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문은 정말 지체가 높습니까?” 

[이성주의 건강편지]

제 1346호 (2019-08-05일자)

“우리 가문은 과연 지체가 높습니까?”

“아빠도 학교 다닐 때 고무신 신고 다녔어요?”

얼마 전 딸아이가 묻더군요. 저는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운동화를 신었던 것 같은데, 고무신은 1960~70년대까지 문화, 생활의 고갱이에 있었지요.

우리나라에서 첫 대량생산 메이커 상품도 고무신입니다. 1922년 오늘(8월5일) 대륙고무주식회사가 만든 ‘대장군’이 주인공입니다. 짚신보다 오래 신을 수 있고, 비가 내려도 물이 스며들지 않아서 당시로선 ‘획기적 상품’이었다고 합니다. 대장군의 고무신은 당시 수입되던 일본제와 달리 짚신 모양을 기본으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고무신 회사의 사장은 이하영입니다. 을사보호조약에 처음엔 반대해 ‘을사5적’에는 포함돼지 않았지만, 당시 법무대신이었고 나중에는 적극 찬성해서 ‘을사6적’을 만든다면 반드시 포함될 사람이지요.

이하영은 경남의 몰락한 양반 집안에서 태어나 입에 풀칠하기 위해 찹쌀떡 행상을 했습니다. 통도사에서 동자승으로도 지냈고요. 그는 19세 때 부산이 개항되자 일본인 상점에서 일해 돈을 벌었습니다. 그러나 27세 때 일본 나가사키에서 사업하러 갔다가 평양 출신의 동업자에게 사기당하고 빈털터리가 됩니다.

피눈물을 머금고 돌아오는 배에서 조선으로 선교를 하러 떠나는 호러스 알렌을 만납니다. 이하영은 알렌의 집에서 요리사로 채용돼 허드렛일을 도와줍니다. 그는 갑신정변이 일어나면서 알렌이 사경을 헤매는 민영익을 살려주는 사건을 계기로 삶이 바뀝니다. 이하영은 국내 첫 병원 제중원의 서기로 취직합니다. 또 알렌이 궁중에 들어갈 때 통역을 해야 했기에 벼슬을 받았습니다.

이하영은 1887년 박정양 주미전권공사의 일행으로 미국에 갑니다. 그는 당시 영어를 떠듬떠듬이라도 하고, 일본어를 하는 거의 유일한 조선인이었습니다. 당시 청나라는 고종이 미국과 유럽에 공사 파견을 시도할 때마다 “속국인 조선이 어떻게 공사를 파견하냐?”며 반대했습니다. 공사 일행은 청의 방해를 뚫고 미국 스티븐 클리블랜드 대통령을 만나지만, 청나라 위안스카이가 “미국 정부 인사를 만날 땐 청나라 외교관들과 함께 가서 청 외교관 아랫자리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는데 지키지 않았다”며 격분하자, 주요 인사들이 강제귀국하게 됩니다.

이 때문에 이하영은 갑자기 대사 대행을 맡아 고종의 밀명을 수행합니다. 고종은 부산, 인천, 원산을 담보로 미국에서 200만 달러를 차관하고 이 돈으로 미군 20만 명을 데리고 오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합니다. 이하영은 은행에서 돈을 빌리는 데 성공해서 그 돈을 물 쓰듯 하며 외교전을 펼쳤지만, 미국 상원에서 조선 원병 안이 부결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이하영은 귀국해서 고종의 신임을 받아 승승장구합니다. 조선의 중요한 국권을 일본에게 넘겨주고 엄청난 부를 축적합니다.

이하영은 친일파, 친미파에서 다시 친일파로 변신해서 일본에게 국권이 넘어가자 중추원 고문에다가 자작 작위까지 받았습니다. 장사꾼에서 병원 행정직, 외무 공무원에서 기업가로 변신해서 호사스럽게 살다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하영은 해방 직후 손자 때문에 다시 세상의 관심을 받습니다. 손자는 일본육사 출신의 이종찬 장군. 남태평양 뉴기니 전선에서 공병부대 연대장 대리를 하다가 광복 이듬해 조선인 병사들을 이끌고 천신만고 끝에 귀국합니다. 그는 전장에서 집안으로부터 자작 작위를 물려받으라는 편지를 받자 “습작하지 말라, 내 힘으로 살겠다”고 답장을 보냅니다.

반민특위는 일본군 장교 출신인데도 친일파의 후손일 뿐, 반민족행위자는 아니라고 판결했고 이종찬은 한 달 뒤 대한민국 육군 대령에 임관됩니다. 그리고 1952년 5월 이종찬 육군참모총장은 부산 정치 파동 때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전방부대 1개 사단을 부산으로 이동시키라는 명령을 받지만, 정치적 중립을 명분으로 파병을 거부해서 ‘참군인’으로 역사에 기록됩니다.

이종찬은 숙모가 경영하던 경양식당의 직원과 사랑에 빠집니다. 북에서 홀로 월남해서 의지할 곳 없는 표 씨 집안의 여성이었습니다. 이종찬의 어머니는 “가문의 지체가 맞지 않는다”고 극렬 반대합니다. 아무리 설득해도 “다시는 입에 담지 말라”는 냉랭한 질책 뿐. 결국 이종찬은 어머니의 가슴에 못을 박는 말을 합니다. “어머님께서 가문의 지체, 지체 하시는데 과연 우리 집안이 그런 말을 할 수 있습니까?” 결국 육군참모총장 이종찬은 몇 년 뒤 그 여성과 결혼하는 데 성공합니다.

오늘은 고무신 이야기가 친일 문제와 사랑 이야기까지 흘렀습니다. 둘 다 사람에 대한 평가와 관련이 있는 듯합니다. 사람에 대한 평가, 쉽게 내릴 수 없다는 것만은 분명해보입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우둔하고 가벼운 사람은 남을 단정하고 깎아내리는 것을 쉽게 생각한다는 겁니다. 물론, 사람에 대한 것뿐 아니겠죠? 어떤 것이든 제대로 판단하려면 늘 역지사지를 포함해서 다각도로 살펴야하겠죠? 휩쓸리지 말고, 쉽게 흥분하지 말고….


[오늘의 음악]

 

[오늘은 헐버트 폰 카라얀이 지휘하고 빈 교향악단이 연주하는, 드보르작의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 4악 장 준비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선 ‘신세계 교향곡’의 2악장 ‘꿈속의 고향’으로 잘 알려져 있지요?]

  • 신세계교향곡 4악장 – 카라얀 [듣기]

    이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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