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베닥] 여성 3000명 자궁 살려준 로봇수술 대가

⑥생식내분비질환 김미란 교수

김미란 교수는 1100명 이상의 자궁을 로봇수술로 지켰다.

진료실 문이 열리고 키 164㎝, 47㎏의 여성이 들어왔다. 가냘픈 몸매에 불룩한 배, 임부복처럼 보이는 원피스를 입고 있어 임신부처럼 보였다.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산부인과 김미란 교수(55)는 충남에서 찾아온 38세 환자의 진료의뢰서를 보고, 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자궁근종 때문에 자신을 찾은 환자였다. 김 교수는 초음파 검사를 하면서 ‘이런 상태까지…,’ 혼잣말을 해야 했다. 환자의 뱃속은 크고 작은 혹으로 꽉 차있었고, 그 때문에 배가 불렀던 것.

환자는 애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곧 결혼을 하는데 아기를 가질 수 있을까요? 지금까지 본 의사들은 자궁을 들어내야 한다던데….”

김 교수는 환자의 눈을 보며 “아기를 가질 수 있게 최선을 다하겠다”며 안심시키고, 두 달 뒤 환자를 수술대에 눕혔다. 오전8시 메스로 배를 절개하고, 뱃속 온갖 군데에 들러붙은 혹들을 떼어낸 뒤 남은 조직들을 한 땀 한 땀 꿰맸다. 마지막 수술 부위를 봉합하고 난 뒤 이마의 땀을 닦으며 시계를 보니 오후2시, 6시간 동안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수술에 매달렸었던 것.

나중에 잘라낸 혹을 헤아려보니 무려 114개. 지난주 금요일 수술 받은 환자는 입원병실에서 순조롭게 회복하고 있다, 곧 결혼해서 그와의 아기를 가질 수 있다는 꿈을 꾸며.

김 교수는 이처럼 자칫 사라질 수 있는 자궁을 지켜 소중한 아기를 선사하는 분야에서 세계 최고수(最高手)의 칼잡이다. 매년 한두 명은 100개 이상의 혹을 떼어낸다. 108개의 혹을 떼어내 환자의 백팔번뇌(百八煩惱)를 해결해준 적도 있고, 혹 하나의 크기가 9.8㎏여서 뱃속에 바위덩이를 넣고 다닌 여성에게 불임 걱정을 덜어준 적도 있다. 지금까지 대략 3000명의 자궁을 수술해서 ‘여성의 보루’를 지켜줬다.

그는 원래 내과 의사를 희망했지만, 인턴 후반기 한 달 동안 산부인과에서 근무하면서 전공을 바꿨다. 한 달 내내 당직을 서면서 시도 때도 없이 출산을 도와 몸이 극도로 피곤했던 어느 날이었다. 고위험 임산부가 아기를 낳고 “고마워요”라며 눈물을 글썽이는 순간, 아기가 꼼지락꼼지락 작은 손으로 자신의 손을 만졌다. 몸서리가 처졌다, 가슴이 쿵쾅거리는 감동, 이게 내 길이다! 인턴을 1등으로 마치며 고생길이 훤한 산부인과를 지원하자, 주위에서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김 교수는 흔들리지 않았다.

김 교수가 개원하기 보다는 병원에 남겠다고 했을 때 “여자가 무슨 교수냐?”는 반응이었다. 그는 “여자의 몸과 마음은 여자가 가장 잘 안다”고 마음을 다잡으면서, 독하게 공부하고, 철저하게 환자를 봤다. 김 교수는 전공의 때 병원에서 살다시피 했다. 전공의 4년 차 때에도 오후 8시까지 진료실을 지켰고, 밤에는 병실과 응급실을 지켰다. 동생 3명과 동작구 흑석동에서 자취했지만, 어느 날 가보니 자신의 방이 없어져 있었다. 동생은 “언니는 집에 안 오니까…“하고 당연시했다.

김 교수는 스승 남궁성은 교수로부터 “산부인과에서 생식, 불임이 중요한 영역으로 성장할 것인데 우리 병원은 불임시술을 하지 않으니 다른 병원에서 경험을 쌓는 것이 좋겠다”는 제안을 받고 망설임 없이 제일병원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불임시술과 복강경 수술을 익힌 것이 나중에 큰 재산이 됐다.

그는 모교 병원에 복귀한 뒤 미국 하버드대 매사추세츠 종합병원(MGH)에 연수 가서도 1분, 1초를 보물처럼 썼다. 연구실에선 오후6시 현지 연구원들은 모두 퇴근했을 때, 혼자서 유전자 쥐들과 대화하며 밤을 지키다가 불을 끄고 퇴근했다. 아침에도 가장 일찍 출근했다. 매일 아침 7시 반에 MGH 산하 빈센트메모리얼 병원에 출근하면 한동안 적막한 병원 건물에 병원장과 둘만 있었다. 아이작 쉬프 원장은 김 교수의 열정에 감탄해 수술실, 컨퍼런스 등 어디든 원하는 곳에 가게끔 주선했다. 김 교수가 연수를 마치고 귀국할 때 원장은 커다란 의자와 빨간 쿠션을 선물했다.

“하버드대에서는 학자에게 의자를 선물하는 전통이 있습니다. 이 자리에 앉을 자격이 충분히 있다는 존경심의 표시입니다.”

김 교수는 연수 중 하나라도 놓치지 않고 눈과 손에 담으려고 애썼고, 한국에는 없는 의료기기들을 눈여겨봤다가 귀국해서 모조리 주문했다. 환자들에게 세계에서 가장 앞섰던, 미국의 최신치료를 적용할 수 있었다. 김 교수에게 치료받은 환자들을 중심으로 알음알음 소문나서 국내는 물론 미국, 영국, 독일, 브라질, 인도 등에서도 환자가 찾아왔다.

김 교수는 2009년 미국 산호세의 인튜이티브서지컬 사에서 수술로봇 다빈치의 연수를 하고난 뒤 여성생식기질환의 로봇수술에서 독보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최근까지 아시아 최다인 1100여명에게 수술했고, 숱한 논문을 썼다. 그러나 의료계에서조차 생식내분비 분야에 대해 이해가 높지 않아 험난한 비탈길을 걸어야만 했다. 자궁근종을 로봇으로 치료하니까, 동료 의사 중에선 “암도 아닌데 비싼 로봇수술을 하면서 양심에 찔리지 않느냐?”며 비꼬는 이도 있었다. 김 교수는 “여자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면 그런 이야기를 못할 텐데….”라고 되뇌며 수술법을 개발하고 발전시켰다.

2013년 국내 병원에 포괄수가제가 적용되면서 대부분의 병원에서 자궁근종, 자궁내막증 등의 치료에서 로봇수술을 못하게 유도할 때에도 환자의 건강을 위해 뚝심으로 수술을 밀어붙였다.

김 교수는 최근 병원들이 생식내분비 분야 의사를 줄이려는 것이 안타깝다. 정부가 선택 진료제를 폐지하면서 ‘대학병원에서는 중증도가 심한 환자 위주로 치료한다’는 원칙을 세웠는데, 이 중증도의 기준이 치료의 난이도가 아니라, 치료 이름에 따라 정해졌다. 이 때문에 자궁근종이나 자궁내막증 치료는 아무리 어려운 수술이라도 중증이 될 수가 없다. 병원에서는 ‘점수’를 잘 받기 위해서 이 분야 교수를 충원하지 않고 있기도 하다.

김 교수와 같이 대학병원 교수에게 오는 환자들은 개원 의사들이 손을 댈 수 없을 정도로 근종의 크기가 크거나 수가 많은 여성들이지만, 이런 형편이 반영되지 않는 것. 김 교수는 “만혼과 저출산 시대에 대학병원에서 가임력을 지킬 수 있는 고난도 치료를 줄이면 간절히 아기를 원하는 여성에게 피해가 갈 것”이라면서 “대학병원에서 이 분야 연구와 교육이 위축될 것도 보인다”고 우려했다.

김 교수는 여자이기 때문에 산부인과 환자의 마음을 잘 알기도 하지만, 자신이 생사를 넘는 병을 극복했기에 환자의 심정을 잘 알고 있기도 하다. 그는 2010년 기자인 남편이 워싱턴특파원으로 가면서 자녀들을 데리고 가서 ‘기러기 생활’을 할 때 덜컥 암 진단을 받았다. 남들은 가족이나 친구, 연인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성탄절 전날 쓸쓸히 수술대에 누웠다. 퇴원하자마자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가족 얼굴을 봐야 항암제 치료를 이길 것 같아서였다. 그는 가족과 동료들의 응원을 받으며 항암치료를 이겨냈고, 환자의 마음으로 절박한 환자들을 보고 있다.

김 교수에게 찾아오는 환자들은 대부분 “살려달라”고 애원한다. 자신의 목숨이 아니라 자궁을 살려서 ‘장차 생길 아기’를 지켜달라는 것이다.

지난해에는 43세 여성이 진료실에 들어오더니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자신의 손을 잡아 당황한 적이 있다. 그 여성은 2년 전 자궁근종 12개가 뱃속을 채우고 있었고 자궁내막증이 4기여서 다른 병원에서 자궁적출을 권유받았던 환자. 환자는 김 교수에게 “살려달라”고 애원했고, 김 교수는 그러겠다고 약속하고, 약속대로 자궁을 살리고 지켰다. 환자는 2년이 지나 진료실에 와서 “아들을 낳았다”면서 눈물어린 얼굴로 감사의 마음을 표현했던 것. 김 교수는 이렇게 여성을 살리고, 생명의 보금자리를 지킬 수 있는 기회가 자신에게 주어진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진료실과 수술방에 들어선다.

대한민국 베닥은 의사-환자 매치메이킹 앱 ‘베닥(BeDoc)’에서 각 분야 1위로 선정된 베스트닥터의 삶을 소개하는 연재입니다. 80개 분야에서 의대 교수 연인원 3000명의 추천과 환자들의 평점을 합산해서 선정된 베스트닥터의 삶을 통해 참의사의 본모습을 보여드립니다. 여러분의 관심과 참여는 베닥 선정을 통한 참의사상 확립에 큰 힘이 됩니다.

 

    이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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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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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2020-03-10 01:38:20 삭제

      모든 의사들이 이분의길을 따라걸었으면 합니다 . 사람을살리는 의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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