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방 ‘악마의 공범들’ 어떻게 해야 하나?

[이성주의 건강편지]

제 1400호 (2020-03-26일자)

악마를 보았다, 평범한 악마성을 보았다

우리들의 적은 늠름하지 않다
우리들의 적은 커크 더글러스나 리처드 위드마크 모양으로 사나웁지도 않다
그들은 조금도 사나운 악한이 아니다
그들은 선량하기까지도 하다
그들은 민주주의를 가장하고
자기들이 양민이라고도 하고
자기들이 선량이라고도 하고
자기들이 회사원이라고도 하고

-김수영의 ‘하……그림자가 없다’ 앞부분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의 모습을 보고 악마가 무엇인지 헷갈립니다.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너무나 평범한 생김새에 섬뜩합니다. 전문대학 학보사 기자로 활동하며 학교 측에 성폭력 예방을 위한 노력을 더 촉구하는 기사를 썼고, 봉사단체 팀장으로도 일했다니….

‘악마의 파티’에서 광란의 춤을 춘 추종자들이 3만 명에서 30만 명에 이른다니 몸이 부르르 떨립니다. 몇 십 만원에서 150만원까지 주고 동영상을 다운받는 사람들은 도대체…. 우리나라에서 가장 똑똑하게 보이던 방송사 사장도, 광역단체장도 저런 평범한 악마에 속아 넘어갔다는 것도 믿기지 않습니다.

악마의 동조자들은 또 어떻게 봐야 할까요? 어떻게 동생 같은 아이들의 참혹한 모습을 보면서 열광할 수가 있을까요? 보통 사람들의 분노대로 공범들을 엄벌하면 속은 시원해질 텐데, 그렇다고 악마의 무리들이 근절될 것 같지 않을 듯해서 두렵습니다. 단순한 징벌보다 교화주의를 채택하는 현대 형법 체계로 어떻게 이들을 ‘사람’으로 만들지도 쉽지 않아 보입니다.

정신의학에서는 누군가 성적으로 고통 받는 것을 즐기는 사디즘이 6개월 이상 지속되고 제어가 불가능한 것을 병적 상태로 봅니다. 이는 나르시시즘(자기중심주의), 마키아벨리즘(자기를 위해 남을 이용하는 것), 사이코패스(인간애를 못느끼는 병적 정신)가 합쳐진, 인간 본성의 어두운 면이 표출된 것으로 설명합니다.

미국 정신과진단목록에도 포함돼 있는 이 장애의 원인에 대해선 △일상생활에서 나약한 사람이 힘을 느끼기 위해 현실을 도피하는 것이라는 설 △가학적 환상이 오랫동안 축적되면서 발달했다는 설 △억압된 성적 환상이 분출되는 것이라는 설 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병으로 규정하기엔 의학적 치료가 잘 안 된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누구에게나 있는 악마성이 이번 ‘악마의 공범’들을 통해서 표출됐다는 설명도 가능해보입니다. 전쟁과 폭동 때 인간의 악마성은 적나라하게 드러나지요. 많은 사람들이 피가 튀기는 싸움에 열광하는 것처럼, 비슷한 사람들이 폐쇄공간에 모이면 가학성이 극대화된다고 할 수도 있을 겁니다.

중국의 순자(荀子)는 이런 악마성을 억누르기 위해, 맹자(孟子)는 사람과 야수의 아주 작은 차이를 계발하기 위해 교육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공교육이 무너져 인성 교육을 포기한 결과라는 생각도 듭니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악은 평범하고, 그 평범성은 무지에서 나온다”고 했지요. 학교에서 구체적 성교육을 시키지 않아서, 포르노에서 성을 배운 아이들이 커서 가학적 성에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것으로도 보입니다.

박사, 갓갓, 워치맨 등은 이런 악마성을 이용해서 돈을 벌었으니 사회를 지배하는 황금만능주의의 폐해로도 보입니다. 정상적 쾌락은 억압하고, 위선이 사회를 질식하며, ‘우리 편’만 옳다고 여기는 몰가치, 비이성 시대의 당연한 귀결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무엇이 정답인지,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지….

한편으론, 피해자를 떠올리며 눈물 흘리고, 정당하게 분노하는 선한 본성을 가진 사람이 훨씬 많은 것을 보면 우리 사회에 대해서 절망하기는 이르다는 생각도 듭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번지고 있는 현장에서 이름 모를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 자원 봉사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떠올리면 우리 사회가 깊이 병들었다고 단정할 수도 없을 겁니다.

하지만 모든 병은 작은 부분에서 시작합니다. 조기에 진단할수록 치료가 잘 되겠지요. 지금 분노하지만 말고, 정확한 진단을 위해 깊이 고민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선한 사람이 훨씬 많은 우리 사회에서 악마성을 쫓아내려면 무엇부터 해야 할까요?


오늘의 음악

첫 노래는 1944년 오늘 태어난 다이애나 로스가 라이오넬 리치와 함께 부른, 영화 ‘Endless Love’ 주제곡입니다. 다이애나 로스는 마이클 잭슨의 후견인 역할을 했죠? 1959년 오늘 태어난 영화음악 작곡가 앨런 실베스트리의 ‘포레스트 검프’ 주제곡을 존 액설로드가 지휘하는 비엔나 라디오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비엔나 싱아카데미의 연주로 듣겠습니다.

 

  • Endless Love – 다이애나 로스 & 라이오넬 리치 [듣기]
  • Forrest Gump – RSO & 비엔나 싱아카데미 [듣기]

 

    이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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