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베닥] 수시로 응급호출…1만5000 아기 살린 복강경 대가

⑧소아외과질환 김대연 교수

북한산 등줄기에서 바로 눈앞의 봉우리 백운대를 향해 걸음을 뗄 때, 휴대전화 벨이 울렸다. 한 달 바기 아기의 창자가 꼬였다는 병원의 응급호출. 밤낮없이 병원에서 지내다가 진달래가 화들짝 핀 바깥세상을 새삼 느끼는 ‘소확행’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서울아산병원 외과 김대연 교수(55)는 조교수 시절 모처럼 일요일 함께 산에 오른 아내와 아이들을 산등성이에 남기고 혼자 달려 내려와야만 했다. 30분 뛰어 내려와 택시를 잡아타고 30분 만에 25㎞ 거리의 병원에 도착해서 수술실로 뛰어 들어갔다.

수술대 위의 아기는 엄마 뱃속에서 장이 자리를 잡지 못한 상태에 있다가 꼬여버린 ‘중장염전’ 환자. 곧바로 수술하지 않으면 장이 썩어 들어가 목숨이 위태로운, 소아외과 최대 응급상황이었다. 김 교수는 아기의 배를 가른 뒤 꼬인 창자를 풀어준 뒤 소장과 대장의 제 위치로 몰아서 정리하고 나서 한 땀 한 땀 꿰매고, 성공적 수술을 알리는 생체신호를 확인한 뒤 자신이 땀범벅인 몸으로 수술한 것을 깨달았다.

김 교수는 전공의, 전임의 때뿐 아니라 교수 초년 때에도 이처럼 수시로 응급호출을 받으며 숱한 아기들을 살려냈다. 병원이 몇 년 동안 소아외과 의사를 뽑지 못하자, 혼자서 숱한 어린이들을 수술하며 매일 밤 호출을 받았고, 모처럼 집에 왔다가 달려가는 것도 다반사였다. 한 달에 90끼를 병원 구내식당에서 해결해 총무과에서 확인전화가 왔고, 병원장에게 보고되기도 했다. 잠시 쉬다가 벌떡 일어나서 달리고, 또 달려온 삶이었다.

김 교수는 응급환자를 포함해서 항문이 없는 아기, 식도, 소장, 담도가 막힌 아기, 소장이 짧은 아기, 선천성 거대결장 아기 등 1만5000명을 수술해서 부모의 눈물을 닦아줬다. 요즘은 단장증후군과 혈관-림프관기형 등 난치성 환자의 치료에 집중하고 있다. 특히 단장증후군은 소장이 정상에 비해서 짧아 소화를 못하는 병. 김 교수는 이 가운데 태어날 때 소장이 정상의 40%인 40㎝ 이하의 중증 환자를 주로 보고 있다.

“이 병 환자는 10년 전까지만 해도 수액을 계속 맞아야 하고 패혈증 등의 합병증이 자주 생기게 돼 4, 5세까지 살기가 힘들었어요. 지금은 적절한 종합수액영양제(TPN)와 적절한 시기의 수술로 관리를 하면, 집에서 수액을 맞으면서 학교를 다니면서 살 수 있는 병이 됐습니다. 제 환자 중에 10여 년 전 수술 받고 집에서 수액을 맞으면서 치료받고 있는 환자들이 5명 정도 있습니다. 이들을 오랫동안 건강하고 정상적인 일상생활을 하면서 살게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김 교수는 인턴 때 외과가 타고난 손재주가 아니라 ‘평소 쌓은 지식에 따라 수술 준비를 하고, 재빨리 수술 계획을 설계하며, 크고 작은 결정을 하며 수술한 뒤 과정을 복기하는 종합학문’이라는 사실에 매력을 느끼고 자신의 전공으로 삼았다.

그는 전공의를 마치고 서울대병원 ‘소아외과의 전설’ 박귀원 교수(현 중앙대병원 교수) 밑에서 전임의(Fellow)로 실력을 쌓았다. 박 교수는 서울대병원에서 첫 여자 외과 전공의, 첫 여교수 등의 기록을 갖고 있는 명의로 소아외과의 온갖 영역을 개척하고 있었다. 김 교수는 “그때 스승의 흉내만 내도 많은 것을 배웠다는 포만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서울대병원에서 교수 자리가 날 기미가 보이지 않던 1999년 서울아산병원으로부터 “소아외과 전담 교수가 연수 가니 전임강사 대우로 1년만 있어 달라”고 요청받고 자리를 옮겼다. 그러나 자리를 옮겨 아기들을 수술하던 어느 날, 이승규 과장이 “왜 전임의가 인사도 안오냐?”고 말했을 때 자신이 전임강사 대우가 아니라 전임의로 오게 된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런 것을 따질 여유가 없었다. 피수영 교수가 이끄는 국내 최대 신생아중환자실에서 환자가 쏟아졌고 매일 온콜이 이어졌다. 병원에서 “조금만 더,” “1년만 더…” 요청에 따라 밤낮없이 어린 환자들을 보다 보니까 직위도 조금씩 올랐고 어느 덧 정교수 자리까지 오르게 됐다.

김 교수의 ‘일복’은 2006년 미국 마이애미 대학병원에 연수 가서도 줄지 않았다. 세계 최초로 간이식에 성공한 ‘이식의 아버지’ 토머스 스타즐의 제자였던 앤드리아스 자키스 교수에게서 소장이식 수술을 배우면서 수시로 수술방에 들어갔다. 밤에는 ‘온콜’에 대비하느라 병원 부근에서 지내야했고, 플로리다 바깥은 장기를 떼어내기 위해 다른 병원에 갈 때 비로소 구경할 수 있었다.

귀국해서도 전임의가 없어서 수시로 응급호출을 받았다. 매주 한 번은 밤에 집에 왔다가 다시 달려 들어가야 했다. 정교수가 돼서도 온콜을 마다하지 않고, 언제라도 짬이 나면 잘 수 있도록 연구실 소파에는 베개와 이불이 마련돼 있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아기를 복강경과 흉강경으로 수술하는 분야에서 선두주자이다. 이 수술법은 아기에게 직경 3㎜ 정도의 구멍들을 뚫고 수술 장비와 카메라를 넣고 모니터를 보면서 수술하는 것. 그는 신생아, 영아기 때 개복 수술을 잘 받았지만 큰 흉터 탓에 절망하는 청소년들을 보며 고민하다가 방법을 찾았다. 국내에서는 소아용 복강경 장비도 없던 때인 2000년 외국의 대가들로부터 수술법을 배워 와서 선천성횡격막탈장, 십이지장폐색, 담관낭종 등에 적용한 것이다.

김 교수는 몸무게 1.8kg의 선천성십이지장폐색 신생아를 수술해 최소 체중 복강경 수술을 기록한 것을 비롯해 국내 최초의 행진을 이어왔다. 2008년 미국 보스턴에서 열린 국제소아외과종양학술대회에서는 “생후 10일째인 2.7㎏ 아기의 몸속 9㎝ 종양을 제거한 것을 포함해서 종양이 있는 9명을 흉강경 또는 복강경으로 치료했더니 재발이 없었고 흉터가 거의 남지 않았다”는 임상결과를 발표해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김 교수는 2012년 만성장폐색증후군으로 7개의 장기가 썩은 7살 아이에게 7개 장기를 동시에 이식하는 대수술에 성공했다. 아이는 음식을 소화할 수 없어 6년 동안 영양주사를 맞으며 생명을 유지하다가 위험한 순간에 이르렀다. 환자는 평소 “친구들처럼 햄버거를 마음껏 먹고 싶다”는 소원을 빌었는데, 김 교수는 이 아이의 꿈을 현실로 만들어 줬다. 당시 여러 장기를 동시 이식하는 것이 불법 논란에 휩싸였을 때, 김 교수가 수술에 성공함으로써 법을 개정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김 교수는 요즘 소아외과를 세부전공으로 삼으려는 의사가 드물어서 안타깝다. 소아외과는 성인 대상의 외과와 달리 신경외과, 정형외과, 흉부외과, 비뇨기과 외의 모든 어린이 수술을 맡을 정도로 범위가 넓은데다가 젖먹이를 대상으로 섬세하게 수술해야 하므로 일 자체가 어렵다. 치료가 잘되면 당연하고, 잘못 되면 원망을 받기 십상이고 심지어 구속되는 경우도 있었다. 개원을 하기도 어려워 지원자가 외과의 다른 분야에 비해 매우 적다. 소아외과 의사의 수가 적다보니까 한 사람에게 일이 몰리고 밤에 비상호출 받는 경우도 흔하다.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은 소아 치료에 대한 적극적 지원 정책으로 소아외과 수가가 매우 높아 지원자가 많지만, 우리나라는 수가가 턱없이 낮아서 수술을 할수록 적자가 되는 수술이 있을 정도입니다. 많은 소아외과 의사들이 병원에 수익을 안겨주기 힘들어 괜스레 미안해하기도 합니다.”

김 교수에 따르면 대학병원의 절반에게서 소아외과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김 교수는 “생명 존중과 나눔 정신을 실천하기 위해 병원을 설립한 고 정주영 회장의 설립 이념을 지키며 소아외과 팀을 응원해주는 병원이 고맙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의사는 응급상황에서 재빨라야하지만, 진료실에서는 인내심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밀려오는 환자 때문에 한 보호자에게 많은 시간을 내어줄 수 없는 현실이지만, 가급적 엄마들의 얘기를 들어주려고 애쓴다.

“소아외과 환자의 엄마는 걱정을 많이 합니다. 수술이 필요할 때 당장 안 받으면 큰일 날 것처럼 서두르는 부모도 있고, 반면에 어떤 엄마는 아기가 너무 빨리 수술 받는 것을 꺼리기도 하지요. 대체로 바깥에서 환부가 도드라지면 빨리 해달라고, 잘 드러나지 않으면 가급적 늦춰 달라고 요구하는 경향이 있어요. 아기가 너무 걱정돼 밤새 울다가 오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어떨 때에는 한 엄마에게 10번 이상 ‘괜찮습니다’라고 말하며 안심시키기도 해요.”

김 교수도 요즘 세월이 쏜살같다는 것을 실감한다. 한밤 수술을 하면 2, 3일 피로를 느낄 정도로 체력이 예전 같지 않아서이기도 하지만, 한 달 1, 2명꼴로 20여 년 전 수술 받은 아기가 어엿한 청년이 돼 병무용 진단서를 끊으려고 찾아올 때 ‘벌써…’하고 느낀다. 청년들을 보면서 숱한 환자가 건강하게 살고 있는 것을 실감하면서 기운을 차리게 된다. 한 명이라도 더 살리고, 더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서….

대한민국 베닥은 의사환자 매치메이킹 앱 베닥(BeDoc)’에서 각 분야 1위로 선정된 베스트닥터의 삶을 소개하는 연재입니다. 80개 분야에서 의대 교수 연인원 3000명의 추천과 환자들의 평점을 합산해서 선정된 베스트닥터의 삶을 통해 참의사의 본모습을 보여드립니다. 여러분의 관심과 참여는 베닥 선정을 통한 참의사상 확립에 큰 힘이 됩니다.

 

    이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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