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자에게 운전을 가르칠 수 없는 까닭

[사진=AntonioGuillem/gettyimagebank]
“좀 들어봐!”, “말 끊지 마!”, “내 말은 그게 아니잖아!”…

심야토론에서 흥분한 패널들이 상대방에게 던지는 험한 말처럼 들리지만, 이런 말을 가장 자주 쓰는 상대는 대개 가족, 연인, 절친 등 친밀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화 상대방이 친할수록 그의 말을 허투루 듣는 경향, 이른바 ‘친밀 소통 편향(closeness-communication bias)’이다.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가 소통을 가로막는 이 편향에 대해 전문가 의견을 정리했다.

친밀 소통 편향이 생기는 이유는 상대방이 나에 대해서 잘 알고, 그러므로 내 이야기를 잘 이해해줄 것이라는 과도한 기대 탓이다. 상대방인 절친 혹은 가족은 당신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예단하기 때문에 당신의 말을 대충 듣고 다 이해했다고 여긴다.

쌍방이 상대에 대해서 가지는 ‘익숙함’은 마치 매일 통근하는 길을 운전할 때 내비게이션이나 도로 표지판을 유심히 보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문제는 통근길과 달리 사람은 항상 변한다는 점이다. 매일매일의 활동과 관계가 누적되면서 우리는 지속적으로 변하고 있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어제 혹은 지난달의 자신과 같지 않다. 심지어 하루 중 거의 대부분을 함께 보내고, 거의 같은 경험을 겪는 쌍둥이조차 친밀 소통 편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2010년의 연구에 따르면 어떤 주제에 대해서 상대방에게 설명을 하고 그 내용을 얼마나 잘 파악했는지 측정했을 때 부부나 절친보다 낯선 사람의 설명을 더 잘 이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카고 대학교에서 행동 과학을 연구하는 니콜라스 에플리 교수는 “상대방의 말을 정확히 이해하려면 ‘잠깐 저 사람 얘기가 이런 건가?’라는 마음속 확인 과정이 필요하다”면서 “그러나 친한 사이에는 서로를 잘 안다고 여기는 탓에 그런 과정을 생략한다”고 설명했다.

친밀 소통 편향이 심해지면 서로의 이야기를 허투루 듣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속내를 상대방에게 털어놓지 않는 지경에 이른다.

하버드 대학교 마리오 루이스 스몰 교수가 실시한 실험에서는 사람들이 근심거리가 있으면 친한 사람보다는 관계가 느슨한, 즉 덜 친한 사람에게 털어놓는 경향이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가장 친밀한 사람에게 이야기했을 때 맞닥뜨릴지 모를 비난, 무시, 과잉 반응이 두렵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이런 편향에 빠지지 않을 방법은 무엇일까?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의 인류학자 로빈 던바 교수는 “매일 대화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그저 “잘 지내?”라고 안부를 묻고 그에 대한 대답을 듣는 것부터 시작하라고 조언했다.

에플리 교수는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도 이런 편향을 강화하는 요소라고 지적했다. 스마트폰 등 기기들은 상대방에 대한 집중력을 분산하기 일쑤고, 기기를 통해 오가는 문자와 이모티콘 정도로는 상대방의 감정을 세밀하게 읽기 어렵다는 것.

최선의 방법은 스마트폰을 밀어두고 함께 시간을 보내며 상대방이 해야만 하는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도록 세심하게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이용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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