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살릴 수 있었다”…말기 암 환자 3인의 억울한 죽음

[바이오워치]

[사진=fizkes/gettyimagesbank]
지난해(2017년) 9월 청와대 앞에 선 20명 남짓한 말기 암 환자의 울부짖음이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님, 우리 엄마를 살려주세요.”, “국민 여러분 우리를 살려주세요.”

오프라벨(허가 외 처방)로 처방받던 면역 항암제가 국민건강보험 급여 적용을 받으면서 처방이 더 이상 불가능해진 탓이었다. 면역 항암제가 관리 가능한 제도권 안으로 들어오면서 정부는 비정상적인 항암제 처방을 막고 부작용에 즉각적으로 대응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여러 암 전문의로 구성된 다학제적위원회가 설치된 대형 병원에서 심의를 받은 후 심평원의 허가를 받도록 했다. 식약처의 허가를 받지 않았음에도 유방암에 효과를 보이는 폐암 치료제 키트루다를 유방암 환자들이 처방받는 받을 수 있었지만 국민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되면서 정부의 관리를 받게 된 것이다.

당장 많은 말기 암 환자들은 적게는 수천 만 원 많게는 수 억 원에 달하는 면역 항암제를 돈을 내고 처방을 받고 싶어도 받지 못하게 됐다. 정부와 청와대에 관심과 대책을 촉구했지만 묵묵부답이었다. 그러는 사이 오프라벨 처방을 외치던 3명의 말기 암 환자는 하늘나라로 떠났다. 약만 처방받으면 지금까지 살아있을 환자였다.

비단 말기 암 환자 뿐만이 아니다. 이와 비슷한 사례는 수두룩하다.

임상 연구가 어려운 희귀 질환이나 신생아 환자의 경우 실질적으로 허가된 약이 없는 상황. 따라서 대부분 사용되는 약은 오프라벨 처방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오프라벨 처방이 안된다면 이들 역시 약을 처방받지 못해 죽음으로 내 몰리게 된다.

실제로 독일, 스웨덴의 경우 신생아 중환자실의 전체 사용 약물 중 허가 외 처방 의약품 사용 비율이 55%를 넘었다. 특히 신생아 중환자실 환자 중 적어도 1개 이상의 허가외 사용 또는 비승인 의약품을 처방받은 비율은 프랑스 95%, 영국 90%, 호주 80%로 나타났다.

문제 1. 움직이지 않는 정부

정부는 오프라벨 처방을 허가하기 위해서는 유효성과 안전성을 입증할 수 있는 근거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30일 대한의학회 제17차 임원 아카데미 오프라벨 제도 개선 세션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여러 문제점을 지적했다.

근거라는 것은 대규모 임상 데이터를 통해 입증해야 하지만 희귀 질환은 환자 표본수가 너무 적어 쉽지 않다. 신생아의 경우도 현실적으로 임상 시험이 어렵다. 즉, 희귀 질환 환자나 신생아는 근거 생산이 어려운 환자군이라는 설명이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이 약을 이런 환자에게 사용해도 유효성과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는 것을 의료진이나 제약사가 입증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의료진이 자료를 만들어 제출하기에는 현실적인 여건상 쉽지 않고, 제약사는 돈이 되지 않는 시장을 위해 많은 시간과 자본을 들여 일부러 임상 시험을 할리가 만무하다.

김한석 서울대학교 의과 대학 소아과 교수는 “임상 시험 자료집, 외국의 사용현황, 약리 작용 등 안전성과 유효성 심사에 필요한 수 많은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며 의료진이 원한다고 해서 낼 수 있는 게 아니라 제약사가 내야 한다”고 설명했다.

더욱이 김한석 교수에 따르면, 미국이나 일본의 경우 오프라벨 대상 의약품에 대한 임상 시험을 정부가 지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이에 대한 지원이 없는 상황.

김한석 교수는 “미국이나 일본은 오프라벨 의약품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기 위한 임상 시험을 지원하고 있다”며 “하지만 우리나라는 임상에 대한 지원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앞으로는 환자가 필요로 하는 임상에 대해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은영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이사도 “제약사는 희귀 질환이나 소아와 관련한 임상 연구를 잘 하지 않는다”며 “공익적 임상연구 명목으로 정부가 예산을 지원해줘야 한다”고 언급했다.

배상철 대한의학회 부회장(한양의대 내과학)은 “의사들이 근거를 만들어 제출하려면 기간이 타이트하다”며 “의료인과 환자가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관련 근거들의 정보가 병원과 의료진끼리 공유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야 한다”고 지적했다.

문제 2. 전문가도, 시스템도 없다

항암제는 다른 의약품과는 달리 오프라벨 처방 승인 제도가 일부 개선된 상태다. 사후 승인 제도가 도입 된 것. 다학제적위원회가 설치된 병원에서 신속 치료 필요성이 있는 경우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암질환심의위원회 승인 전 전액환자 부담으로 처방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사후 보고 양식이 너무 많고 현실적으로 제출하기 어려운 수준이라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고형암 사후 보고 양식을 살펴보면 4개 항목에 무려 16개 세부 내역을 기재해야 한다. 아울러 암 종류별로 보고 양식이 천차만별이다.

본인 부담금을 결정하는 기준도 다양해 같은 고형암 환자라도 부담해야 하는 약값이 다르다. 신장암 환자의 경우 고용량 IL-2 단독요법으로 약값 일부(5/100)만 부담하면 되지만 흑색종과 방광암은 100%다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이와 관련 김봉석 대한종양내과학회 보험정책위원장(중앙보훈병원 혈액종양내과)은 “허가 초과 항암 요법은 사후 승인 제도가 시행되고 있지만 사후 보고 양식이 암종별로 다양하고 기재 항목이 너무 과다해 임상 시험 증례 보고(CRF) 수준”이라며 “신장암과 흑색종, 중추신경계(CNS) 종양은 고형암에 속하지만 본인 부담금에 차이가 있다. 본인 부담금을 결정하는 기준도 명확하지 않다”고 꼬집었다.

결국 오프라벨을 결정하고 관리할 수 있는 전문가가 없다보니 시스템도 전무하다는 것이 김봉석 위원장의 지적.

김봉석 위원장은 “허가 외 사용 범위를 결정하는 주체가 있어야 한다. 그 주체는 해당 전문가들로 구성된 학회(대한종양내과학회, 대한암학회 등)가 담당하는 것이 적절하다”며 “허가 외 항암 요법에 대한 의약품과 범위는 전문기관에서 수시로 심의 의결해 공표하고 심평원에서 허가 외 항암 요법을 사용할 수 있는 의료 기관에 대한 지정을 담당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복지부, “시스템 부재한 상황”

오프라벨 관련 시스템이 없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에 보건복지부도 고개를 끄덕였다.

곽명섭 보건복지부 보험약제과장은 “오프라벨 문제는 의약품 허가 제도 한계 때문에 발생하고 있다”며 “오프라벨은 의료 현장에서 필수불가결적으로 사용될 수 밖에 없지만 시스템이 부재한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실제로 오프라벨을 관리할 수 있는 전문적인 가이드라인은 찾아보기 힘들다. 반면 의료법, 약사법, 건강보험법 등 무려 3개 법의 적용을 받다보니 체계적인 시스템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곽명섭 과장은 “의료계와 환자들은 오프라벨 제도가 굉장히 복잡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며 “문제는 건강보험이 최종적으로 책임지는 구조다보니 국민건강보험 급여 적용 여부에 따라 관리가 완전히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곽명섭 과장은 의료인들의 자율성과 환자 접근성 확대하기 위해 노력할 뜻을 밝혔다.

곽명섭 과장은 “오프라벨 문제는 의료인 진료권과 환자 접근성을 확보하면서 절차적인 부분을 감소시키는 방향으로 가야 된다”며 “임상이 어려운 환자군은 최대한 안전성과 유효성이 입증되는 부분에서는 예외적으로 국민건강보험급여 적용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송영두 기자 songzio@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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