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암 방사선치료 개척자로 미국 의사·환자도 인정”

[대한민국 베닥] ⑤방사선종양학 성진실 교수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방사선종양학과 성진실 교수(61)는 지난해 미국에서 ‘파란 요정 상(BFA·Blue Faery Award)’을 받았다.

BFA는 2001년 15세 생때같은 나이에 간암으로 눈감은 아드리엔느 윌슨의 가족이 이듬해 간암 예방, 교육, 연구지원을 위해 설립한 ‘파란 요정 재단’이 수여하는 상. 미국 간암 치료 권위자들의 심사를 거쳐 간암 연구치료 분야에서 큰 족적을 남긴 최고 의사를 선정한다. 파란 요정은 아드리엔느가 생전에 파란 색을 유난히 좋아해서 붙은 이름.

재단은 “성진실 교수는 최초의 미국 밖 수상자이자 첫 방사선종양학과, 첫 여성 수상자”라면서 “간암 방사선 치료 분야의 개척자에게 이 상을 수상케 돼 흥분된다.”면서 선정자를 발표했다.

성 교수는 간암, 췌장암, 대장암 등 소화기암을 방사선으로 치료하는 분야에서 이처럼 세계적으로 실력을 인정받는 의사다. 간암 치료는 소화기내과, 종양내과, 외과 등이 ‘주력군’이고 방사선종양학과는 ‘지원군’으로 치부돼 왔지만, 성 교수는 이 장벽을 넘어섰다. 또 다른 의미에서 ‘지원군’ 취급을 받은 여의사로서 최고 고지에 올랐다는 점도 박수를 받고 있다.

성 교수는 어릴 적부터 매사에 성실했기 때문에 다른 길을 갈 뻔 했다. 중학생 때에는 ‘가정’ 시간에 수예, 재봉, 요리 등을 잘해서 ‘가정학’을 전공하려는 꿈을 꿨다. 고교 때에는 성적도 좋았지만 문학과 회화(繪畫)에도 수준급인 팔방미인이어서 문학예술의 길을 그리기도 했다. 생물에 재미를 느껴서 생물학 교사가 되고도 싶었지만, “빨리 독립할 수 있는 의사가 좋지 않을까?”하는 친구의 말에 가슴이 움직여 의대에 들어갔다.

그러나 의대에서는 여자의 벽이 높았다. 당시만 해도 내과, 외과에서는 여교수는 ‘희망사항’일 따름이었다. 소아과, 산부인과 전공의는 ‘내정자’ 1명만 뽑아서 웬만해선 지원서를 내기도 힘들었다. 성 교수는 인턴 때 비교적 벽이 낮은 마취과를 전공하기로 마음먹었다가, 나중에 방사선종양학과에 눈길을 빼앗겼다.

“인턴 들어갈 때 방사선과가 진단방사선과와 치료방사선과(현재의 방사선종양학과)로 나눠졌는데, 연세대 출신은 방사선종양학과에 한 명도 지원을 안 해서 다른 대학 출신이 왔어요. 무슨 과인지 살펴보면 볼수록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지식을 기반으로 가설을 세워 검증하는 과학적 성격이 강해서 연구하는 것을 좋아하는 제 취향과 맞았어요. 과감한 판단과 손기술보다는 신중한 판단과 정확한 결정이 필요하다는 점도 매력적이었고요.”

그는 전공에 대해서 더 깊은 설명을 들으려고 김귀언 교수를 찾아갔다가 진실하고 신뢰성 넘치는 설명에 감명을 받고 자신의 미래를 정했다.

성 교수는 의대 ‘미술 동아리’에서 만난 선배, 한광협 현 한국보건의료연구원장과 ‘몰래 데이트’를 하다가 대학 졸업 뒤 의사고시에 합격하자마자 결혼했다. 전공의 1년 차 때 딸을 낳고 1개월 산후휴가 뒤 병원에 복귀해서 ‘엄마와 의사의 1인2역’을 했다. 남편은 군의관으로 떠나서 혼자서 아기를 돌보며 새 학문을 파고들었다. 성 교수는 전공의를 마치고 남편과 함께 미국 텍사스로 연수를 갔다. 남편은 베이어 의대에서 교환교수로 근무했고 자신은 MD앤더슨 암센터의 대가 루카 밀라스 교수의 연구실에서 방사선종양학의 세계에 파고들었다. 임상에도 빠지지 않으면서 쥐 1000여 마리를 대상으로 실험을 거듭했다.

1992년 귀국하니 김귀언 교수가 불러서 “직장암과 간담췌장암 등 소화기암을 맡는 것이 어떨까?”하고 권했다. 소화기암의 방사선 치료는 국내 최초였고, 세계적으로도 손가락으로 꼽을 때였다. 쉽게 말해서 소화기암 환자에겐 방사선치료를 한다고 하면 “헉!” 하던 시절이었다. 특히 교과서에서 간암은 방사선에 저항성이 있어 방사선치료를 하면 안 되는 암으로 분류돼 있던 시절이었다.

성 교수는 “세브란스병원이 내과, 외과, 진단방사선과, 중재방사선과, 병리학과 등 다양한 분야의 의사가 모여 의견을 공유하는 ‘다학제 시스템’을 전개해서 연구와 치료에 있어서 큰 도움을 받았다”고 말한다.

성 교수는 간암, 췌장암, 담도암, 대장암, 골전이암 등에서 협업의 성과를 냈으며, 특히 1998년 췌장암의 국내 최고 권위자인 송시영 교수와 함께 수술 전에 방사선치료와 항암요법을 병행하는 치료법을 개발해 수술 받은 환자의 5년 생존율을 20%에서 50%까지 올렸다.

남편 한광협 교수와는 출퇴근 때를 비롯해서 수시로 의견을 교환해서 간암 분야에서 ‘파란 요정상’이 당연한 세계적 대가가 될 수 있었다. 부부가 함께 개발한 ‘항암제 방사선 복합치료(CCRT)’는 세계 간암 치료의 표준 치료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이 치료법은 간동맥으로 항암제를 계속 투여하면서 특정 부위에 고선량의 방사선을 집중 투여하는 치료법으로 ▼적합한 환자를 잘 선별할 수 있는 소화기내과 의사 ▼뛰어난 방사선종양학과 의사 ▼케모포트(항암제를 투입하는 도관)를 잘 넣을 수 있는 중재방사선과 전문의가 모두 있어야 가능한데, 세브란스병원에는 삼박자가 갖춰져 있었기에 가능했다.

성 교수는 국내외 학계에서 두루 실력을 인정받아 2016년 대한간암학회 회장으로 활약하며 아시아간암방사선치료연구회를 설립했다. 지난해에는 세계에서 간암 임상연구가 가장 활발한 학회인 아시아태평양간암학회의 회장에 취임하기도 했다. 그는 또 미국임상종양학회(ASCO) 소화기암 연례 심포지엄 학술위원으로 학회의 강의 주제와 연사를 정하고 좌장을 맡는 등 활약을 펼치고 있다. 지난해 위원으로서 380편의 논문 초록을 심사하기도 했다.

성 교수는 2011년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자문위원으로 위촉받아 개발도상국의 암 퇴치 사업인 PACT(Programme of Action for Cancer Therapy)에서 주요 역할을 하고 있다. 필리핀, 베트남, 브루나이 등에 방문해서 그 나라의 암 퇴치 청사진을 그려줬고 실타래처럼 얽힌 문제점을 풀어주기도 했다. 2013년 교수들에게 연구에 전념하라고 주는 연구년 6개월을 받았을 때에는 절반을 오스트리아 빈의 IAEA 본부에 머물며 아프리카 각국의 암치료 현황을 파악하고 정책 청사진을 설계하기도 했다. IAEA 자문위원으로서 방사선 암치료의 표준을 세우는 일을 하면서 대중의 방사선에 대한 막연한 공포심을 떨치고, 방사선이 좀 더 효과적으로 사용되도록 알리는 일도 적극적으로 펼쳐왔다.

성 교수는 지금까지 “문제 해결의 열쇠는 내 안에 있다”는 좌우명을 수 백 번 되뇌었다. 암 환자에게는 환자 내면의 힘을 북돋으려고 신경 쓴다. 암 환자는 수시로 좌절감에 사로잡히므로 그 때마다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 정서적 안정, 가족이나 주변 사람에 대한 감사와 신뢰의 마음을 상기시키려고 노력한다. 그렇게 정성을 쏟은 환자를 잃었을 때, 뻥 뚫린 가슴을 스스로 채워주기 위해서도 좌우명을 되뇐다. 그래야 한 명이라도 더 살릴 수가 있음을 알기에….

대한민국 베닥은 의사-환자 매치메이킹 앱 ‘베닥(BeDoc)’에서 각 분야 1위로 선정된 베스트닥터의 삶을 소개하는 연재입니다. 80개 분야에서 의대 교수 연인원 3000명의 추천과 환자들의 평점을 합산해서 선정된 베스트닥터의 삶을 통해 참의사의 본모습을 보여드립니다. 여러분의 관심과 참여는 베닥 선정을 통한 참의사상 확립에 큰 힘이 됩니다.

 

이성주 기자 stein33@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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