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맞으면 자폐증?”…’백신 괴담’ 뒤에 ‘가짜 논문’ 있었다

[슬기로운 백신 생활 ②] 백신 괴담, 과학적 근거 없다

[사진=funnyangel/shutterstock]
백신 예방접종은 감염병(전염병) 예방을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이 때문에 예방접종은 국민 건강에 필수불가결한 요소로서 보건의료 체계에 깊숙이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최근 일부 커뮤니티 등을 중심으로 잘못된 정보를 유통하고 더 나아가 백신 거부 운동을 펼치는 상황이 나타나고 있다.

이런 분위기는 국내뿐만이 아니다. 미국, 유럽을 중심으로 전개된 백신 거부 운동은 급기야 ‘집단 면역’의 근간을 뒤흔들고 있다. 최근 미국, 유럽에서 홍역 환자가 다시 늘어나고 있는 것은 그 단적인 예이다.

‘코메디닷컴’은 의사, 과학자 등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서 백신을 둘러싼 이런 불안의 정체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불안의 근거는 얼마나 과학적으로 타당한지 따져보았다. 그 과정에서 ‘슬기로운 백신 생활’을 모색한다.

“어린 아이가 백신 맞으면 자폐증에 걸릴 수 있다더라, 백신 한 번 잘못 맞았다가 사지가 마비됐다더라, 백신 제조 과정에 중금속 발암 물질이 섞였다더라…”

가벼운 독감부터 치명적인 질병까지, 백신의 효과성을 말하는 뒤편에는 항상 백신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따라다닌다.

대다수 사람에게 발열, 어지럼증 등 경미한 백신 부작용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지만,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극단적인 사례는 상황이 다르다. ‘백신 때문에 사지 마비될 확률이 0.01%밖에 안 된다고? 내가 걸리면 100%야’라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다.

그러나 백신 후유증으로 자폐증, 사지 마비에 걸렸다는 ‘카더라’는 과연 사실일까? 백신 괴담은 부실한 과학적 근거 몇 가지만으로도 대중의 공포를 자극한다. 한 번 날개를 단 괴담은 사람들의 입과 손끝을 타고 손쉽게 퍼져나간다.

“백신 맞으면 자폐증 걸린다”, 소문의 출처는?

지난 2016년, 백신 거부 운동을 벌이던 ‘안아키(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 카페 회원들은 온라인 상에 “혼합 백신을 잘못 맞으면 자폐증에 걸린다”는 괴담을 퍼뜨렸다. 이들은 “영국, 미국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혼합 백신과 자폐증의 상관관계가 인정해왔다”고 주장했다.

‘안아키’ 회원들이 겨냥한 혼합 백신은 바로 MMR(홍역-유행성 이하선염-풍진) 백신이다. MMR 백신은 영유아가 필수 예방접종을 위해 여러 차례 병원을 찾아야 하는 불편을 줄이기 위해 3가 혼합 백신 형태로 개발됐다.

백신과 자폐증이 서로 관련 있다는 ‘안아키’의 주장이 한때 사실인 적도 있었다. 다만 그 주장은 오직 6년간만 유효했고, 그마저도 완전히 조작된 가짜임이 드러났다.

1998년 2월, 런던 왕립자유병원 소속 내과 전문의 앤드루 웨이크필드는 저명 의학 저널 ‘랜싯(The Lancet)’에 MMR 백신과 자폐증 간 관련성을 주장한 논문을 실었다. 논문의 주요 논지는 “왕립자유병원에 입원한 자폐아 12명 중 8명이 MMR 백신을 맞은 뒤 2주 안에 자폐 증세를 보였다”는 것이었다.

웨이크필드는 2001년 “장 질환과 자폐증이 있는 아이들의 백혈구에서 홍역 바이러스가 발견됐다”는 내용의 후속 논문을 발표했다. 웨이크필드는 이 과정에서 일관적으로 혼합 백신의 위험성을 지적했다. 그는 “자폐증 아이들의 홍역 바이러스가 MMR 백신으로부터 유래됐을 것”이라 추정하며 혼합 백신이 아닌 홍역 단독 백신을 맞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짜 논문 실은 의사, 반(反) 백신 운동가로 변신

웨이크필드의 주장은 6년이 지난 2004년에야 ‘가짜’로 밝혀졌다. 영국 ‘선데이타임스’ 브라이언 디어 기자가 탐사 보도를 통해 “웨이크필드의 1998년 논문은 MMR 백신 부작용 집단 소송을 위해 만들어진 가짜 논문”이라고 폭로한 것이다.

디어의 보도에 따르면, 1998년 논문의 피험자인 자폐아 12명 중 일부는 1994년 처음 제기된 MMR 백신 부작용 집단 소송의 당사자였다. 당시 소송을 담당한 법무법인은 왕립자유병원에 5만5000파운드, 웨이크필드 개인에게 40만 파운드를 주고 소송에 유리한 증거를 만들도록 사주했다.

디어는 “웨이크필드가 1998년 논문에서 자폐 아동 12명 중 자신의 연구와 맞지 않는 사례를 의도적으로 삭제했다”고 밝혔다. 2001년 논문에 실린 홍역 바이러스 양성 반응도 웨이크필드가 거짓으로 꾸며낸 것이었다. 디어는 웨이크필드가 가짜 논문으로 혼합 백신의 부작용을 주장하는 한편, 홍역 단독 진단 키트 개발에 참여해 막대한 부를 쌓으려 했다는 사실 또한 폭로했다.

‘랜싯’은 2004년 디어의 탐사 보도 이후 웨이크필드의 논문을 일부 철회한 데 이어 2010년 2월 전면 철회를 결정한다. 전면 철회 결정 당시 리처드 홀튼 ‘랜싯’ 편집장은 “영국 의료 위원회(general medicine council) 조사 결과를 통해 해당 논문이 거짓이라는 사실이 명백해졌다”며 “완전히 속은 기분”이라고 심경을 고백한 바 있다.

2010년 5월, 영국 의료 위원회는 웨이크필드의 의사 면허를 영구 박탈했다. 미국으로 활동 무대를 옮긴 웨이크필드는 현재 의사가 아닌 백신 반대 운동가로서 괴담 재생산에 일조하고 있다. 웨이크필드는 2016년 직접 제작 발표한 다큐멘터리 ‘백스트(Vaxxed)’를 통해 “미국 질병 통제 예방 센터는 자폐증 환자가 증가하는 진짜 이유를 은폐 중”이라고 주장했다.

자궁경부암 백신 접종률, 반 토막인 이유는?

우리나라에 퍼진 또 다른 백신 괴담은 바로 자궁경부암 백신 사례다. 2017년 12월 기준 우리나라 자궁경부암 백신 1차 접종률은 약 58% 수준. 이는 대부분 국가 필수 예방접종률이 95% 이상을 기록하는 우리나라에서 매우 이례적인 수치다.

2017년 질병관리본부가 발표한 설문 결과에 따르면, 자궁경부암 백신 대상자 자녀가 있는 보호자 1000명 중 73.5%는 “예방접종 후 부작용이 걱정돼서” 백신을 맞추지 않았다고 응답했다.

자궁경부암 백신에 대한 불신은 지난 2016년 여름, 한 공중파의 일본 자궁경부암 백신 후유증 집단 소송 보도를 통해 증폭됐다. “자궁경부암 백신을 맞으면 사지가 마비된다”는 괴담이 일파만파 퍼졌다. 자궁경부암 백신이 국가 필수 예방접종으로 지정된 지 꼭 한 달만의 일이었다.

일본 내에서 자궁경부암 백신 후유증 문제가 처음 불거진 것은 지난 2013년이었다. 백신 접종 후 원인 불명의 통증을 호소하던 여성들 중 일부가 그로부터 3년이 지난 2016년 7월 국가와 제약 회사를 상대로 집단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소송 원고로 참여한 한 20대 여성은 “자궁경부암 백신 2회차 접종 후 신체 오른쪽이 마비되고 기억력이 저하되는 증상을 겪었다”고 주장했다.

같은 해(2016년) 11월, 자궁경부암 백신 괴담을 가중시킨 도쿄치의과대학(東京医科歯科大学) 연구팀의 논문이 ‘네이처(Nature)’ 자매지 ‘사이언티픽 리포트(Scientific Reports)’에 실렸다. 해당 논문은 “실험 쥐에게 자궁경부암 백신과 백일해 독소를 함께 맞힌 결과 쥐의 뇌 일부가 손상돼 운동성이 떨어졌다”고 했다.

2018년 5월, ‘사이언티픽 리포트’는 도쿄치의과대학 연구팀의 실험 설계를 문제 삼으며 논문 철회를 공식 발표했다. 이미 많은 전문가들이 해당 논문의 과도한 백신 주사량, 부정확한 데이터 문제를 지적한 뒤였다. ‘사이언티픽 리포트’는 “고용량 자궁경부암 백신과 백일해 독소를 함께 투입한 논문의 실험 방법은 자궁경부암 백신이 중추 신경계에 미치는 영향을 증명하지 못 한다”며 철회 사유를 밝혔다.

일본 후생성은 “집단 소송 피해자들이 호소하는 증상과 백신 간 인과 관계가 명확하지 않다”는 최종 결과를 발표했다. 세계보건기구(WHO), 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CDC), 유럽의약품청(EMA)이 잇따라 자궁경부암 백신의 안전성을 공표했다. 하지만 이미 퍼진 백신 괴담 공포를 물리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재갑 한림대학교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백신 괴담 진화를 위해서는 관리 당국, 학계 등 전문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문제가 된 부작용과 백신 사이의 인과 관계가 명확히 밝혀지기 전까지 백신의 효과성에 대한 확실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는 것.

이재갑 교수는 “백신 괴담이 한 번 돌기 시작하면 어떠한 과학적 자료를 제시해도 소용이 없는 것이 사실”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 교수는 “적어도 괴담의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전문가 집단의 단호하고 발 빠른 대처가 필수”라며 “유럽, 일본 사례를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라고 강조했다.

이 기사는 ‘국민 건강 증진 공공 캠페인'(한국인터넷신문협회-한국의학연구소 주최)에 선정된 기획 보도입니다.

    맹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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