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정성 쏟으려 TV 안 나오는 명의

[대한민국 베닥] ④무릎질환 윤경호 교수

경희대병원 정형외과 윤경호 교수(56)는 자신을 내세우는 것을 꺼리는 의사다. 웬만하면 TV에 도 출연하지 않는다. 의학적 성과에 대해서 학회나 병원 차원에서 홍보가 필요해도 가급적 자신의 이름보단 ‘경희대병원 정형외과’를 내세운다.

전국에서 자신에게 환자들이 몰려오면, 다른 병원 의사들이 보내는 중증 무릎 환자들 진료에 지장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윤 교수의 환자 가운데 70~80%는 전국의 정형외과 전문의들이 의뢰한 환자다. 매년 100여 명은 다른 곳에서 몇 번 씩 수술한 환자를 다시 수술한다. 겉으로 내색을 하지는 않지만, 환자들의 얘기를 좀 더 오래 들어주지 못하는 것에 늘 미안해하기에, 다른 의사들이 충분히 치료할 수 있는 환자들이 몰려오는 것은….

윤 교수의 경력에는 대한민국 무릎 치료와 정형스포츠의학의 역사가 녹아있다.

그는 서울대학교 의대를 ‘성적이 뛰어난 학생’이 아니라 ‘잘 노는 의대생’으로 지냈기에 모교 병원에 인턴으로 남을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병원 부근 식당에서 의대 동기와 함께 진로에 대해서 고민을 나누다 소주잔 너머 의대 동기의 목소리에 눈이 번쩍 뜨였다.

“경찰병원이 왕십리에서 가락동 최신 건물로 옮긴다는데, 우리 함께 하권익 박사 밑으로 갈까?”

고(故) 하권익 박사는 대한민국 스포츠의학의 태두로 삼성서울병원장, 을지대의료원장, 중앙대의료원장 등을 역임한 명의다. 하 박사의 장남은 현재 삼성서울병원에서 역시 무릎 관절을 치료하는 하철원 교수.

윤 교수는 어릴 적부터 스포츠 광이었던 데다가, 당시는 ‘88올림픽’의 열기가 식지 않았을 때였다. 스포츠의학,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뛰었다. 윤 교수는 친구 이승림 현 경찰병원장과 함께 가락동에 인턴 지원서를 냈다. 윤 교수는 경찰병원 이삿짐을 옮기고 하 박사 밑에서 경찰뿐 아니라 전국의 스포츠 선수들과 일반 환자들을 진료하면서 인턴, 레지던트 생활을 했다.

1995년 삼성서울병원이 개원하면서 경찰병원 진료 부장이었던 하 박사를 스카우트했다. 윤 교수는 바늘 따라 실이 가듯, 스승을 따라 새 병원으로 옮겼다. 무릎 치료가 주전공이 됐고, 관절경 수술 솜씨가 시나브로 소문이 났다.

그런데, 하권익 교수가 삼성서울병원 원장을 맡아 경영에 주력하면서 1998년 정형외과의 빈곳을 메우고 성장시키기 위해 경희대병원의 안진환 교수(현 새움병원)를 정형외과 과장으로 스카우트했다. 윤 교수에게는 또 다시 진로에 고민이 생겼다. 당시 전국에서 무릎질환 환자만 관절경으로 수술하는 의사는 안 교수와 윤 교수 두 명뿐이었는데, 두 명 모두 한 병원에 있는다는 것은….

이런 사정은 정형외과 학계에서 자연스럽게 알려지게 마련이었고, 경희대병원에서 교수직 제안이 왔다. 경희대병원은 예나지금이나 ‘관절치료의 메카’로 불리는 병원. 1975년 김영롱 교수가 인공관절 치료법을 도입한 이래 유명철, 이석현, 배대경, 안진환, 임홍철 등 수많은 스타 의사들을 배출했다. 윤 교수는 이직을 결정했지만, 헉~, ‘IMF 경제위기’가 발생해 경희대 교수 정원이 묶이는 바람에 2년을 ‘광야’에서 떠돌아야 했다.

마침내 2000년 교수 자리가 나서, 윤 교수는 배대경 교수(현 서울성심병원)와 함께 ‘무릎 치료의 성지’를 구축했다. 배 교수는 대한정형외과학회 이사장, 아시아태평양슬관절학회 회장 등을 역임한 무릎 치료분야의 대가. 배 교수는 주로 노인 환자를 보면서 인공관절수술 및 절골술을 했고, 윤 교수는 스포츠 손상과 관절경 수술 등에 집중했다.

윤 교수에게는 전국에서 무릎 인대와 관절연골, 반월상연골판 등을 다친 환자들이 몰려왔다. 그의 치료일지에는 환자 2만 여명의 기록이 남아있다. 인대 손상환자 5000여명, 관절연골과 반월상연골판 손상환자 5000여명을 수술했다. 다른 곳에서 5, 6번 수술하고 윤 교수에게 와서 희망을 찾은 환자도 적지 않다.

윤 교수는 2002년 미국 하버드대 브리검 앤드 위민스 병원으로 연수 가서 연골 분야 연구의 세계적 대가 톰 미나스 교수에게 자가연골세포이식술(ACI)을 배워와 국내외 제약회사 및 바이오 기업과 새 치료법의 임상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최근엔 국내 바이오벤처회사의 자가연골세포 치료제 개발과정에 참여, 치료법의 효과를 입증해서 《미국스포츠의학저널》에 발표하기도 했다.

자가 연골세포 이식 치료법은 처음 시행되던 2000년대 초기에만 하더라도 용액 속에서 둥둥 떠다니는 세포를 관절 안에 넣어야 했다. 무릎 부위를 많이 찢고 억지로 넣다시피 한 뒤 골막을 꿰매야 했으므로 3~5시간 수술해야 했고 회복 시간이 길었으며 부작용 걱정을 떨칠 수 없었다. 그러나 윤 교수와 국내 바이오벤처기업이 함께 개발한 새 치료법은 배양한 연골세포를 ‘구슬 아이스크림’ 모양으로 만들어 관절경으로 넣는 것으로 1시간 이내에 수술하고 회복기간은 짧고 적용대상도 넓어서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윤 교수의 또 다른 큰 기쁨은 스포츠 선수들이 수술을 받고 회복해 뛰고 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다. 남자배구 삼성화재의 석진욱(현 OK저축은행 감독)은 양쪽 무릎을 번갈아가며 5, 6번 수술하고도 37세까지 ‘불굴의 의지’를 보여줬다. 여자농구 신한은행의 최윤아가 무릎 수술을 받고 복귀해서 펄펄 나는 것을 봤을 때엔 코끝이 찡했다. 두 사람은 명예롭게 선수생활에서 은퇴했지만, 현재 배구, 농구, 핸드볼, 축구 등 수많은 종목의 숱한 선수들이 윤 교수의 손길을 거쳐서 스포츠팬들을 위해서 땀 흘리고 있다.

이성주 기자 stein33@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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