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Y캐슬의 병원 풍경…AI 시대에 여전한 폭언 문화

[사진=buritora/shutterstock]

최근 끝난 JTBC 드라마 SKY캐슬에서 딸의 의대 입학에 모든 것을 건 엄마(염정아)가 “아갈머리”라고 욕하는 장면이 나온다. 아갈머리는 ‘입’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병원장을 꿈꾸는 의사 남편(정준호)을 ‘품위 있게’ 내조하는 사모님의 입에서 쉽게 나올 수 없는 말이다. 평소 고상한 척 애쓰는 염정아의 입에서 “아갈머리”가 터져나오자, 시청자들은 “충격적”이라는 댓글을 달았다.

SKY캐슬은 병원의 부끄러운 이면을 적나라하게 그려 냈다. 과장된 장면이 없진 않지만 일부는 사실이다. 그 중에서 아직도 남아 있는 일부의 폭언 문화를 빼놓을 수 없다.

기업의 폭언 문화는 대한항공 모녀의 갑질로 숨김없이 드러났다. 대기업 오너 가족이 사원을 대하는 모습이 “이 정도였나” 싶을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대웅제약 오너 2세도 폭언이 문제가 돼 모든 자리에서 물러났다.

폭언은 더 이상 ‘말’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사람이 공분하는 ‘정의’의 대상이 됐다. 폭언이 빌미가 돼 재판이 진행중인 사건도 여럿이다. 사회 각 분야에서 말을 조심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잘못하면 사회적 질타의 대상이 되고 소송까지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부 병원에선 아직도 진행형인 것 같다. 자고나면 폭언, 왕따로 인한 사건이 터지고 폭행까지 드러나기도 한다.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간호사 간의 ‘태움’으로 인한 극단적인 선택도 잇따르고 있다.

용모 비하는 다반사이고, “널 낳고 어머님이 미역국은 드셨다니?” 등 부모님을 향하는 비수같은 언어폭력도 다반사이다.

의사들도 예외는 아니다. 전공의에 대한 폭행 등 갑질 문화가 사회적인 이슈로까지 번지자 작년 12월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 개정안’이 제정되기도 했다.

태움은 근무 경력이 짧거나 연령이 낮은 간호사들에게 집중된다. 선배의 지시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취약계층이다. 전공의들도 미래를 위해 살인적인 노동강도에 시달리면서 선배의 지시에 따라야 하는 입장이다.

군대를 방불케하는 의료계의 ‘군기 문화’는 뿌리가 깊다. 일제 강점기 때의 악습이 지금까지 근절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생명을 다루는 직업의 특성상 적절한 긴장감이 필요하다는 ‘윗선’의 묵인이나 방조도 여전하다.

벌률까지 제정됐으니 폭행은 사라질 것이라는 시각이 있다. 하지만 은밀한 언어폭력은 쉽게 없어지지 않을 수 있다.

엄정한 군기가 생명인 군대도 구타는 거의 사라졌고 폭언도 드물다고 한다. 무기를 휴대하고 근무하는 전방 부대에선 엄격한 군기 속에 인화가 꼭 필요하다. 동료들 간의 갈등이 격화돠면 자칫 불행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소대장 등 상관의 리더십이 더욱 소중한 이유다.

대부분의 의료기관에서도 폭언은 사라지는 추세이다. 그럼에도 폭언 문화를 ‘생명을 다루는 직업의 특성’ 이라고 설명하는 일부 의료인들의 구차한 변명이 남아 있다.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한 간호사의 70% 이상이 이직을 고려했다는 보고서가 한, 둘이 아니다. 폭언은 우울, 불안, 불면증을 초래할 수 있어 환자의 안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태움의 근본 원인은 만성적인 인력 부족에서 비롯된다는 시각도 많다. 병원마다 간호사가 부족하다보니 업무미숙에 과도하게 대응하게 되고, 이는 다시 이직을 불러오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전공의 문제도 그렇다. 인력 부족 문제는 입원 전담의(호스피탈리스트)를 확대하는 게 좋은 방안이다. 과거처럼 피곤에 찌든 몸으로 수련도 받고 환자도 볼보는 것은 환자 안전을 보장하기 어렵다.

입원 전담의를 많이 채용하면 전공의들의 부담이 경감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1~2년 단위 계약직으로 운영하는 곳이 많아 지원자가 많지 않다. 과도기에 있는 입원 전담의 제도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병원 뿐 아니라 정부의 지원도 필요하다.

의료계에 남아 있는 폭언 문화는 리더십이 부족하다는 방증이다. 인화의 리더십으로 이끌 수 없으니 과거의 강압적인 방식으로 다그쳐 성과를 내겠다는 구태인 것이다.

사회 각계에서 인권을 중시하는 문화가 정착되고 있다. 일제 강점기 때의 악습이 의료 선진국에 남아 있다는 사실이 창피한 일이다.

의료기기는 AI(인공지능)로 바뀌는 세상인데, 일부 의료인들 간에 오가는 말은 먼 과거에 머물고 있는 모습이다.

 

    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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