에서 치료할 것을 권하기도 한다. 국내 연구와 진료 수준이 세계 최고 수준으로 상향평준화된 것은 ‘내 환자’를 고집하지 않게끔 해주고 있다.

배 교수는 약물경제학 전공자답게 환자의 경제 사정과 가족의 지원 등도 따져서 환자에게 최적의 치료를 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인터넷에서는 이런 노력에 감사해 하는 환자나 보호자들의 글을 어렵지 않게 찾을수 있다. 특히 배 교수가 혼신을 다해서 약을 골라 치료하는 것에 대해 감사하는 글들이 적지 않게 눈에 띈다.

대한민국 베닥은 의사–환자 매치메이킹 앱 ‘베닥(BeDoc)’에서 각 분야 1위로 선정된 베스트닥터의 삶을 소개하는 연재입니다. 80개 분야에서 의대 교수 연인원 3000명의 추천과 환자들의 평점을 합산해서 선정된 베스트닥터의 삶을 통해 참의사의 본모습을 보여드립니다. 여러분의 관심과 참여는 베닥 선정을 통한 참의사상 확립에 큰 힘이 됩니다.

 

    이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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