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피아니스트’의 진짜 주인공은?

[이성주의 건강편지]

제 1368호 (2019-12-05일자)

영화 ‘피아니스트’의 진짜 주인공은 누굴까?

 

인류의 역사가 전쟁의 역사이기 때문인지, 헤아리기 힘들 만큼 전쟁영화가 많지만, 《피아니스트》처럼 다양한 색조와 음색, 군상의 영화는 드문 듯합니다.

1911년 오늘, 러시아 제국이 지배하던, 폴란드의 소스노비에츠에서 이 영화의 실존 인물 브와디스와프 슈필만이 태어났습니다. 슈필만은 독일 베를린에서 공부하다가 히틀러가 집권하자 바르샤바로 돌아옵니다. 그는 유대인 학살의 그림자에 쫓겨 폐가에 숨어 살면서 굶주림과 싸우다가 독일군에게 발각됩니다. 이때 교사 출신의 빌름 호젠펠트 대위 덕분에 목숨을 건지고, 종전을 맞습니다.

슈필만은 1946년 《도시의 죽음》이란 제목으로 생존기를 펴냈지만, 공산 정권의 검열에 따라 여러 곳이 수정됩니다. 예를 들어 호젠펠트 대위는 독일 장교가 아니라 조금 덜 나쁜 것으로 인식되던, 오스트리아인 장교로 바뀌었지요.

1998년 슈필만의 아들이 보충한 자료를 담은 책이 독일에서 《기적의 생존》이란 제목으로 나왔고, 이듬해 영역본 《피아니스트》가 출간돼 엄청난 반향을 일으킵니다. ‘가디언,’ ‘LA 타임스,’ ‘보스턴 글로버’ 등 수많은 언론사로부터 ‘올해의 책’으로 선정됐고, 35개 이상 언어로 번역됩니다. 독일어 판부터 호젠펠트 대위의 일기도 포함됐는데, 그는 슈필만 외에도 여러 명의 유대인을 구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러나 호젠펠트는 전후 체포돼 소련 스탈린그라드 포로수용소에 끌러갔다가 슈필만의 구명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곳에서 숨집니다.

이 소설은 2002년 폴란드 출신의 유대인 감독 로만 폴란스키에 의해 영화로 태어났고, 그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데 이어 이듬해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감독상, 남우주연상, 각색상을 휩쓸지요.

어릴적 유대인 학살로 가족을 잃은 폴란스키는  유럽 전역에 걸쳐서 주연을 구했습니다. 영국에서는 대규모 오디션도 열었지만 적합한 인물을 찾지 못합니다. 할 수 없이, ‘셰익스피어 인 러브,’ ‘에너미 앳 더 게이트’ 등에 출연했던 조셉 파인즈로 점찍으려는 순간, 미국에서 연기파 유대인 배우 애드리언 브로디를 발견합니다. 브로디가 어느 정도 연기파인가 하면, 11년 뒤 찍은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서 어머니의 재산을 독차지하려는 못된 아들 배역과 비교하면 금세 알 수 있습니다.

브로디는 슈필만의 역을 소화하기 위해 피아노를 배웠고, 6주 동안 다이어트로 14㎏을 빼서, 185㎝에 59㎏의 몸을 만듭니다. 아침에는 삶은 달걀 2개와 녹차. 점심에는 약간의 닭고기, 저녁에는 생선 또는 닭고기에 찐 채소만 먹었다고 합니다.

브로디는 영화에서 피아노를 직접 연주했지만, 손이 클로즈업 되는 순간의 섬세한 연주는 폴란드 피아니스트 야누스 올레니작의 것이었습니다. 추위와 허기에 지친 유대인 예술가가 살기 위해 독일 장교 앞에서 건반을 두드리는 장면을 촬영할 때 제작진도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슈필만이 살기 위해 떨 필요는 없었을 겁니다. 호젠펠트는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 절망했던 군인이었습니다. 그는 슈필만에게 남몰래 음식과 옷을 줘서 겨울을 나게 합니다. 슈필만은 음악이 없었어도 살았을 것입니다. 물론 음악이 호젠펠트를 감동시켜 더 적극적으로 움직이게 했겠지만.

전쟁은 사람을 발가벗깁니다. 우리나라 영화 《만무방》에서도 섬뜩하게 그렸듯, 인간의 본성이 잔인하게 드러납니다. 전쟁 때 사람은 피아(彼我)에 따라 모든 것을 합리화하기 십상입니다. 호젠펠트는 이런 면에서 남다른 사람입니다.

호젠펠트는 비록 소련군의 끔찍한 고문 탓에 고통 속에서 신음하다 숨졌지만, 그가 구해준 사람들과 가족이 그의 명예 회복을 위해 뜁니다. 2008년 폴란드 정부는 훈장을 수여했고, 이듬해 이스라엘 홀로코스트 기념관 야드 바솀도 ‘세계의 의인’으로 선정합니다.

여러분께 묻습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누구일까요? 난관과 위기를 이기고 생존에 성공한 슈필만일까요, 전쟁 속에서도 피아를 넘어 인류애를 실행한 호젠펠트일까요? 아니면 광기의 시기에도 사람들에게 따뜻함을 불어넣어준, 쇼팽의 아름다운 음악일까요?


오늘의 음악

첫 곡은 영화 《피아니스트》의 명장면이지요? 영화에서는 브로디가 연주하지만, 실제로는 야누스 올레니작이 연주하는 ‘피아노의 시인’ 쇼팽의 발라드 1번 연주 듣겠습니다. 브와디스와프 슈필만이 연주하는 쇼팽 야상곡 20번 이어집니다. 쇼팽도 폴란드 출신이라는 것은 아시죠? (포털 사이트에서 클릭이 안되면 기사 원문을 보시기 바랍니다.)

  • 쇼팽 발라드 1번 – 영화 피아니스트 장면 [듣기]
  • 쇼팽 야상곡 20번 – 브와디스와프 슈필만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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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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