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어디에도 없는, ‘암 생존자’ 자격증

[암 환자는 내 곁에 있다 ①] 암 생존자를 위한 소통 방송 꾸리는 박PD와 황배우

[사진=박PD와 황배우가 진행하는 ‘나와, 함께’ 캠페인]
“옆집 아저씨, 암이래요.” 누군가가 암에 걸렸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죽음의 이미지가 따라붙는다. 하지만 암 환자 생존율은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2018년 국가암등록통계 보고서에 따르면, 2011-2015년 암 환자의 5년 내 상대생존율은 70.7%에 달한다. 암 환자 3명 중 2명이 생존해 일반인과 살아간다는 뜻이다.

암 수술을 받고 암을 만성 질환처럼 관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실제 일상은 어떨까. ‘코메디닷컴’은 암 진단을 받은 후 새 삶을 기획중인 암 생존자와 이들을 돕는 전문가를 만났다. 암 생존자 161만 시대, 내 곁의 암 환자와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들어 봤다.

“암 전문가? 걸려보면 알 수 있어요. 암 환자에게 진짜 필요한 것이 뭔지.”

3년 차 암 생존자 박PD(가명)가 자신 있게 말했다. 박 PD와 같은 암을 겪은 황 배우(가명)도 그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2008년, 30대 방송국 PD와 20대 뮤지컬 배우로 처음 만났던 두 사람은 사회생활에 매진하던 청년기에 돌연 암 선고를 받았다. 업계에서 차곡차곡 능력을 인정받고, 건강 관리도 철저히 해왔던 두 사람은 하루아침에 인생 경로를 바꾸지 않으면 안 됐다.

2016년 가을, 황배우의 투병 소식을 알게 된 박PD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박PD는 암 선고를 받고도 어디에도 물어볼 곳이 없어 고군분투했던 옛 기억을 떠올리며 황배우에게 암 관련 자료를 모두 정리해 보냈다. 암 환자라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오로지 자신의 몫이었지만, 암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살아가기 위해선 함께 할 동료가 필요했다.

암 경험으로 다시 인연이 닿은 박PD와 황배우. 두 사람은 암 생존자의 경험담과 암 환자에게 진짜 필요한 정보를 나누는 암 생존자 멘토 팀으로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가고 있다.

넘쳐나는 암 자료, 정작 필요한 정보는 없었다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 암 경험담과 위로는 암 환자에게.” 박PD와 황배우가 운영하는 팟캐스트 ‘내가 암이라니’의 오프닝 멘트다. 임상적인 진단과 치료는 전문 의료진의 영역이지만, 암 환자에게 필요한 공감과 위로는 암 경험자가 곧 전문가라는 두 사람의 신조가 묻어난다.

박PD는 2015년 암 선고를 받은 이후 자신만의 항암 일지를 꾸준히 쌓아왔다. 어느 시기에 어떤 치료를 받는지 기록한 항암 일정표, 매일 먹은 음식과 컨디션 변화 등을 기록한 항암 일기, 병원에서 운영하는 재활 프로그램의 체험 후기 등을 모두 개인 자료로 정리했다. 이러한 노하우가 팟캐스트를 꾸리는 밑거름이 됐다.

박PD는 “암 환자를 위한 자료나 프로그램은 아주 많다”면서도 “문제는 지금 나에게 필요한 자료가 무엇이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용기를 내 지역 기관 암 환자 프로그램에 참여해도 이미 책과 인터넷 자료 등을 통해 접한 건강 상식 강좌가 대다수다. 황배우는 “암의 정의, 암 환자를 위한 식단 등 강좌 프로그램이 과연 암 환자의 욕구를 반영한 것인지 의문스러웠다”고 말했다.

암 환자, 특히 젊은 암 환자일수록 암에 걸린 사실을 숨기고 혼자 투병하는 경우가 많다. 살고 싶고 낫고 싶은 욕구는 크지만 주위에 도움을 요청하기가 쉽지 않다. 박PD는 “지푸라기라도 잡은 심정으로 이런저런 방법을 찾다가 사기를 당한 암 환자, 제대로 된 치료법을 찾지 못해 지레짐작으로 삶을 포기한 암 환자를 많이 봐왔다”고 털어놨다.

암은 평생 같이 가는 것… 동료 암 환자 돕고파

암 생존자 당사자로서 암 환자를 위한 활동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박PD는 황배우를 만나 본격적인 암 전문가로 나서기 시작했다. 혼자서는 기획 단계에만 머물렀던 일들이 황배우라는 파트너를 만나며 유의미한 결과물로 세상에 나오기 시작했다.

방송, 공연계에 오랫동안 있었던 두 사람이었기에 밝고 유쾌한, 그러면서도 유익한 방송 콘텐츠를 만들자는 목표가 생겼다. 황배우는 “암을 주제로 한 방송이다 보니 혹여나 부정확한 정보가 나갈까 편집, 대본 작업에 공을 많이 들인다”고 했다. 그는 “방송 후 청자들이 보내준 사연이나 좋은 감상을 보면 ‘맞는 길을 가고 있구나’ 싶어 뿌듯한 마음이 든다”고 덧붙였다.

사람들은 보통 ‘활동적인 암 환자’를 상상하기 어려워한다. 그러나 박PD와 황배우는 암 경험 이후 팟캐스트 운영자, 온라인 암 환자 커뮤니티 운영자, 서대문구 보건소 및 세브란스병원 암 생존자 멘토 등 암 전문가로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이어가고 있다.

황배우는 “암 선고를 받으면 두려움과 절망감이 가장 먼저 찾아온다”고 했다. 그는 “그러한 두려움과 절망감에도 일상은 흘러가고, 암이 평생 나와 함께 갈 대상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고 했다. 두 사람은 “암 경험으로 인해 질 좋은 삶을 살 수 있음에도 두려움을 깨지 못 하는 사람을 돕고 싶은 마음”이 수많은 활동을 이어가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외톨이 암 환자들이여, ‘나와, 함께’

박PD와 황배우는 최근 암 생존자를 다시 사회로 불러내는 ‘나와, 함께’ 캠페인에 주력하고 있다. 지난 17일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 ‘와디즈’에서 ‘암 세이브 팔찌’ 제작을 위한 크라우드 펀딩을 시작했다. 유방암 환자를 위한 팔찌다.

박PD는 “유방암 환자가 암 재발 다음으로 두려워하는 것이 바로 림프부종”이라고 했다. 유방암 수술로 림프절을 제거한 환자들은 혈액 순환 기능이 크게 떨어져 한 번 팔이 부어오르면 원상 복귀가 되지 않은 채 평생을 살아야 한다. 수술한 팔은 주사, 채혈, 혈압 측정도 할 수 없으며 심지어 모기에 물리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 박PD 자신도 의료인의 부주의로 유방암 수술을 한 팔에 주사를 맞을 뻔한 경험이 있다.

림프부종 예방 팔찌가 유방암 경험자에게 꼭 필요한 물품임에도 시중에서 팔찌를 구하기란 쉽지 않았다. 박PD는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파는 심정으로 유방암 환자를 위한 팔찌 제작에 직접 나서게 됐다”고 말했다.

암 경험자는 아니지만 암 생존자의 사회 복귀에 공감하는 사람들을 위한 캠페인 후원 팔찌도 함께 준비했다. 황배우는 “이번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유방암 환자의 림프부종 부작용을 알리는 한편, 앞으로 ‘나와, 함께’ 캠페인의 취지를 살려 모든 암 생존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변화시키는 데 앞장서고 싶다”고 했다.

    맹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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