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어린이에게 밝은 얼굴 찾아주는 의사

[대한민국 베닥] ④치료성형 오갑성 교수

전국의 병원 의료진이 코로나 19 때문에 긴장하는 정도는 일반인의 상상을 훌쩍 뛰어넘는다. 그러나 성균관대 삼성서울병원 성형외과 오갑성 교수(64)는 최근 코로나 19 때문에 삶의 큰 보람을 느끼는 경험을 했다.

오 교수는 진료실 문이 열리며 머리를 빡빡 깎은 청년이 ‘잘 생긴 귀’에 안경과 마스크를 걸고 겸연쩍게 웃는 모습을 보면서 콧잔등이 찡했다. 청년은 태어날 때부터 귓바퀴가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아 귓불 형태만 남아있는 ‘소이증(小耳症)’ 때문에 10년 전에 수술 받았던 환자로 이날 병사용 진단서를 받으러 왔다.

“소이증 환자는 머리카락을 길러서 귀를 가리고, 혹시 남이 알아볼까 봐, 길에서 작은 귀가 있는 쪽의 담벼락에 붙어서 걷습니다. 바람이 휙 불면, 걸음을 멈춰요. 머리카락이 날려서 귀가 드러날까 봐…. 이들에게 정상 귀가 생기는 것은 새 삶을 선물 받는 것이지요. 멀쩡한 귀가 있어서 안경과 마스크를 걸 수 있는 행복, 보통 사람은 상상도 못할 겁니다.”

오갑성 교수는 이처럼 소이증, 심한 턱 기형, 얼굴 비대칭, 구순구개열(언청이) 등을 수술해서 밝은 얼굴을 찾아주는 의사다.

오 교수의 책장에는 파란 장미 100송이가 담긴 바구니가 있다. 태어날 때부터 얼굴의 반 이상이 반점으로 덮여서 머리카락으로 얼굴 한쪽을 가리다가 수술 받은 여고생이 정성들여 만든 것이다.

“빨간 장미, 노란 장미, 흰 장미는 있어도 파란 장미는 없잖아요. 교수님은 현실에서 불가능한 것을 가능으로 만들어주셨어요.”

이 여고생은 삼성서울병원 성형외과가 2004년부터 펼치고 있는 ‘삼성 밝은 얼굴 찾아주기’ 캠페인의 수혜자 중 한 명이다. 오 교수 팀은 매년 삼성그룹에서 10억 원을 지원받아 지금까지 1000여명을 무료로 수술했다.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 수급자 가운데 선천적인 기형 때문에 평생 한이 맺혀있지만 가난 때문에 치료를 엄두도 못 내던 환자들에게 ‘희망’을 안겨줬다. 수많은 환자가 오 교수를 아버지나 할아버지처럼 여기고 있으며, 좋은 일이 있으면 인사를 온다. 재작년엔 어릴 적 수술을 받고 의대에 입학한 환자가 “교수님처럼 멋진 의사가 되고 싶다”고 해서 콧잔등이 시큰해졌다.

오 교수는 한국에서뿐 아니라 중국과 동남아에서도 그곳의 어린이들에게 밝은 얼굴을 찾아주고 있다. 아주대병원 박명철 교수가 주도해 만든 ‘글로벌 케어’의 일원으로 참가해서 매년 봄에 서울아산병원, 세브란스병원, 순천향대병원, 부산대병원, 경북대병원, 영남대병원 등의 중견교수와 함께 동남아에서 얼굴 기형을 수술하고 온다. 글로벌 케어는 수술을 하면서 현지 의사들을 교육하고, 수술 뒤 수술 장비와 기구들을 기증함으로써 보다 많은 아이들이 밝은 얼굴을 찾도록 한다.

오 교수와 제자들은 또 매년 가을 1주 동안 삼성전자 공장이 있는, 베트남 타이응옌 성에서 그곳의 얼굴 기형 환자 20여 명을 수술한다.

그러나 삶에서 성공과 보람만 있는 것은 아니다. 눈물을 흘리며 호소하는 환자 보호자에게 “아무리 생각해도 치료방법이 없다”며 돌아가게 할 때 가슴이 찢어진다. 일부 ‘진상 보호자’에게 싫은 내색을 숨기지 못하는 것도 병이다.

오 교수는 초중고대학교를 모두 시험을 치른 마지막 세대로, 경기중학교 마지막 졸업생으로 경기고에 들어갔다. 평북 영변 출신으로 육군을 중령으로 예편한 아버지가 “의사는 전쟁 때에도 죽이지 않으니 의사를 직업으로 삼으면 좋겠다”고 권하자. 열심히 공부해서 서울대학교 의대에 입학했다.

서울대병원 인턴 때 ‘칼잡이 의사’를 하고 싶었으며, 자르고 제거하는 수술이 아니라 새로 만드는 작업을 하는 성형외과의 매력이 이끌려서 지원했다. 서울대병원 전공의를 마칠 무렵 서울시 지방공사 강남병원(현 서울의료원)이 성형외과를 만들려다가 취소한다는 소식을 듣고, 직접 김용래 서울시장에게 편지를 썼다. 욕창 전후 사진과 함께 성형이 얼마나 중요한지 역설했고 오 교수는 새로 개설된 성형외과 과장으로 취임했다.

이곳에서 4년 이상 얼굴에 기형이 있거나 화상, 욕창 등으로 고생하던 온갖 환자를 치료하니, 인제대학교 서울백병원의 백세민 교수가 불렀다. 백 교수는 미국 마운틴 시나이 병원 출신으로 우리나라 성형의학의 태두로 꼽히는 의사.

오 교수는 백 교수의 동생인 백롱민 현 분당서울대병원장과 하루 종일 수술실을 지켰다. 백세민 교수가 턱, 광대뼈 등 환자에게 1~2시간 수술을 하고 나면 3~4시간 정성들여 마무리를 했다. 백 교수가 할당한 다양한 분야의 부분마취 수술도 두 사람의 몫이었다. 백 교수가 설계하고 지시한 칼럼과 논문 등을 쓰는 것은 주로 오 교수의 몫이었다.

오 교수는 치료성형수술만 하는 줄 아는 의사도 있지만, 이 무렵 쌍꺼풀 수술할 때 수술 부위를 최소화하는 수술법을 개발해서 《대한성형외과학회지》에 발표하기도 했다. 이 방법은 ‘오의 수술법(Oh’s Method)’라고 이름 붙어 영문 성형외과 교과서에서도 소개되고 있다.

오 교수는 2001년 성균관대 삼성서울병원에 스카우트돼 귀 성형과 얼굴 윤곽 성형을 주로 맡았다. 특히 소이증 수술에서 차곡차곡 성과를 냈으며 2010년 귀 성형의 태두이자 세계적 대가인 박철 전 연세대 교수(현 BIO성형외과 원장)가 고려대 안암병원에서 특채교수로 환자를 볼 때 그곳에서 소이증을 주제로 특강하기도 했다.

오 교수는 선친의 가르침을 제자 교육에 적용하고 있다. 아버지는 군대에서 진급을 위해 로비를 하는 것이 싫어 중령 때 사표를 내고 용인에서 농사를 지었던 원칙주의자. 아버지는 아들을 불러서 “네가 내게 마뜩하지 않은 부분이 있을 게다. 내가 오래 살아서 고치려고 하면 부러진다. 내게서 좋은 점은 그대로 아들에게 실행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은 하지 말거라”고 말했다.

그는 서울대병원 김진환 교수에게 조직이 손상되지 않도록 세밀하게 다루는 법을 배웠고, 백세민 교수에겐 적극적이고 공격적 치료 태도를 배웠다. 오 교수는 전공의가 들어오면 선배 전공의들에게 좋은 점을 배워서 자기 것으로 하고, 나쁜 점은 나중에 후배들에게 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그는 2001년부터 지금까지 대학 노트에 ‘수술 일기’를 쓰고 있다. 환자 이름, 병명, 참관 의사, 특징 등을 기록하고 진료기록을 담은 바코드를 붙였다. 이 일기에는 2020년 2월 11일 현재 소이증 환자 909명을 수술한 기록이 담겨 있다. 오 교수는 소이증 환자의 2차 수술을 맡을 후배, 임소영 교수에게 이 노트를 물려 줄 예정이다. 임 교수가 1000명, 2000명을 채워주기를 기대하면서.

이성주 기자 stein33@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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