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만 낳아 잘 기르자’ 前 ‘3.3.35’캠페인의 뜻은?

[유승흠의 대한민국의료실록] ③가족계획 성공의 배경과 과정

‘3.3.35 운동’을 펼칠 때 표어(왼쪽)와 ‘둘만 낳기 운동’의 표어(오른쪽). 박정희 정부가 빈곤 탈출을 위해서 가족계획을 우선적으로 추진했음을 생생히 느낄 수 있다.

지금은 세계 1위의 저출산이 문제이지만 50년 전만 해도 출산율이 너무 높아서 문제였다. 우리나라가 실시한 가족계획사업은 새마을운동과 함께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는 국가 정책 사업으로 이 사업에는 우리나라의 발전과정의 명암이 고스란히 녹아있다고 할 수 있다.

가족계획사업은 국민소득이 100달러 즈음인 1960년대 초에 시작했다. 국민소득이 200달러 안팎이었던 1970년에 시작한 새마을운동보다 10년 일찍 시작한 것이다.

1960년 보건사회부는 의료정책관리 분야에서 열정적으로 일하고 있었던 연세대 의대 양재모 교수(예방의학)를 세계보건기구(WHO) 연구원으로 지명해서 3개월 간 독일, 영국 등 유럽 여러 나라를 방문하여 각국의 의료보장제도를 둘러보게 했다.

양재모는 귀국해서‘사회보장제도 창시에 관한 건의’보고서를 제출하였다. 양재모는 유럽의 의료보장제도를 톺아보면서, 우리나라는 아직 의료보장제도를 도입할 시기가 아님을 간파했다. 대신 런던에 있는 국제가족계획연맹 본부를 둘러보면서, 인구 문제가 선결돼야 함을 깨닫고, 귀국하자마자 가족계획사업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 무렵 국제가족계획연맹 의장이 한국을 방문했는데, 가족계획사업을 한다면 3년 동안 매년 3,000달러의 운영비를 지원해 주겠다고 제안했다. 양재모는 1961년 4월 대한가족계획협회 창립총회를 갖고 초대 이사장에 취임했다. 회장으로는 나균용 전 보건복지부장관을 위촉했다. 사무실은 서울역 앞에 있는 연세대 의대 예방의학교실에 두고, 보이스카우트 훈련소장을 지낸 연세대 의대 출신 김용완을 사무총장으로 선임했다.

양재모는 이듬해에 박정희 의장이 이끈 국가재건최고회의 위원으로 임명됐다. 그는 그해 11월에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인구성장 억제를 위한 가족계획사업 전개를 경제개발5개년계획 사업에 포함시키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배고픔을 이기기 위한 경제발전을 강조한 박정희 정부는 “인구증가율이 3%를 넘기 때문에 경제성장을 할 수 없으므로 가족계획사업을 적극적으로 펼쳐야 한다”는 양 박사의 주장을 두 팔 벌여 받아들였다. 이때 보건사회부 산하에 가족계획자문위원회를 설치해 사업 추진 방향 자문, 심의 검토를 맡으며, 전국 보건소에 가족계획상담실을 설치하는 등 기본방침이 세워졌다.

1962년 보건사회부 주도로 가족계획사업을 펼치게 됐다. 전국 182개 보건소에 가족계획상담실을 설치하고, 간호사 또는 조산사 자격증을 가진 가족계획요원을 배치하였다. 가족계획사업을 위한 예산을 책정했고, 보건소법을 새로 제정하여 보건소의 업무 중 가족계획의 지도와 계몽교육 등을 넣었다. 이듬해에는 보건사회부 보건국에 모자보건과를 설치했다. 1964년에는 시, 도 보건과에도 가족계획계가 신설되었다.

가족계획의 실무는 대한가족계획협회에서 맡아오다가, 1963년 말에 보건사회부 모자보건과로 넘어갔다. 초기 가족계획 수립과 시행에는 미국인구협회(Population Council)의 재정 및 기술 지원이 크게 도움이 되었다. 세브란스병원 부설 결핵특수클리닉 등록환자를 대상으로 가족계획 계몽교육과 상담을 담당케 했는데 김태봉 간호사의 자원 봉사가 큰 힘이 됐다. 보사부는 경기도 성남 창곡리에 건물을 지어 간호사를 채용하고 시범사업을 하였다.

한편, 연세대 의대 양재모, 방숙 교수는 미국인구협회의 지원으로 경기 고양군 원당면 주민을 대상으로 가족계획 관련 연구사업을 실시했고, 이듬해에는 서울대 의대 권이혁 교수 팀이 서울 성북구 금북동에서 도시형 가족계획연구사업을 펼쳤다. 미국인구협회 지원으로 임상의사인 윤영선, 송상환, 이상근 등 산부인과 전문의가 존스홉킨스 보건대학원에서 보건학 석사를 마치고 귀국해 가족계획 사업에 적극 참여했다.

가족계획협회는 지방에 지부를 설치하고 상담소와 부속의원을 설립했다. 세 명의 자녀를 세 살 터울로 35세까지만 낳고 더 이상 아이를 낳지 말자는 ‘3.3.35’표어를 만들었다.

1965년 5월에 국제가족계획연맹 서태평양지역 총회 및 학술대회를 서울에서 개최하였는데, 오원선(보건사회부장관), 이동원(외무부장관), 홍종철(공보부장관), 김성진(국회의원) 등 국내 고위 인사들과 미국, 스웨덴, 캐나다, 일본 등 13개국의 가족계획 대표 70여명이 참가했다. 대한민국 보건의료계로서는 최초의 국제대회였는데, 성공적으로 잘 치렀다.

이듬해부터 네팔, 일본, 홍콩, 인도, 인도네시아, 태국, 필리핀, 베트남, 터키 등 여러 나라 가족계획요원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이론 및 실기 교육을 받았다. 우리나라가 국제적으로 성공적인 가족계획 시범국가로 인정을 받게 된 것이다.

1967년 국제가족계획연맹 총회에서는 양재모가 임기 2년의 총회 부의장 겸 실행이사회 의장으로 선출돼 세 번을 연임했다. 양 박사는 실행이사회 참석 차 영국에 다녀오면서 서양의 앞선 정책 노하우를 한국에 가져다왔다. 우리나라는 양재모의 활약으로 국제가족계획연맹으로부터 당시 엄청난 금액이었던 2,000만 달러가 넘는 지원을 받았다. 양재모는 인재를 선발해서 여러 영역에서 국제 활동을 하게끔 하고, 이 경험을 바탕으로 국제기구에 진출시키는 것에도 힘썼다. 가족계획협회에서 사무총장을 담당한 이주현이 국제노동기구(ILO), 이여옥과 양웅철은 국제연합인구기금(UNFPA), 방 숙 교수는 UN 아시아태평양경제사회위원회(ESCAP), 김택일은 세계은행(World Bank0에서 일하게 되었다.

1960년대 인구폭발은 세계적인 문제였다. UN은 1966년 12월 ‘국제연합 인구선언문’을 채택했고, 이듬해에 박정희 대통령을 포함하여 30개국 국가원수들의 친필 서명을 받고 세계적으로 인구 캠페인을 펼쳤다.

정부는 1960년대에 보건소에 결핵, 가족계획, 모자보건 등 3개 분야의 요원을 배치했다. 1972년에는 보사부 내에 모자보건관리관실을 신설해 모자보건과 가족계획, 그리고 국민영양 업무를 담당케 했다. 1973년에는 모자보건법을 입법화했다.

1970년부터 WHO와 공동으로 경기도 용인군에서 종합보건개발사업(K-4001)을 펼쳤는데, 사업을 평가 도중 3개 분야 요원을 묶어서 3,000명의 주민을 담당하는 방안을 도입해서 실시했다.

드디어 결실이 나오기 시작했다. 1970년대에 들어서 출산율이 감소하기 시작한 것이다. 1970년대에 출생률과 영아사망률, 인구증가율, 그리고 모성사망률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표어를 ‘3.3.35’에서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로 바꿨다.

예비군 훈련 참가자 중 불임시술을 받으면 훈련을 면제해 줬고, 불임시술을 받은 사람에게 아파트 분양 우선권을 주기도 하는 등 가족계획 사업을 권장하기 위한 각종 인센티브 제도가 마련돼 가족계획의 성공에 가속도를 붙였다.

1970년대 중반부터는 고등학교 가정과목 여교사들, 그리고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인구와 함께 성에 대해 교육했다. 가족계획사업이 성공적으로 실시됨에 따라서 한국의 가족계획사업을 견학하기 위하여 여러 나라에서 오게 되었다.

가족계획협회 양 이사장은 서울대 수학과 최지훈 교수를 초빙하여 연구와 자료 분석을 위한 빅 데이터 처리 수준을 국제화했고, 서울대 사회학과 이만갑 교수를 초빙해서 현지면접조사를 제대로 할 수 있도록 사회학적 조사방법론이 자리를 잡게 했다. 또 연세대 경제학과 한만춘 교수를 영입하여 가족계획사업을 경제학적 측면에서 분석하고 연구하도록 했다. 우리나라에서 보건통계학, 의료사회학, 보건경제학이 자리를 잡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이다.

1980년대에 들어서 경제사회의 발전과 함께 가족계획사업이 전환기를 맞게 됐다. 인구증가율 감소, 교육 및 사회경제 수준 향상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 것이다. 1971년에 설립된 가족계획연구원은 1976년에 설립된 한국보건개발연구원과 합쳐 1981년에 한국인구보건연구원이 됐고, 이 연구원은 1990년에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됐다.

1996년 정부는 1962년에 경제개발계획과 맞물려 인구증가 억제정책으로 시작한 가족계획사업을 35년 만에 폐지했다. 가족계획협회는 1999년에 대한인구보건복지협회로 전환됐다. 그리고 10년도 채 안 돼 저출산을 심각하게 걱정하는 시대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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